나환자 84명이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추모비
天刑의 섬 소록도 !
누구라서 이렇게 이름했던가 !
아름다운 작은 사슴섬이어
산천 좋고 물 맑아 ,
우리에의 아품을 어루만지며
치유 해 주던 소록도
하, 많은 환우들이 치유되어
세상살이 함께 나섰는데
어찌 8십성상 애환이 없으랴!
함께 여기 그 걸어온 길을 새기노니,
우리 모두 새 삶의 의지를 다져 나가세
나는 4월20일 ,밖에는 날씨도 흐리고 구름도 오락 가락하는 날씨에 두서 없이 한 반도 최 남단의
섬 '소록도(小鹿島)'를 찾아 보기로 마음을 먹고 화순의 시외뻐스 터미널로 향했다.
밖에는 조금씩 이슬비가 내리는데,이 정도 날씨에 내가 좋아하고 찾아 보고 싶은 곳으을 기어코
답사를 강행하는 성미 때문에 오늘도 고속뻐스에 몸을 실고 벌교를 지나 보성 그리고 고흥을
지나 녹동항에 도착하였다.
하늘도 이 답사객을 도와 주심인지 날씨가 서서히 맑아지고 봄날의 햇살까지 비춰 소록도를
찾아 가는데 더 한층 마음이 즐겨웠다.
역시 소록도는 자그마한 섬으로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으며,십자봉과 감시봉으로 년 평균
13.5 C의 온화한 기온과 항상 바닷물이 쏴악쏴악 파도치는 물결소리와 푸른 바닷물이 하늘과
함께 맞 닿아 천혜의 요양과 살기 좋은 곳 임을 누구가 부인하랴!
소록도는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번지로 각종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산세가
수려하고 섬 주위는 모래사장과 개펄등으로 김,미역 각종 어패류도 서식하는 아름다운 섬이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섬이라는데서 '소록도(小鹿島)'라 이름지어지기도 하였다.
역시나 소록도 섬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으로는 바닷물이 파돗소리와 함께 노송(老松)들의
진한 향내가 진동을 하여 이 답사객의 심장을 치면서 섬 입구를 향해 들어가는데 ......
나환자(癩 患者) 84 명의 추모비가 눈에 들어온다. 소록도 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령에 근거하여
국가위상에 장애를 주고 이웃에게 전염이 된다는 이유등으로 소록도에 격리 수용되었으며 지리적
으로나 자연적으로 격리되면서 기후가 온화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이 맑은 이 곳에 육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센병'은 노르웨이의 세균학자이며 의사인 한센( Gerhard.Henrik Armauer Hansen)에 의해 1873년
자결절 한센균이 최초로 발견되었으며,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제 4대왕인 세종대왕때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적 차원원에서 한센병 관리를 하였다.
" 천벌이라면 가혹하고
인위라면 가증스럽고
누가 만든 죄 이길레
사 할길 없어
눈물이 자욱 자욱 맺어진
선을 두고
몇천년 울고 울어도
지운것 없어 조상도 없는
이방인이 되어
.......................
1959 환자 지원회 발간 '성하(星河)' 가을호에서 인류의 역사가 수 없이 바뀌고 바뀌어도 이렇게 힘든
삶의 역사가 있을까?
인간에게는 수 많은 행복과 불행의 역사가 소용돌이 치지만 이렇게 불행한 삶의 역사도 또 이 지구상에
있을까?
더 더욱 가증스러운것은 84 명의 나환자 환우들의 1945년 .8.15 원생들의 '자치권'요구에 처참한 학살로
인하여 화장되어지고 매몰 되었다는데에서 더욱 더 분노와 식민지 약소국가의 비애를 느껴지기도 하다
다행히 참사 56 년만인 2001년 12월 8일 학살당한 이 곳에 추모비가 세워져 처참하게 이 지구상에 사라져간
원생들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질지 ?
주위 환경의 아름다운 바닷물 소리의 조화속에 즐거움도 잊고 더욱더 가슴이 답답하고 어안이 벙벙한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검시실이다. 1935 년 일제강점기때 건립 되었으며 원생들의 검시와 해부를
했던 곳이며 사망환자의 유해를 보관하는 영안실로 사용하였으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검시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한센병환자들은 3 번죽는다라는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첫번째로 한센병의 발병이며, 두번째가 죽은후에 시신을 해부하며, 세번째로 장례후에 화장하여 납골장으로
안치된다는 데에서 또 한편 우중충한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장안의 H 자형의 철창이 설치된 건물이
1935년에 일제강점기때 일본 총독부에 의해 '조선 나 예방령 제6조'에 근거한 '감금실'이 설치 된 것이다.
각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 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시설이며,인권탄압의 상징물이기도
하며 직업의자유 ,거주이전의 자유,이동의 자유가 박탈당한 시설이기도 하다.
특히 더 눈에 뜨이는 곳은 나환자들이 인간으로써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나환자 이전의 물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이 답사객의 가슴을 여미게 한다. 곱게만든 명주로 만든 한복들........
저 아름다운 옷들을 입고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들어 인간으로써 가정을 이루고져 꿈꾸었던 그 행복들의
꿈은 사라지고, 우리 인간들로부터 격리 당하고 질시를 당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슴아픈 비애를 어디다
하소연를 하여야 할까?
박물관의 전시된 물건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젖어옴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도 똑같은 사람대접을
못 받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한센인'들의 마음이 이 답사객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
글/ 竹谷 용상씀
첫댓글 그렇군요 소록도 그 어느 책에선가 보니 나환자들이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많은 노력으로 눈물겨운 투쟁을 하는
것을 봤는데,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는 길이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그외에도 많은 죄인들이 그곳에서 이슬의 형장으로 사라지고
사연많은 섬이라고 기억됩니다. 소록도 좋은답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인간의 그늘진 삶의 현장을 찾아 그삶을 그려봄으로써 인간의 삶의 진실을 찾고져 ...
소록도를 2~3번 갔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도 알려지지않는 역사의 현장을 그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너무 먹고 놀고 외형에만 치중하는데에 대한 안목을 벗어나서
인간의 저아래의 밑바닥의 삶을 그려보는 것으로 ...
감사합니다
오늘 지역문화답사 일원으로 소록도를 다녀왔습니다
녹동항에서 소록도는 2009년도에 큰다리를 놓아 연결되어
찻길이 좋더군요
그 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 섬으로 다녔다고 하더군요
@우경(愚耕) 나이들어가면서 지역문화답사를 다니는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동안 몰랐던 우리선조들의 유적을 더듬는것은 의미가 있는듯합니다
역사 기행 소록도를 읽고,마음이 찡 했습니다.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을 하셨다니 ......
지금은 하고있는 일이 있어서......
직장을 관두면 꼭 한번은 가보고 싶네요~.
한번답사를 권함니다
남도의 정취를 흠뻑 느껴보시기를 경관이 매우 수려합니다
안타까운 역사가 기록된 소록도
이제 그 아픔의 흔적 만 남았군요.
똑같은 인간으로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한번 답사를 ............
남도의 정취와 인간의 삶이란 ?
느껴보기도 ......
소록도 하면 저는 두 수녀님이 떠오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수녀님.
40년이 넘는 세월동안봉사를 했음에도 나이들어 제대루 일할 수 없없는데 남아 있는 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 여기고 편지 한 장 남기고 고국으로 떠나신..
와 보셨군요
외국인이면서 .....
수녀님들의 사랑의 정신을 느껴보지요 감사합니다
소록도‥ 저는 한번도 못 가봤습니다‥
동구리님의 글을 보니 꼭 함 가보고 싶네요‥
산녀님 .....
계양산을 너머 , 아름다운 남도의 섬을 와보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소록도를 지역문화원 문화답사단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가서 동구리님께서 글로 써 놓으신 자취를 숙연한 마음으로 둘러보았습니다
지금은 한센병 경력인들이 510여분 살고 계신다더군요
지금은 치료약도 개발되어 고칠 수 있는 병이라 하는데
지난 세월 수많은 고통속에 살다간 분들의 넋이 서려있는 곳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우경님 ...
다녀 가셨군요 잘하셨습니다
이러한 곳을 다녀보는것도 의미가 있을것입니다
저도 못가본 곳입니다 언젠간 가봐야
겠지요 역탐의 답사로ᆞᆢ 잘보고 갑니다
언젠가 한번 역탐으로 다녀가시기 바람니다
정말 감동의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