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9주년, 그날을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
1. **윤봉길 (1908-1932)**:
- 윤봉길은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고관들을 살상한 의거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윤봉길의 용감한 행동은 한인들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2. **안중근 (1879-1910)**:
- 안중근은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는 체포된 후에도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주장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한 정당한 투쟁임을 강조했습니다. 안중근의 의로운 행동과 그의 마지막 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3. **김구 (1876-1949)**:
- 김구는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에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과 고난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광복 후에도 한반도의 통일과 자주성을 위해 애썼습니다.
4. **유관순 (1902-1920)**:
- 유관순은 1919년 3.1 운동 당시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녀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독립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의 희생정신은 후세대에게 큰 감동을 주며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5. **홍범도 (1868-1943)**:
- 홍범도는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첫 대승을 거둔 전투로, 홍범도의 전략과 지휘력이 빛났습니다. 그는 전투 후에도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6. **이봉창 (1901-1932)**:
-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 사건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봉창의 용감한 행동은 윤봉길의 의거와 더불어 한인 독립운동의 결의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 **신채호 (1880-1936)**:
- 신채호는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조선상고사'와 '독사신론' 등을 저술하며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신채호는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8. **이회영 (1867-1932)**:
- 이회영은 일제강점기 초기 신민회를 조직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고,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이끌다 체포되어 순국했습니다.
* 이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