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병실에 쟈스민 향을 피워주었다
옥잠화 몇 송이도 꺾어다 주었다
열아홉 해 전 여름날
잃어버린 한쪽 가슴
상처 달래려 했던가
향기 높은 옥잠화
붕대 사이에 끼워 두었다
치료실 시멘트 바닥에
시들은 옥잠화 떨어졌을 때
의사 보기 민망하여
얼굴 붉혔다.
꽃과 향기와 피
북쪽 손님들 돌아가고
세상은 온통 허무했다
잃어버린 한 쪽 내 가슴
===[우리들의 세상] 박경리 시집 90쪽에서===
유방암으로 한 쪽 가슴을 잃어버린 박경리 선생님.
붕대를 감고도 집필하셨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유방암의 표준치료법이 절제술이었으나,
요즘에는 항암, 방사선 치료로 유방보존술을 시행한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치료중 탈모로 삭발을 하여야 된다고 했다.
항암치료가 매우 힘들고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꽃봉오리가 옥비녀 같다고 옥잠화라는 꽃.
따님은 왜? 옥잠화를 꺾어다 주었을까.
이 꽃이 소종(消腫), 지혈, 해독의 효능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옥잠화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얼굴을 붉혔다는 박경리 선생님.
소녀 같은 이 순수한 마음이 창작의 산실이 되지 않았을까.
수년 전 어느 날 밤,
아내는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평소 다니던 미장원의 문을 닫을 시간 즈음에 삭발을 하고 나왔다.
벙어리 모자를 쓴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는 안다.
암환자의 고통을!
어찌 몸만 아펐겠는가.
커피 맛이 매우 쓴 아침이다.
=적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