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오순도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휴일 아침에도 갑판장은 나홀로 아침식사를 합니다. 갑판장은 평소 습관대로 일어나서 제 시각에 아침식사를 꼭 해야하는 四食(朝中夕夜)人이고, 아내 역시 평소대로 일어나서 점심식사부터 챙기는 二食(中夜)人이며, 딸아이는 평일과 달리 휴일엔 하루종일 좀비(zombie)로 둔갑을 합니다. 이게 집에 있을 땐 별문제가 없습니다만 함께 여행이라도 떠나게 되면 구성원들의 유별난 생활리듬이 뒤죽박죽 마구 뒤섞여 서로간에 피곤한 상황을 야기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여행 첫날을 나름 무사히 보내고 둘쨋날 아침을 맞이하여 갑판장은 진작에 일어났는데 다들 일어날 기색조차 안 보입니다. 가족여행(을 빙자한 업무출장이지만)은 짧은 기간에 사방팔방을 몰아 보는 수학여행이 아니기에 여행을 준비하며 일정을 최대한 널널하게 짰습니다. 심지어 둘쨋날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는 아예 계획을 잡지도 않았습니다. 대충 사정을 봐 가며 이리저리 하든지 요리조리 해야겠다는 갑판장의 의중 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으면 또 바꾸면 되고요.
일단은 2인용 월풀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텔측에서 제공한 입욕제도 몽땅 털어 넣었습니다. 그리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몸이 불토록 푹 담갔습니다. 맛밤과 우유로 공허해진 속을 달랬습니다. 몸이 퉁퉁 불은 채 욕실에서 나오니 그새 어머니께서 일어나 계셨습니다. 불면증으로 약까지 처방 받아 드신다더니 어제, 오늘 이틀간은 아주 잘 주무십니다. 아무래도 아들과 며느리, 손녀가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하셔서 그러시지 싶다가 괜시리 갑판장의 가슴이 찌릿찌릿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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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리곰탕/경북 포항
어머니와 아들이 모처럼 한가로이 정담을 나누는데 눈치없는 며느리가 낑깁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여전히 좀비놀이중입니다. 원래는 둘쨋날 아점으로 물회를 먹으러 갈 작정이었는데 어젯밤에 세꼬시물회와 해삼전복물회까지 맛봤으니 탈락입니다. 점심 때라면 가보고 싶은 식당이 여럿 곳인데 갑판장이 그 시각까지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검색신공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찾아 낸 카드가 오거리곰탕의 선지해장국입니다. 그런데 헐~ 대체 이 반응은 뭔지? 시큰둥합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오거리곰탕집으로 go go, 운전대를 잡은 갑판장 마음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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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해장국(5천원)/포항 오거리곰탕
오거리곰탕 바로 옆에도 사설주차장이 있습니다만 옆골목에 공용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용이합니다. 식당의 익스테리어는 딱 시장통의 허름한 국밥집인데 막상 입장을 해 봐도 인테리어 역시 그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낡고 허름하긴 해도 꾀죄죄한 인상이 아니라 구석구석 쓸고, 닦은 흔적이 선명하니 무거웠던 어머니와 아내의 인상이 이내 밝게 펴집니다. 상차림도 정갈하여 아크릴 재질의 얄팍한 국그릇 마저도 괜시리 귀해 보입니다.
선지해장국 셋에 곰탕 한 그릇을 주문했는데 역시나 소문대로 선지해장국의 완승입니다만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이라면 선지해장국과 곰탕, 다소 뜬금 없어 보이는 냉면까지 6:3:1의 비율로 고루 시켜 먹겠다 싶습니다. 선지와 우거지, 대파를 넣고 푹 끓여낸 구수한 해장국은 그릇에 담아 낼 때 생대파와 후추가루로 향을 보탰습니다. 시뻘건 기름이 동동 뜬 모습만 보면 꽤 매울 것 같지만 김치를 먹는 아이라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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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재래기(겉절이), 정구지(부추)김치, 깍두기/포항 오거리곰탕
오거리곰탕의 김치 삼종셋트가 나오자마자 어머니와 아내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땟깔이 선명한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양질의 재료를 사용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탄성이었습니다. 독거노인이신 어머니께선 이런 밥집이 집 근처에 있으면 참 좋으련만 하시며 그렇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나홀로 아침식사를 떼워야 하는 갑판장도 이하동문입니다. 역시 좋은 재료, 정직한 재료에서 자연스레 제 맛이 우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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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포항 오거리국밥
시장통의 허름한 식당이라 미심쩍어 하시던 어머니께서도, 아침부터 웬 선지해장국이냐며 떨떠름해 하던 아내도, 잠결에 담요말이를 당해 온 딸아이도 한 그릇씩 거뜬히 해치웠습니다. 어머니께선 드시는 내내 '맛나네'를 연발하셨고, 아내는 이 집의 젓갈(액젓)을 무척 탐했습니다. 딸아이도 처음에는 깨작거리는 듯 싶더니만 금새 밥을 말아 푹푹 떠 먹었습니다. 딱 그런 맛입니다. 게다가 연중무휴(맞나?)로 오전 6시 30분부터 개점을 한다니 여행객으로서 포항시내에서 숙박을 한다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아침식사를 하러 들리지 싶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어머니와 아내는 이번 여행을 통해 경상도 음식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확실히 교정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인류들 끼리는 누가 먹어도 맛있습니다. 그리고 맜있다는 감동은 음식의 절묘한 간에서 옵니다. 맛있는 음식은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시지도, 싱겁지도 않습니다. 그냥 맛있습니다. 괜히 맛없는 곳에서 맛없는 음식을 드셔 놓고는 괜한 경상도 음식을 폄하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의 안목을 탓해야지....
첫댓글 전에는 전라도 음식이 갑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양념이 과하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경상도 음식은 그쪽과 방향이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이구만요.
1박2일간 영남에서 네 끼를 먹었는데 네 군데의 식당이 모두 갑판장네 삼대의 입맛에 들었다는 소문입니다. 고로 소개할 집이 하나 더 있다는 말씀
@강구호 갑판장 다음에 그대로 코스를 밟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포항 오거리라 하면 오래전부터 포항 유흥가가 집중되어 있었던 그곳이군요,,,, 포철인들이 주름 잡고 다닌,,,
주차를 했던 오거리공영주차장이 죽도시장 농산물거리와 가깝더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