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한 여인에게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이다. 그 여인이 30여 년 전 젊은 부인이었을 때, 찜질방을 마치고 휴게실에서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날, 두서너 명의 아낙네들이 휴게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말을 우연히 엿들었다. 내용인즉슨, 그 마을 한 청년이 서울대학교 의과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학을 못 할 지경에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애처로운 이야기를 들은 젊은 여인은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사정을 말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속 번뇌를 간파하고선, ‘여보, 우리가 등록금을 그 젊은이에게 선물로 마련해 줍시다.’라는 대답이 돌아와 젊은 아낙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그 학생을 찾아가 등록금을 선사(膳賜: 존경, 친근, 애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남에게 선물을 줌)로 주었다는 것이다. 그 중년의 부부는 그 도움을 준 후, 7~8년 만에 그 학생이 의젓한 의사(醫師)가 되어 꼭 한 번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는 것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셋 꼭지째 칼럼으로 훈훈한 이야기와 함께 선물(膳物: 인정을 담아 주는 물건 혹은 남에게 선사(膳賜)로 주는 물품)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풀이해 본다.
반찬 선(膳)은 반찬, 음식, 희생의 고기의 뜻이 내포된 글자로 인정을 담아 주는 물건이라는 뜻을 품은 한자로 육달월변 육[(月=肉(고기 육)]에 착할 선(善)이 더해진 글자다. 肉(고기 육)은 고기나 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고깃덩어리에 칼집을 낸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肉자는 단독으로 쓰일 때만 고기를 뜻하고 다른 글자와 결합 할 때는 주로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특이한 것은 肉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달’을 뜻하는 달 월(月)자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본래 肉자의 부수자로는 고기 육(⺼)자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편의상 月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을 뜻하는 月(달 월)자와 혼동이 생길 수 있지만 月(달 월)자자 부수로 쓰일 때는 기약할 기(期)자처럼 우측 변에 위치하고 ⺼(육달 월)자일 경우는 간 간(肝)자처럼 좌측이나 하단, 상단에 위치하게 되니 구분할 수 있기는 하다. 이렇게 肉(고기 육)자가 月자로 쓰일 때는 ‘육달 월’이라고 읽는다.
착할 선(善)은 ‘착하다, 사이좋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善자를 보면 양과 눈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답은‘양의 눈망울과 같은’이다. 의미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식으로 말하면 ‘사슴 같은 눈망울’로 해석될 수 있다. 보통 착하고 선한 사람을 일컬어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善자는 그러한 뜻을 표현한 것이다. 즉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반찬 선(膳)은 쇠고기(月=肉), 채소(艹), 양고기(羊), 따위를 잘게 썰거나 다져서 만든 음식을 입(口)에 맞도록 하는 모든 반찬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겨자선(膳), 고추선(膳), 두부선(膳) 따위가 있다. 철선(撤膳: 반찬을 치운다는 뜻으로, 국상이 났거나 나라에 재앙이 들 때, 임금이 근심하기 위하여 육선(肉膳)을 들지 않던 일)이 좋은 용례이다.
물건 물(物)은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소 우(牛)에 말 물(勿)이 결합 된 한자이다. 다시 말해, 소는 동물 가운데서도 체구가 크고 농가에서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대표적이라 하여 널리 ‘물건’의 뜻으로 쓰였다. 물가(物價: 물건의 값), 물질(物質: 물건의 본바탕)이 좋은 용례이다.
작년 12월 성탄절 오전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하려고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교회에 가려는데, 곧 구순(九旬)이 될, 부산 기장에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환아, 오늘 혼자 집에 있는데 니가 올 수 있겠니? 라고 스마트폰에서 애처로운 어머니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혼동이 일어났다. 어머니도 중요하고 예배도 중요한데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혼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실까? 홀로 계신 어머니를 뒷전으로 하고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실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1도 망설임 없이 어머니 댁으로 차를 몰았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니, 파마머리로 곱게 단장하신 어머니께서 막내아들 왔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을 점심으로 내놓으셨다. “감기 기운으로 고생했는데, 니를 보니 감기가 다 회복된 것 같다”하시며, 연신 웃으며 와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어머니에겐 내가 선물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선물은 언제나 받으면 좋은 것이다. 영어에서는 'present'를 선물이라는 뜻으로 자주 쓴다. present를 발음할 때 주의할 점은 첫 음절에 강세를 줘서 '프레즌트'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프리젠트'로 두 번째 음절에 강세를 주면 '증정하다', '보여 주다'라는 뜻이 되어동사가 된다. present는 선물이라는 뜻 말고도 '현재', '참석한'이라는 의미도 있다. 어머니랑 현재라는 성탄절에 어머니 댁에 참석한 아들이 어머니에겐 제일 좋은 선물이 된 것이다. 몇 달 전, 어머니께 선물로 드린 란타나 꽃이 모자(母子)지간의 훈훈한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베란다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일곱 가지 색으로 미소 짓고 있다. 행복이라는 선물을 풍기고 있다.
| 膳 | = | 月=肉 | + | 善(艹+羊+口) |
| 반찬 선 |
| 육달월 육(고기 육) |
| 착할 선(풀초, 양 양, 입 구) |
| 物 | = | 牛 | + | 勿 |
| 물건 물 |
| 소 우 |
| 말 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