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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골 축하동작 ⓒSBS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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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폐가 있지만, 궤멸적 재능이다.
압도적이다. 상대가 누구든 거침없다. 상대에게 궤멸적 타격을 입히는 재능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U-16대표팀의 이승우(바르셀로나) 얘기다. 이승우는 지난 밤 아시아 U-16 대회 4강 시리아전에서 또 한 번 괴력을 발산했다. 혼자서만 5개의 공격 포인트(1골 4도움)를 올리며 7-1 대승을 이끌었다. 모든 연령별 대표팀을 통틀어 타이틀대회서 그것도 4강전에서 혼자서 5개의 공격 포인트를 올린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쉽게 보지 못했던 재능의 출현에 곳곳에서 흥분이 이는 건 이 때문이다.
이승우는 이번 아시아 U-16 대회에서 자신이 출전한 모든 경기서 골을 넣었다. 매 경기 골이다. 출전치 않은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 오만전을 제외하고 4경기 연속골이다. 모두 5골로 대회 득점 선두에 올라 있다. 경기가 남아 있는 팀 중엔 북한의 한광성이 3골을 넣고 있어 대회 득점왕이 유력한 이승우다. 한국과 북한은 오는 토요일 밤 8시에 대회 결승전을 치른다. 이승우의 골 레이스가 무서운 건 5골 모두 다른 패턴으로 마무리했단 것이다. 득점 레이스의 포문을 연 말레이시아전 골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접고 들어오면서 수비수 5명을 낙엽 떨치듯 제치고 오른발 바깥발로 때려 넣은 골이다. 수비를 제치는 돌파가 발군이었지만, 왼발 각에서 상대 수비와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오른발 바깥발로 반 박자 빠르게 때린 게 인상적인 골이었다.
조별리그 최종전 개최국 태국과의 경기에서 넣은 골은 장결희(바르셀로나)와의 2대1 연결로 만든 완벽에 가까운 조합 플레이에 의한 득점이었다. 이승우는 문전 아크 서클 정면에서 장결희와 2대1 연결을 주고받은 뒤 뚫고 들어가 태국 수비수 2명이 태클을 동시에 시도하자 오른발로 공을 띄워 수비 2명을 가볍게 뛰어 넘은 뒤 마무리하는 기막힌 센스와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만 1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플레이였다.
분통해한 일본 언론에 또 한 번의 응수
일본과의 8강전 골은 이승우 득점 레이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승우는 일본전서 2골을 넣었는데, 한 골은 김정민(서울신천중)이 돌파 뒤 짧게 내준 컷백을 순간 침투로 잘라 넣은 골이었고 또 한 골은 하프라인 이전부터 출발해 일본 수비수 5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넣은 인생 골이었다. 멀게는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은 골과, 가깝게는 201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로번이 호주를 상대로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 넣은 골을 연상케 하는 그림과 같은 득점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전이 끝난 뒤 “한국의 메시”에게 당했다며 분통해했다.
골을 넣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이승우는 4강 시리아전에선 어시스트 능력이 그에 못지않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이승우는 페널티킥 골과 함께 4개의 어시스트를 시리아전서 집중시켰는데 특히 후반 15분 전진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온통 빼앗은 뒤 노룩 패스로 이상헌(울산현대고)에게 스루패스를 넣어준 장면이 압권이었다. 8강전이 끝난 뒤 일본의 일부 매체가 이승우에게 가했던 “혼자서만 플레이 한다”는 지적을 보기 좋게 무색케 만든 더 없이 훌륭한 팀 골이었다.
근데 사실 6명의 선수가 골을 합작한 지난 밤 시리아전도 그렇고 이번 U-16 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의 파괴력을 보면 (당연하게도) 이승우 혼자만의 힘이 아닌 선수 전원의 개인 능력이 합쳐진 팀 경쟁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날고 기는 호날두도, 메시도 조국의 운명을 개척하지 못했다. 이승우의 재능이 돋보이지만, 이번 대표팀을 구성하고 있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역대 어느 팀과 견주더라도 뛰어난 게 사실이다. 현장에서는 대회전부터 이번 대표팀을 가리켜 몇 십 년 만의 최강팀이라는 평가가 오가곤 했다. 무엇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와 장결희를 비롯해 울산현대고의 이상헌과 장재원, 이상민 경기매탄고의 윤서호와 박상혁, 유주만 유일하게 중학생으로 대회에 출전한 서울신천중의 김정민 등 일일이 다 소개하기 힘든 만큼의 많은 재능들이 한 데 모여 있는 이번 U-16대표팀이다. 자원의 월등함이 탁월한 것이다.
1998년과 1999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대표팀 시리아전 라인업 ⓒFOOTBAL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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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생과 1999년생으로 이뤄진 이번 대표팀인데 유독 축구의 신이 이 두 해에만 축구 재능들을 점지해 줬을 리 없다. 이 나이 선수들은 2002월드컵 이후 새롭게 조성된 한국축구의 물적, 인적, 문화적 인프라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2002월드컵 전후 전국적으로 마련된 잔디 구장 등 물적 인프라, 매탄고 대건고 현대고 영생고 등 K리그에 자리 잡은 유소년 시스템,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과 지도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 축구 흐름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교육체계와 현지 경험 등이 합쳐지면서 낳은 결과물이 이번 대표팀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이승우와 장결희를 포함해 유럽축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상대 누굴 만나던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고 또 과감하게 싸우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띈다. 한 마디로 무섭고 거침없다. 이승우의 궤멸적 재능은 분명 대단하지만, 팀 전체가 새로운 한 시대를 예고할 만큼 기대되고 또 무시무시한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이야기해 볼 문제가 있다. 이 선수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표현하는데 거침없고 꾸밈없는 10대 선수들(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동시대 살아가는 10대들이 다 같지만) 특히 이승우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걱정이 있나 보다. 너무 튀어서. 일명 ‘싸가지론’이다. 이승우는 일본전을 앞두고 “일본쯤은 쉽게 이길 수 있다”했다. 과거 선배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던 방식과는 완전 다른 자신감 넘치는 말과 행동이었다. 시리아전에서도 그랬지만 자기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 뿐만이 아니라 골을 넣고는 프로선수 못지않게 익살스럽거나 흥겨운 몸짓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튀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걱정하거나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배우는데 열심이어야 하는데 밖으로 드러내는데 마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넘칠까 우려하는 시선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비장하게 조언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근엄하게 나무라기도 한다. 겪어보니까 그렇다고 한다. 뭐든 넘쳐서 좋은 건 없으니 이해는 가는 일이다.
대단히 놀라운 지적
그런데 또 마땅치 않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어린 나이답게 배우는 자세로 차분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같은데 어리니까 더 자유롭고 솔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어찌 보면 그들 나이의 특권과 같다. 튀지 말라는 건 평범해지라는 말과 또 같은데 이승우의 그 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틀에 박히지 않은 플레이에 환호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정형화된 행동을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특정한 플레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특정한 행동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승우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유년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내고 있는 이승우의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승우는 자기 표현에 솔직하다 ⓒSBS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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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나아가 이승우에게 ‘겸손’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단히 놀라운 지적이다. 우리는 그가 겸손한지 그러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자기표현에 솔직한 걸 보니 아마도 겸손하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추측일 뿐이다. 자기표현의 솔직함과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동일한 문제로 바라보는 오류다. 솔직하다고 겸손하지 않거나, 숨긴다고 겸손하단 말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한, 아예 다른 문제인 것이다. 튀는 이승우를 향한 이러한 시선은 우리 사회의 단면과도 같다. 남이 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예의범절 콤플렉스’와 나이가 많으면 혹은 나이가 적으면 무얼 하면 안 된다는 ‘나이의 서열과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투영된 일인 것이다. 이승우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개인감정과 의견을 솔직히 드러내고 표현하는 자유로움이 좋다. 그 동안 우리 선수들을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서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좀 더 자유롭고 솔직한 모습을 바라지 않았던가. 유럽 선수가 그러면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고 우리 선수가 그러면 지나친 감정 표현이라는 건 마땅치 않다.
지금 거둬들어야 하는 건 이승우를 비롯한 우리 10대 선수들의 자유롭고 거칠 것 없는 자기표현이 아니다. 지금 거둬들어야 하는 건 아직은 미래에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모를 잠재력을 위해 자유롭게 싸우고 도전할 이들에 대한 주위의 과도한 간섭과 지나친 기대일 것이다.
<아시아 U-16선수권 대한민국-시리아 4강 하이라이트 동영상-AFC 영상>
http://youtu.be/oEosVX7f4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