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보다 더 나은 영화라는 평가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정치적인 메시지를 띄우며 끝난다. 둘 다 지금 너무 필요한 메시지다. 나는 변호인보다 용의자가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비교하기 싫지만 개인적으로 변호인보다 더 깊은 한국사회 모순에 칼을 들이대는 영화다. 그래서 변호인보다 아프게 다가온다는 거다. 변호인 보신 분이라면 나름대로 정치적 소견 있을 것이고, 그런 분들이라면 꼭 변호인 다음으로 용의자를 선택하시라. 한국사회 모순에 칼을 대는 영화 두 개, 이번 겨울 꼭 보시고 새해를 맞이하시면 좋겠다. 새 마음가짐으로. 게다가 눈도 즐겁다. 액션신은 한국영화 중 꽤 높은 수준에 속하고 공유의 몸은 멋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보는 내내 즐겁다는 말이다.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007로 만들었다
007을 한 편도 제대로 본 적 없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영화 용의자의 액션신은 화려하다. 그래서 007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 주인공이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액션신의 장소가 너무 친숙하다 못해 현실적이고 초라하기까지 해서 ‘007이랑 판박이네’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물론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의 액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액션신은 세다.
영화 '용의자' 속 한 장면.ⓒ'용의자' 스틸컷
007은 ‘저거 봐 또 안 죽어 역시 헐리우드 액션영화’ 라며 빈정대며 본다. 하지만 용의자는 ‘아 안 돼. 죽으면 안 돼. 지금은 안 돼’라며 보게 된다. 공유가 연기한 지동철은 탈북자 출신으로 빨갱이로 몰리지만, 보는 내내 ‘그도 가족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연민과 동질감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 느끼게 되는 점, ‘아 빨갱이도 사람이다.’ 라는 것. 학교 동아리방 깊숙한 곳에서 소설가 황석영이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발견하며 ‘아 이땐 북한 사람들 사람으로 취급 안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때를 살던 사람들이 느끼던 충격적 감정을 ‘조금’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래도 대통령이 북쪽 최고지도자랑 만나는 거 보면서 자랐으니까 ‘조금’ 느낀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영화 찬양 하자니 좀 어렵다. 영화관에 가서 보기 전 볼 수 있는 자료들 선에서만 이야기하며 느낀 감정을 이야기하자니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감동을 뺏을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지동철이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박회장에게 받은 어떤 물건 A의 정체가 밝혀지던 순간엔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물론 이 부분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도 아니며 영화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현실에서 오해받고 핍박받는 한국의 남북화해론자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이 부분에서는 영화 내내 지동철의 반대편에 있는 NSIA(아마도 국정원, NSI와 KCIA를 합친 듯 한 작명)이 해온 만행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금 국정원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이 부분이 큰 카타르시스로 다가올 것 같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 추격신에서 지동철은 단 하나의 민간인 피해도 입히지 않지만 NSIA는 자잘한 민간인 피해를 계속해서 입힌다.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공식이면서도 영화상으로 아주 일관된 이야기 전개다.
단 한 명의 원칙주의자가 세상을 지킨다
변호인에서 세상을 지키는 원칙주의자는 송변이다. 용의자에서 세상을 지키는 원칙주의자는 지동철이 아니라 민대령이다. 민대령, 좌천된 군인이다. ‘여기가 평양이라고 생각하고 가라’라며 군사훈련 시키는 군인이다. 하지만 그에겐 보통의 꼴통 반북주의자들이 가지지 못한 게 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송변과 민대령의 공통점이다.
민대령은 상명하복 원칙에 철저하다. 그게 군인의 원칙이니까. 하지만 상관이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는 지동철을 쫓는 데 최선두에 서지만 결국 정의의 편에 선다. 아마도 지금의 한국사회라면 빨갱이로 몰려 죽을 법한 편에. 그래서 이 영화는 멋지면서도 비현실적이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고위급 군인들 중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박희순이 열연한 민대령은 외모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연기만 봐도 정재영급이다. 공유 외 출연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상황에서 민대령을 연기한 사람이 정재영이라고 착각하면서 봤다. 전작인 <간기남>을 보면서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건 외모만 닮아서가 아니라 연기 수준이 높아서다.
그런 박희순이 주연이 아니란 사실은 공유에게 인지도가 밀려서만은 아닌 것 같다.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상을 지키는 게 아니라 깨버리는 것이 아닐까. 빨갱이도 사람이라는 메시지는 체제의 틀을 깨고자 한다. 억울한 사람 누명 씌우며 살면 사람새끼가 아니라는 메시지는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자는 메시지다. 감독은 변호인의 메시지보다 좀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 너무나 멋진 박희순이 조연이다. 주연 같은 조연.
여전한 한계, 북한 판타지
최전방 근무를 서다 돌아온 친구들에게 북한군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이런 대답이 있었다.
“그냥 동네 꼬마애들 같았어. 저쪽에서 포 쏜다고 비상근무 서고 있는데 개울에서 멱 감더라. 그리고 좀 나이 들어 보이는 군인이 애 쪼인트 까는 것도 봤어. 그냥 우리랑 똑같더라.”
영화에서도 ‘빨갱이도 사람이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주인공 빨갱이는 솔직히 사람 아니다. 공유가 촬영 중 실신했다는 사형장 신은 헐리우드에도 없을 법한 역대급 뻥 같다. 의학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으니 뻥이라고 단정하진 않겠다. 룡강 지역에서 행해진다는 북한 특수부대 훈련신은 그냥 좀 어이가 없었다.
지동철이나 주변의 북한 출신 인물들은 사실상 초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의 결말이나 중간중간 던지는 메시지가 쇼박스에서 올해 개봉한 북한용병 시리즈들(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보다 덜하게 만들어주긴 한다. 그래도 장면 장면만 놓고 보면 덜하다고 할 수도 없다.
대중예술로서 영화가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걸까. 민주정부 10년간 만들어진 북한 관련 영화에서 북한 사람은 사람으로 그려졌다. 남쪽에 총도 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려졌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렇지 않나. 그걸 넘어 웰컴 투 동막골로 오면 북한 사람은 그냥 이웃이다. 동료이며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예쁘다.
그러나 보수정부 6년차, 영화에서 그런 판타지는 없어졌다. 그 빈자리를 ‘북한 사람은 살인병기’라는 판타지가 메꿨다. 이제 북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살인병기다. 용의자에서 그 부분이 안타까운 것은 영화 전체가 던지는 메시지 ‘빨갱이도 사람이야’와의 불일치다. 그 불일치를 인류보편의 감정으로 봉합하고 있어 영화가 말이 되는 것 같이 끝나긴 한다. 하지만 마지막 신의 감동이 조금 덜한 건 이런 불일치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술을 하려 해도 그런 검열이 필요하다니. 아무리 대중예술이라지만.
남북화해론자라면 꼭 보시길 추천드리는 영화
함께 본 지인 중 나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 사람은 확률로는 50% 였다. 내가 이해한 바와 같이 이해한 사람도 있었다. ‘빨갱이도 사람이야’라는 메시지. 하지만 그와 동일한 비율로 나머지는 ‘액션신이 엉성해’라고 말했다. 물론 후자의 사람도 남북화해론자다. 민감하지 않다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화다.
영화감독이 본래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려고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감독이 꽂힌 한 장면을 만들다보니 그 장면을 중심으로 있을 법한 사건을 재구성하고 사회관계를 복원하다보니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원신연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그의 의도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경우로든 남북화해론자라면 꼭 보시길 추천한다. 북한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라면서도 빨갱이도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왜곡된 정치지형을 다시 한 번 탓하면서. 아 물론 한국 액션의 발전을 두 눈으로 보고 싶으신 분께도 추천한다. 공유도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