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자기비움의 절정이며 구원의 길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자기비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 1독서(이사 50: 4-9)에서 보듯이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건입니다. 자기포기, 집착심과 애착심의 포기입니다. 또한 비폭력, 무저항으로 세상의 권세, 어둠의 세력을 이긴 사건입니다. 무집착, 탈집착으로 세상의 탐욕과 분노 그리고 육정의 문제를 극복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본질이나 완전히 인간성을 으스러뜨리고, 자아를 철저히 죽이고, 육신의 욕망을 깨부수었습니다. 인간적인 것은 모두 없애고 자기를 비우고 하늘의 살아있는 새로운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여 인간과 똑같이 낮아지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해석합니다(필립 2:6-9 참조).
16세기 스페인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감각의 밤과 영혼의 밤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감각의 밤을 거쳐 인간의 경험, 체험, 지식, 감성, 이성을 정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밤을 맞이합니다. 영혼의 어둔 밤에서는 인간의 지성, 기억, 의지력이 정화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적인 것과 지성, 기억, 의지의 기능이 정화되어 순수한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의해 감각과 영혼의 정화를 받아 깨끗해진 영혼의 순수의식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영혼이 순수하여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인간적인 최후의 절규는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말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혹해 합니다. 아니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합니다. 사막의 영성가들은 하느님의 영과 일치하기 직전의 영적 상태가 바로 버림받았다는 느낌, 사막의 적막함의 경험, 메마른 신앙의 체험에서 말하는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버려야하고, 인간적인 것은 모두 없애야 하기 때문에 이 절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모든 것을 정하하고 깨끗해진 영혼의 순수의식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기 비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더니 다시 하느님께서는 높은 곳에 올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필립 2:8-9).
또한 십자가는 이웃을 위한 자기 희생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의 특징을 들자면 무관심, 무책임, 익명성, 개인주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남이 간섭하는 것이나 참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자연히 비인간적이고 정이 없고 차가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값싼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고 용서만 가르치는 것, 고백이 없는 세례, 하느님과 교제 없는 성찬례, 고난과 희생 없는 은혜, 섬김과 봉사 없는 신앙생활, 변화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비움은 양보하는 삶을 말합니다. 스스로 양보하지 않고 남을 밟고서라도 높아지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교만의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한 교만 보다는 겸허한 자기비움에 머리를 숙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나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자리’ 때문에 비교적 잘 쌓아올린 인격의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십자가는 곧 자기 비움과 희생, 섬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비움은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산다고 하면 반드시 자기 비움과 희생,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십자가를 따르는 삶입니다. 십자가 사건에서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의 모습을 늘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의 삶을 원하시지 십자가를 설명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원하시지 말씀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자기비움을 통하여 이웃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 희생과 헌신의 신앙생활로 십자가의 수난에 동참하는 성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신자를 신자답게, 사목자를 사목자답게 하는 ‘자기 비움’인 십자가 사건에서 부활의 새생명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