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이학수바오로)의 묘 http://cafe.daum.net/4346go/LbCF/277
- 고향 나들이 길에서(천주학쟁이 맹물네 가족사)|2011.9.5.
아침에 사촌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도 성묘를 게을리하던 작은집(우리집)에서 내가 모처럼 귀성길에 나선다 하니 내심 반갑고 기쁜 마음이 앞섰던지 말씀이 많으셨다.
나에게 이장공고가 도착하면서 부터 어찌할 바 몰라 쭈빗거리며 지내온 세월이 어언 7년여.. 그동안 형들에게서도 아우에게서도 여타 친지들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전화를 통하여 사태의 추이만 살펴 오다가 작년에 현위치 존치 결정을 들으면서 8월 중순경 묘역을 방문하였지만 풀이 우거지고 곳곳에 파묘의 흔적이 남아있어 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와 차일피일하면서 미뤄왔댔는데 사촌형에게서 연락이 오고 묘소 확보의 주역인 사촌아우와 통화가 되면서 기회를 보던 중에 마침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어제 시간이 난 것이다.
홀로 가뿐하게 나서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섭렵하며 전주에 가서 연락이 닿으면 친구들도 만나 볼 요량이었지만 할매의 맘이 표변하여 따라 나서는 통에 다시 티격태격하면서 별로 자유롭지 못한 행차가 된 건 사실이나 여정을 잘 택했던지 처음으로 용수리의 사돈댁을 방문하게 된 건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용수리 사돈댁에서 http://fr.catholic.or.kr/jhs/holyplace/surichigol.htm - 수리치골, 둠벙이, 진밭, 황모실 - 감추어진 공소·본당의 중심지
오래 전에 부탁해 두었던 묫자리 매입 건에 관하여 상의하고 할매가 노상 바라마지 않던 무공해 고추가루 구하는 일이라든지 사곡, 신풍, 정안 등 순교하신 우리 할아버지들이 터잡고 사시던 곳에 관하여 다시금 기억을 더듬으며 인근의 기록들에 관하여 안내를 받았다. 혼자서였다면 아마도 국곡이라는 곳을 살펴볼 기회를 마련했을 것이다. 해충할아버지의 묘소가 국곡묘라 기록되어 있고 국곡교라는 다리가 있으니 그 다리를 기준으로 하여 마곡사 쪽이나 신영리 쪽에 묘소가 있지 않을까?
사돈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마곡인터체인지로 진입하여 동전주로 나가니 바로 곁에 금상동성당이 성큼 나타나고 차를 돌려 성당에 주차할 수 있었다. 추석이 이미 지난 만큼 길이나 묘역이 한산하고 성당사무실도 바쁘지 않아 우리 부모의 묘소인 아열 156과 157을 검색하니 두 형과 나에 관한 연고자 기록이 확인되어 내 주소를 보정하고 관리인(베드로씨)의 안내로 묘소를 찾았다. 옛날부터 남쪽 밭이랑을 거쳐 진입하는 것이 관례였고 부모님 매장 때에도 그쪽을 통하여 접근하였기에 매번 성묘시마다 그쪽에서 발걸음이 막히곤 하였으나 북쪽 옛 도로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오솔길이 나있고 언덕배기에 잘 손질된 묘역을 지나 바로 아랫쪽으로 부모님의 묘소가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나타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아카시아 나무가 봉분에 뿌리박은 게 아니라 2~3m 쯤의 골짜기에 다소 우거져 있고 오래 된 나무도 아니라서 시야를 가린다는 것 외에는 별로 문제삼을 게 없는 상태였고 칡덩굴이 우거진 상황이긴 하나 삽이나 괭이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면적이 아니며 본격적으로 묘역 전체를 손볼 때 말고는 께작거려봤자 별 성과가 나지 않을 상황이라서 가져간 톱이나 호미와 제초제 등을 꺼내지도 않고 성묘를 마쳤다. 이처럼 좋은 상태라면 잠을 설쳐가면서 준비할 목록을 챙기지도 않았을 정도...
큰할아버지(춘화)의 묘소는 납골당에 안치한 듯 흔적이 없고 증조부(학수 바오로)의 묘와 비석이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치돼 있으며 그 서편으로 직계 할아버지(춘의마티아) 의 묘와 비석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조금 떨어져 부모님과 백부모님의 묘소가 자리해 있으나 잡목이 시야를 가려 흉해 보이므로 아마 사촌아우가 아카시아를 언급한 게 아닌가 싶다는 추측을 하면서 현 상황에서는 무엇인가 조치를 시도한다 하여도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사진은 디카갤러리에 수록)
조부(이춘의마티아)의 묘
교구에서 언제 쯤이나 전반적인 정리를 할 계획이냐 물었으나 답변을 못하는 걸로 보아 아직까지는 무연고 묘지와 여타 묘지를 정리하는 과정에 있을 뿐 바오로할아버지 계열의 묘소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뚜렷한 방침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으로 보였다.
단순하게 묘소를 보존하기에는 별로 손댈 곳이 없는 상황이고 파묘 후에 납골당으로 개장한다든가 하는 역사에는 형제간의 합의가 우선적으로 선행해야 할 일이며 진입로 확보와 지형의 적절한 토목공사 등이 필요한 절차이니 교구와 사촌아우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시켜가는지 주목하면서 차분하고 여유로운 관심 속에서 때때로 성묘를 하는 것 밖엔 달리 해얄 일이 없다. 묘역 정리를 진행중인 지금도 무단 매장이 이뤄지는 듯 느껴지는 상황에서 아무런 권한도 없이 무슨 일을 기획하고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2003년식 트라제. 하체가 부실하여 고속도로 통행을 자제하며 운행하였으나 리콜 이후 성능이 개선되어 모처럼 조심스레 고속주행을 해보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안정되게 운행할 수 있어서 귀성길에 무리가 없었으며 상행길에선 병천에 내려가 할매가 즐기는 부부순대를 맛보기도 하였으니 이번 귀성길은 오랫동안 미뤄온 과제가 기대 이상으로 쉽게 해소되면서 아주 홀가분한 길이 되었던 것 같아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다.
낡은 차를 운행하면서 알마나 긴장하였던지 녹초가 되어 오랜시간 잠을 자고도 피로가 풀리질 않는데다 윈도10의 에러가 잦아 간신히 주섬주섬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저녁미사 갈 시간이 되었다. (내일은 요당리성지에서 화성지구 순교자현양대회가 예정되어 9시 미사와 교중미사가 없으므로 토요일 저녁미사가 적절하다.)
주님, 저희 가정을 살피시고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마티아와 그 자손을 두루 배려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제가 주님의 뜻을 살펴 만분의 일이라도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본분을 과감하고 현명하게 처리하도록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아버지(이진규안토니오)와 어머니(문순완데레사)의 묘
금상동성당 하늘자리(납골당)에 모셔진 장인(전승우안드레아)와 장모(이구만요안나)의 봉안함 2-21-0820
http://cafe.daum.net/4346go/LbCF/346 - 나도 묘를 써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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