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다 보니 금강산을 뜻하지 않게 만나는데
한 번은 충청도 서산 팔봉의 금강산을
또 한 번은 해남에서 금강산을 오른다.
저마다 일만이천봉에 근접할 수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산객을 기다린다.
이른 아침 대구의 불볕더위와 잠시 생이별하듯 헤어져 빛고을 광주를 거쳐 남도땅 해남을 다시 찾는다
산허리부터 정상까지 짙은 안개로 가득한 해남읍의 진산(鎭山)인 금강산을 올려다보며 바람 한점 없겠다 생각해 운동삼아 물 4리터와 알싸한 음료수 몇 병 보온팩에 넣고 금강으로 오른다
금강산 오름길옆에 미산서원(眉山書院)이 보란 듯 서 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미산서원"은 세종 때 병조와 이조판서를 지내셨으며 세종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지켰던 여흥 민 씨 충정공파 시조(始祖)인 민신(閔伸)과 그의 네 아들 사충신(四忠臣)을 모신 사당이다
그러고 보니 금강산 자락의 해남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암(眉巖) 바위 즉 눈썹바위 아래 눈의 자리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 잡은 미산서원은 해남읍을 굽어 보고 있는데 터가 참 편안하고 좋은 곳 같다.
푸름한 자연 속에 잘 어울릴 손때 묻은 옛 건물이라면 더 좋았을 미산서원은 흥선대원군 때인 1868년에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훼철되었다가 이후에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운 건물이다
참고로 흥선대원군 때 전국에 1천 개의 서원중 살아남은 서원으로 도산서원, 병산서원 외 45개만 살아남았다
멀리 북한땅 금강산에 버금갈 정도로 수려한 풍경을 갖추었다 해서 금강산이라 부른다는 설(說)과 불교의 금강경(金剛經)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사라진 금강사(金剛寺)가 있어 금강산이라 불렀을 것이라 생각이다
미산서원에서 금강산(미암산)으로 오르는 편안한 등산로 따라 잠시 오르면 눈썹바위로 불리는 미암바위에 설 수 있다
거문고 타는 선녀의 눈썹이라는 미암바위에서 본 해남읍과 며칠 전에 다녀온 지맥길의 병풍산 방향이 보이는데 대구의 진산이라는 앞산처럼 해남읍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진산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미암(眉巖)
산중턱에 있는 바위로 크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해남읍에 사시는 분들께 사랑받는 바위다
시원한 바람이 지나는 곳에 평상이 있어 잠시 누워 있으니 입추(入秋) 지나고 들릴법한 풀벌레 소리가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고
금강산성(金剛山城)
돌무더기를 길게 쌓거나 모아 만든 성으로
고려 때인 몽고군의 침입으로 피난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최신 덤프트럭으로 수 천 번은 더 실어 날라야 이 정도 규모의 돌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가져와 쌓은 것인지...
성벽 위를 걸으며 살고자 하면 뭔들 못할까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산성이란
살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
서로가 돌을 이고 지고 와 쌓았을 텐데
배고픈 시기에 그리 녹록하거나 쉽지 않은 일이다.
돌 하나하나 일일이 들춰가며 다 세어 볼 수 없지만 그동안 해남땅에 살았거나 거쳐간 사람 수보다 더 많은 돌은 차곡차곡 쌓아 벽을 만들었다.
최근에 다녀온 호남정맥길에 만날 수 있었던 강천산의 금성산성은 고려말에 험준한 산정(山頂)으로 돌을 하나하나 정성껏 쌓은 게 특징이었다면 이곳의 성은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쌓은 성으로 해안가 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 돌담을 쌓아 물고기를 잡는 독살을 닮은 단순하게 모아 놓은 게 특징이라 하겠다
"보이지 않아도 산아래 세상이 느껴지는 금강산"
2백 년 전 인근 두륜산 아래 천년고찰 대흥사 범해 선사께서 "해남은 뿌리요 금강산은 꽃이며 월출산은 열매"라고 적었을 정도로 해남은 인근을 아우르는 인문과 교통의 중심지였던 모양이다
정상 주변은 쉼터 개념으로 만들었고
조그만 정상석이 심심할까 하여 소나무 한 그루를 살려 그늘을 만들어 두었다
여기까지 금강산 오르며 이야기
이제 해남읍을 적시는 해남천 발원지를 찾아 동쪽으로 1백여 미터 가야 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니 낙엽 위로 이슬이 많아 금세 축축해질게 뻔하다
헬기장 방향
성터 겸 헬기장
이곳이 해남천 발원지가 있는 곳인데
숲이 워낙 빼곡하여 한발 들이밀기도 벅차다
힘들어
잠시 만대산으로 어어지는 등산로 따라 진행하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등산로에서 금강 계곡으로 들어선다
지나간 경로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하천길 249개 1만 1천 KM가 넘었고
전체 길이는 경부 고속도로 400KM라고 했을 때
왕복 800KM 14번 한 거리다.
계곡으로
가뭄이라 물이 있을 리 만무하고
이 지독한 가뭄이 언제 끝나려나
가뭄은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 가능하지만
홍수는 인간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요즘은 정반대인 것 같은 불볕더위와 가뭄
비라도 한줄기 시원하게 내려 타들어가는 농심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다
쉼터방향
산이 높지 않으니 골도 깊지 않고
그러다 보니 갈수기에 산중턱으로 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계곡 한쪽에서 겨우 물을 찾았지만 발원지라 하기도 애매한데 여기보다 좀 더 위에 금강산성 인근에 짐승들 마저 찾지 않을 정도의 옹달샘터가 있긴 한데 그곳을 발원지라 하기도 그렇고
질문은 있으나 이렇다 할 답이 없다
그냥 이곳이 발원지라 생각하고 물 한 모금 맛본다
길이란
가고 싶은 곳 찾아가면 되고
매일 산에 올라오신다는 산아래 마을분을 만나
해남과 금강산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고
흐르나 못 흐르나
맑은 물은 미세하게 바위암반 따라 흐르는데
손을 씻거나 발을 씻을 수 있지만 세수하거나 할 정도는 아닌 듯
해촌서원
금강 저수지 옆에 위치하며 조선후기에 세웠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미산서원과 함께 훼철되었다
새로 지은 건물로써 해남지역 출신 고산 윤선도 선생 외 다섯 분을 배향하고 있으나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내갈길 간다
금강저수지
둘레길이 잘되어 있으며 동네 주민분들이 많이 나와 운동 중이다
저수지 아래로 내려오면 물은 인위적으로 만든 길 따라 흐르는데 가끔 자라와 뱀장어도 보인다고 한다.
해남읍을 동, 서로 가르는 해남천
하천옆 편의점에서 몇 가지 보충하고 밖으로 나와 걷는데 읍(邑)이라고 하지만 도로가에 가로수가 보이지 않는다
제가 살고 있는 대구는 워낙 더워 도심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예전 문희갑 시장 때부터 2천3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나마 낮추고 있는데 가로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에서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
해남천 최장발원지인 덕음산 남쪽 계곡에서 흘러온 남송천이 500m가량 더 흘러와 해남천과 만나는 남외리
해남천은 도심을 지나왔으나 그나마 맑게 흘러왔는데 들판을 질러온 남송천 물은 마치 된장을 한국자 풀어놓은 듯하다.
덕음산은 고산 윤선도 선생의 4대 조가 터를 잡고 살았을 정도로 명당이어서 호남 3대 부자에 속했다고 한다
내려가야 할 곳과 만대산 방향
해남읍과 금강산
금강산과 만대산방향
잠시동안 비포장길을 지나는데
공사 중이라 하천은 그야말로 도랑 수준이고
지나온 길
오늘도 이 불볕더위는 뜨끈하게 감자 삶을 날씨이고
이런 물은 어디에 쓸까
1 급수는 깨끗하니 마실 수 있고
2 급수는 마실수는 없지만 목욕은 가능하고
3 급수는 황갈색의 탁한 물로 정수하여 사용가능
4 급수는 오염된 물로써 물고기도 살기 힘들고
5 급수는 심하게 오염되어 피부병이 생기고
6 급수는 농업용, 공업용으로도 사용불가
해남천은 황갈색으로 농사용으로 사용 가능하며 물고기도 살겠다
수중보 위에는 연못처럼 고인 물에 산다는 마름이 자라고, 그 아래는 부영양화로 이끼가 가득하고
또 그 아래는 흐릿한 물이 고여있다
과연 어떤 물고기 살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걷다 보니 인근에 사는 외국인총각이 루어 낚싯대 하나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는데 더럽게 보여도 물고기가 살긴 사는가 보다.
땡볕
또 한 명의 외국인이 자전거 타고 한 손에는 낚싯대 들고 저 앞으로 사라진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이런 날은 다리아래 솥단지 걸어놓고 닭 한 마리 삶아야 하는데 언제쯤 그런 날이 올지
계룡에 사시는 맥가이님께서 계룡에 찾아오면 농장에 솥단지 걸어 놓고 산삼넣은 닭백숙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한가한 시간이 오기만 기다려 본다.
오늘은 37도
팝콘 만드는 대구보다 시원할까
바람은 어디 가고 이리 더운지
구름이 힘 좀 써야 할 텐데
온통 구름이건만 왜
저곳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지
해남읍 서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남각산이 버티고 있으며
이쪽은 들판의 초록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남읍 복평리
다시 비포장길로
3리터의 땀을 흘리고 3리터의 물을 마시고
"자식 관리나 물 관리나 반듯하고 깨끗하게"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듯
대구에서는 낙동강물을 녹조라떼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뭐라 부르나
걸쭉하게 보이는 하천에 커다란 잉어가 힘에 겨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물로 농사를 지은 낙동강 인근의 벼에서 청산가리 100배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었다는데 앞으로 어디서 뭘 사 먹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해낭읍을 지키는 남각산의 모습이고
녹차물 찐~~~ 하게 우려낸 해남천
남산농교에서 본 가야 할 탄금봉 옆길의 하천길
빼곡한 갈대 사이의 해남천
한때는 바다였고 갯벌이었던 곳
탐조대 방향
멀리 달바위산이고 직선길은 사람 잡을 길이다
하지만 폭염은 모두에게 똑같지만 견디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기에 지나가는 사람도 차량이 없어 위에 입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모두 벗고 진행
시멘트길 위에 복사열은 60도 넘을 듯 땀은 비 오듯 한다
멀리 영암땅 흑석산 방향인 듯
이제 고천암호(湖)가 바로 코앞이다
고천암호는 1988년에 완공된 방조제로써 길이는 1,874m이며 방조제가 생기면서 안쪽으로 3,032ha의 거대한 간척지가 생겼으며 담수(潭水) 면적으로는 649ha와 1,920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농수(農水) 확보와 농지확보 차원이었으며 지금처럼 쌀이 남아도는 시대에 갯벌의 중요성과 지역주민들의 어업활동과 어족자원 확보 그리고 다양한 생물종 보존성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국토는 좁지만 갯벌의 가치가 너무 크기에 지켜야 할 땅으로 남겨뒀으면 어땟을지
초록한 갈대
초록 세상너머로 가을이 이미 찾아온듯한 느낌이건만
덥기는 왜 이리 더운지
남각산과 금강산 방향의 해남읍
들판너머 선은지맥길이 길게 이어지고
지난날 삼산천을 걸었기에 고천암호가 지척인 해남읍 내사리 정자 앞에서 오늘 걸음 한 해남천은 마무리한다.
저곳 전망 좋고 바람 머물듯한 곳에 올라 남은 물 4리터로 씻고 잠시 더위를 식힐 겸 쉬었다 카카오 부르니 어디서 달려오는지 모르겠으나 3분만 기다리란다.
더운 하루를 마치며 조선팔도 끝자락인 해남땅 또 올지 모르겠으나 이제 한삼모시로 유명한 서천땅(판교천, 길산천)이나 전봉준 생가터와 고인돌의 땅인 고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첫댓글 방장님~!
역시나 먼곳까지
출타를 하셨네요.
서천에서 짧게나마 인사를하고 또만날것을 기약한채~
말일쯤에나 뵙도록하겠나이다!
안녕하세요
해남땅은 끝나고 이틀간의 일정으로 돌아본 서천지역도 끝이 났습니다.
날머리에서 너무 반가웠구요
옛 모습 그대로의 멋진모습이었습니다.
대전까지 택배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는 자주 뵙도록 하구요 이달말에 기분 좋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