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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여 진(秦)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혼란의 시대를 선진(先秦)시대 혹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탐욕, 의심, 모략, 갈등, 살육의 시대였다. 춘추시대에는 제후국들이 명목적이나마 주(周)나라를 인정하고 있었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제후국들은 천하를 차지하려고, 다른 제후국들에 병합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전쟁의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삶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일반 민중이다. 제후들의 탐욕과 강박관념에 의해 야기되었던 수많은 전쟁과 전투에서 살육되었던 사람들은, 제후들을 대표로 하는 위정자들이라기보다는 바로 이 힘없는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전국시대에 습관적으로 자행되던 전쟁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非攻]을 보인 철학자이자 실천가가 탄생하는데, 그가 바로 묵적(墨翟.묵자)이다. 전국시대에 있어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부당한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을 함축한다. 따라서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동체는 묵자가 죽은 뒤에도 계승ㆍ유지되었는데 그 지도자를 거자(鉅子)라고 했다. 제자백가들 중 유일하게 선생의 이름을 학파의 이름으로 사용했던 묵가(墨家)라는 사상가 집단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묵자』는 묵자를 포함한 묵가들 전체의 사유와 논쟁의 기록이다. 묵가들의 철학적 주장들은 흔히 10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이 10가지 주제들은 각각 『묵자』를 구성하는 편명이기도 하다.
1. 상현(尙賢) : 현명한 사람을 숭상해야 한다.
2. 상동(尙同) : 윗사람을 높이 받들며 따라야 한다.
3. 겸애(兼愛) :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
4. 비공(非攻) : 전쟁을 금지해야 한다.
5. 절용(節用) : 재정 지출을 절제해야 한다.
6. 절장(節葬) : 장례를 간소화해야 한다.
7. 천지(天志) :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
8. 명귀(明鬼) : 귀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9. 비악(非樂) : 사치의 상징인 음악을 금지해야 한다.
10. 비명(非命) : 주체적 노력에 반하는 숙명론을 거부해야 한다.
얼핏 살펴보아도 이 열 가지 주제들은 심각한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윗사람의 뜻을 숭상하고 따라야 한다거나 하늘과 귀신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수평적인 차원의 사랑인 '겸애(兼愛)'는, 수직적인 독재론이나 하늘과 귀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초월적인 종교론의 그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자』를 자세히 읽어 보면 이러한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 열 가지 주제 가운데 핵심 주제인 '겸애(兼愛)'이며, 다른 주제들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맹자』와 『장자』, 『한비자』, 『여씨춘추』, 『회남자』 등에서 묵가의 핵심 주제로 '겸애'를 규정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묵자』의 「겸애(兼愛)」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반드시 혼란이 일어나는 까닭을 알아야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게 되고, 혼란이 일어나는 까닭을 알지 못하면 곧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마치 의사가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반드시 병이 생겨난 까닭을 알아야만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며, 병이 일어난 까닭을 알지 못하면 곧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묵가는 세상에 혼란이 발생하는 원인을 바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현실에서 찾았다. 결국 문제는 사랑인 것이다. 공동체의 성원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했다면, 결국 공동체의 성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할 수만 있다면 혼란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묵가의 모든 사유는 어떻게 하면 공동체 성원들이 상호간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다.
묵자의 '겸애'는 '차별이 없는 사랑'이나 '상호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묵가의 '겸애'를 기독교적 사랑과 유사한 '박애(博愛)'의 의미로 속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러나 겸애는 현존하는 정치적 질서나 위계적 구조를 긍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의 부모를 나의 부모처럼 여기고, 남의 집안을 나의 집안처럼 여기고, 남의 도읍을 나의 도읍처럼 여기고, 남의 국가를 나의 국가처럼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족 제도나 정치 질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단지 '나'와 '남'의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지 모든 사회적 차별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묵자의 '겸애'란 평등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불평등한 사랑이라고 규정될 수 있겠다.
다음으로 겸애라는 개념 속에 들어 있는 공리주의적 성격을 살펴보자. 묵가의 사랑은 아끼고 사랑하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묵가에게 있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물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겸애' 혹은 '겸상애(兼相愛)'라는 묵가의 주제는 항상 '교상리(交相利)'라는 표현과 연용해서 사용 한다. 예를 들어 참혹한 살육으로 점철되었던 전국시대 민중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을 것인데, 묵가는 민중의 고통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굶주린 자가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추운 자가 옷을 얻지 못하며 수고하는 자가 휴식을 얻지 못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백성들의 커다란 환난이다. 군주로서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반드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추운 자에게 옷을 주어야 하며, 노동이나 병역으로 지친 자는 쉬게 해 주어야 한다.
백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백성에게 가장 유효한 이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군주다. 그렇기 때문에 묵가는 "윗사람을 높이 받들며 따라야 한다"는 독재론을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독재를 지향하는 전체주의자들이라서가 아니라, 군주만이 유일하게 실질적인 재력과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우리는 『묵자』의 나머지 네 주제, 즉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고 재정 지출을 절제하도록 하며, 장례를 간소화하고 음악을 금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군주가 겸애를 실천하려면 백성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허례허식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재정 지출을 절제해야 하며, 백성의 삶 자체를 고통에 빠뜨리는 전쟁도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묵가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물질적 이익을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자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물질적인 이익을 누군가에게 제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준다면 그의 삶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학적 원리다. 이러한 점에서 묵가의 고난에 찬 실천 과정이 유래한다.
『장자(莊子)』에서는, 묵가의 무리가 "대부분 짐승가죽옷과 베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서 밤낮을 쉬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삶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 다시 말해 남에게 물질적 이익을 제공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 자신은 굶어야 한다. 헐벗은 자에게 따뜻한 옷을 주면 자신은 춥게 지내야만 한다. 삶에 지친 사람을 대신하여 노동을 하면 그 자신이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들이 묵가의 무리였던 것이다.
묵가의 무리는, 이러한 희생이 너무나 힘든 일이긴 하지만,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확신했으며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희생 정신은 이기심이나 탐욕, 질투,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여기서 묵가는 위정자들로 하여금 겸애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 새로운 논리 장치를 고안한다. 그 논리 장치가 바로 하늘과 귀신의 의지를 긍정하는 초월적 종교론이다.
천자는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며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부유하고 귀한 사람은 마땅히 하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 즉, 겸상애(兼相愛) - 서로를 이롭게 해주기 - 즉, 교상리(交相利) - 때문에 반드시 하늘의 상을 받을 것이다. 하늘의 뜻에 반하는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를 해쳐서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기 쉽다. 묵가들은 하늘과 귀신의 의지가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을까? 현대의 일부 연구자들은 묵가의 초월적 종교론을 기독교와 비교하며, 그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경향은 묵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묵가들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겸상애'와 '교상리'라는 실천적 원칙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결코 신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신학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 당시 제사와 관련된 종교적 통념에 호소함으로써 자신들의 실천 원칙을 정당화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조상의 귀신이 있다는 믿음과 같은 종교적 통념이 통용되지 않았다면, 묵가들은 다른 논거에 의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묵가의 주장은 '신을 믿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자는 데 있었다.
서양의 철학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데 비해 동양의 철학은 직관적이고 신비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성(理性)은 합리적 추론의 능력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유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성적인 사유는 기본적으로 어떤 주장에 대해 이유나 근거를 대는 사유다. 이 점에서 『묵자』는 동양 철학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뒤엎는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는 고유한 주장과 함께 철저하게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유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묵자』의 이런 합리주의적 정신은 다음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어진 사람들은 취하고 버리는 것과 옳고 그른 것의 이유를 서로 알려 준다. 이유를 대지 못하는 사람은 이유를 대는 사람을 따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을 따르며, 할 말이 없다면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묵가에서는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이유나 근거들을 세 가지로 유형화하는데, 그것이 유명한 '삼표(三表)'다.
말에 표준이 없는 경우, 이것은 비유하자면 움직이는 물레 위에서 동쪽과 서쪽을 확립하려는 것과 같아서 옳고 그름, 이로움과 해로움의 구분에 대해 분명히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말에는 반드시 세 가지 표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세 가지 표준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곧 역사적 표본과 경험적 근거, 현실적 유용성이다. 무엇에서 역사적 표본을 찾는가? 옛날 성왕들의 사적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에서 경험적 근거를 찾는가? 백성들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사실에서 경험적 근거를 찾아야 한다. 무엇에서 현실적 유용성을 찾는가? 형벌과 정책을 시행하여 그것이 국가, 백성 그리고 인민의 이익에 부합되는가를 살펴보는 데서 알 수 있다.
위의 세 가지로 분류된 근거가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묵자』의 열 가지 주제들이 모두 이런 근거들로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도 있다. 옛날 성왕들의 사적이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또 사람들의 경험이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혹은 현실적 유용성이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묵가가 근거나 이유를 가지고 주장을 제기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따라서 묵가가 제시한 세 가지 근거는 당시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정립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묵가는, 겸애라고 하는 유의미한 정치철학적 주장을 했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런 주장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공하려 한 사유 방식을 최초로 피력했다는 측면에서도 중국 철학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묵가의 철학은 전국시대 초기에서부터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가장 유력한 사상이었다. 이것은 전국시대 중기의 맹자, 말기의 순자(荀子)나 한비자(韓非子)가 당시의 유력한 사상으로 묵가의 철학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될 수 있다. 묵가는 춘추시대 말기에 인문 정신을 드러낸 공자와 그를 수장으로 하는 유가(儒家)에 맞서 싸웠고 이것은 전국시대 내내 지속된다.
유가와 묵가 사이의 논쟁은 너무나 강렬하고 지속적이어서 장자(莊子)가 지식인들 사이의 사상 논쟁을 '유가와 묵가의 시비논쟁'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묵가가 이렇게 격렬하게 유가를 공격했던 이유는, 유가에서는 말로만 사랑을 외칠 뿐 그 사랑의 완성이 기본적으로 자기희생과 이타적 행위에 기초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묵가에서는 사랑이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물질적으로 이롭게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묵가에게는 번잡한 예절, 무용한 장례 의식 혹은 화려하고 사치스런 음악 활동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 유가의 무리가 위선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개 유가는 오만하고 자신만을 따르는 자들이어서 아랫사람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음악을 좋아하며 사람들을 어지럽히기에 직접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운명이 있다는 주장을 세워 할 일에 태만하므로 직책을 맡겨서도 안 되고, 상례를 중시하고 슬픔을 그치지 않으니 백성들을 자애하도록 해서도 안 되며, 옷을 기이하게 입고 용모를 치장하는 데 힘쓰기에 백성들을 이끌도록 해서도 안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가에 대한 묵가의 치열하고 지속적인 공격이 묵가 사상을 역사 속에 묻히게 만든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는 점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단명한 뒤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모든 제자백가들을 물리치고 유학만을 숭상한다"고 선언한 뒤 중국의 역사는 유학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그 때문에 묵가의 사상과 실천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망각되어 버렸던 것이다.
철학사적으로 묵가 사유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차별적인 사랑을 강조했던 유가들과는 달리 인간 사이의 차별 없는 사랑을 역설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중요한 그들의 공헌은 동양 철학에 대해 해묵은 편견을 수정해 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논리와 이유를 강조했던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이 예술적이고 직관적이며 나아가 신비주의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유나 근거에 기초를 두지 않는 철학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동양 철학은 철학이라기보다 종교에 가까운 것이게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이유와 근거를 강조했던 묵가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동양의 정신을 다시 반추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묵자』를 진지하게 읽게 되면, 우리는 동양에 합리주의적이며, 따라서 논증적인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긍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이 철학일 수 있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삶에 대한 건전한 주장과 그에 대한 충분한 근거대기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묵자(墨子) / 사랑의 정치 철학과 논리의 발견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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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묵자 사상(철학)의 키워드는 "겸애(兼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