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영화 와일드 (Wild)
신문에서 이 영화의 예고를 보고 걷기 매니아인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기와 관련 없는 영화니 금방 시중 영화관에서 종영해 기회를 잃었고, 누군가 인터넷에 파일로 올려 주기를 매일 첵크하다가 안될 것 같아 우선 책이라도 보고 싶어 책을 구입 후 읽는 어느 날 드디어 영화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누군가 올려 나꿔챘다.
PCT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남부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미국 서해안을 따라 오레곤 주를 거쳐 북쪽 워싱턴 주의 캐나다까지 걷는 트레일 코스다.
시작부터 뉴스에 나왔던 장면이 펼쳐진다. 높은 절벽에 잠시 쉬다가 그만 벗어놓은 신발하나가 절벽으로 떨어져 버리는 상황. 주인공 세릴은 남은 한짝 마저 멀리 던져 버리며 영화는 시작되고..
지극히 불우한 가정에서 아빠의 가정폭력에 도망나온 가족들. 열심히 살려 애를 써 보지만 엄마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고 셰릴은 인생자포자기 식으로 살며 이남자 저남자 만나고 다니며 매춘과 마약도 서슴치 않는다.
엄마가 죽고 난 뒤...26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싶어 떠난 여행 Pacific Crest Trail (PCT) 평소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 책방에 진열된 책 하나가 눈에 이끌려 시작한 여행. 남편과도 이혼하고 생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한다.
자기 키만한 30Kg의 배낭을 메고 4285 Km를 향한 막막한 출발. 짧은 코스면 걷는 사람도 많으련만, 워낙 긴 코스라 걷는 사람도 없다. 그냥 걷다가 싫으면 언제든 그만 두리라 라는 각오와 함께..
그러나 어설픈 이 여행가는 등산장비 사용도 서툴고 길에 대한 상식도 부족하니 번번히 실수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지난 과거의 기억들이다. 엄마와의 즐거운 기억들 그리고 가정의 아픈 기억들, 남자들과 남편과의 기억들이 걷는 내내 좋은 친구들이 된다.
영화 내내 흐르는 주제가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 백조처럼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영화에 가득하다. 노래 가사는 달팽이보다 철새처럼 날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달팽이처럼 걷는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털어 걷기와 캠핑에 대한 장비를 구매했으나 모든 캠핑장비의 사용법도 몰라 매번 설명서를 봐야 하고 버너의 사용 연료도 잘 못 가지고 와 며칠 째 날 것들만 먹어야 했다. 지나치는 남자들은 모두 자신을 해칠 사람으로 보이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야 할 때는 남자의 음흉한 마음을 먼저 파악해야 했다.
길을 걸으면 이정표처럼 반가운 것이 없다. PCT는 이정표를 모두 자라고 있는 나무에 표시해 두었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찾기 힘든 초행길. 그러나 한 코스 한 코스 넘어갈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워낙 장거리라 중간 보급품을 미리 준비했다가 도착할 즈음에 지인을 통해 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길을 걸으며 집시를 만나고 마음에 들어 같이 하룻밤을 자기도 하고 자기와 같은 여성여행가를 만나 심정을 나누기도 한다. 걷기 여행이란 그런 것. 낯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 여행은 그래서 늘 새롭다.
자신이 걷기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걷다보면 그 목적이 더 굳건해 지기도 하지만 그냥 희석되기도 한다.
왜 내가 이 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후회도 있지만 결국은 '떠나기를 잘했어' 하는 성취감이 생긴다. 걸으며 발톱이 빠지고 넘어지고 찢어지지만 그거야 모두 시간지나면 해결되는 것.
그러나 걷기 여행은 그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야 하는 것. 육신은 망가질지라도 정신은 새로워진다. 비록 걷기를 다 끝내면 수중에 20센트 밖에 남지 않는 빈털털이지만 종착지에 가까이 가면서 희망에 부푼다.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는 큰 용기.
실제로 이 영화는 실화이고, 주인공은 이 여행후기를 책으로 써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글을 읽고 감명받은 여배우 리즈 위더수푼이 영화를 제작하고 스스로 배우가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은퇴 후 스페인 산티아고 걷기를 위해 나는 이렇게 영화나 책을 보며 늘 마음으로 준비한다. 가능한 건강할 때 떠나야 한다는 조바심도 있다.
최근 한국에도 나이 70이 넘은 할아버지가 유럽을 걸어서 횡단했고 이제 유럽 종단을 시작했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행동이지만 그것처럼 숭고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들어 걷지 못한다면 인생은 어찌될까 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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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우니 향기롭다 원문보기 글쓴이: 까르미나
첫댓글 와아..리즈 위더스푼이 주인공인 wild~나도 보고 싶어요.^^
언제 기회되면 카피해 드릴께요
저 길을 걸은 것입니까 PCT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오늘 저 길 어디 쯤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도 무릎이 안좋아
나이들어 걷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 같아
오늘부터 동네 길이라도 걸어봐야 야겠어요
걷지 못하면 인생 쫑나는 겁니다.
저도 60인데 하루 30km정도는 너끈히 걷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으로 알게된 부산의 어느 65세 선배님은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부산까지 770Km를 걸으며
행복해 하고 있더군요. 조금씩 걷다보면 오래 걷게 됩니다.
시작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글을 읽어 내려갔네요! 걷고 싶어지네요! 4,285kM 얼마나 걸렸을까요.
주인공은 약 90일 조금 넘게 걸은 것 같습니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그래도 안전하게 걷는 편인데
PCT는 위험하다고 합니다. 기후도 그렇고 야생동물, 사막 등등..
참 대단한 여자였습니다.
@까르미나 평균적으로 하루에 48kM를 걸었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것도 산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