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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세일수록 모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히10:25)
2020, 8/30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히10:25절 말씀으로 “말세일수록 모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지난 한 주간 모든 국민들이 중국코로나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살았을 것인데, 안타까운 것은 이 중국코로나의 발생지를 잊어버린 것 같아 답답합니다.
우리국민들은 감염자든 비 감염자든 전부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은 쏙 빠져버리고 우리끼리 서로 니편 네편 편을 갈라 치고받고 싸우니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우리들끼리 싸워야합니까? 욕을 하려면 중국을 욕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에 나가서 걸렸으면 교회가 비난받아야하고, 식당에서 걸렸으면 식당이 비난받아야 하는지요? 교회도 식당도 학원도 그 누군가가 걸려 와서 옮긴 것입니다. 당사자는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국가지도자들이 언론을 앞세워 교회를 희생양 삼아 대중들의 분노를 교회로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성남에서 목회하는 제 동기목사님 교회에 어떤 중년남자가 교회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한번 빨고 교회 안으로 던지고 간 것을 CCTV로 확인하고 다음날 잠복을 해 똑같이 담뱃불을 던지고 가는 그 남자를 잡았는데, ‘불나면 어쩌려고 교회 안으로 담뱃불을 던지느냐?’고 물었더니, 교회가 코로나 온상이라 싫어서 그랬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교회가 코로나 온상이냐? 교회도 피해자다.’고 말하자 ‘TV를 보면 모르냐 교회가 코로나 온상이잖느냐?’고 말한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는데, 여러분도 혹시 방송만 듣고 교회가 코로나의 온상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교회가면 코로나에 걸린다고 생각해서 다른 곳에서는 안 끼는 비닐장갑을 교회서는 끼는지요? 주님이 당신의 몸 된 전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일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 아파 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마스크도 안 쓰고, 정부의 7대 방역지침을 어겼다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방역지침을 지켜가며 예배드리다 걸렸다면 왜 비난받아야하는지요?
식당에서 밥 먹다, 카페에서 커피마시다 걸리는 건 괜찮고, 교회에서 밥 먹다 커피마시다 걸리면 비난받아야합니까? 전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피가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교회에서 단체로 헌혈하기로 약속했는데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 동사무소에서 해주면 안 되느냐고 하더랍니다.
똑같은 사람이 헌혈하는데 동사무소에서는 되고 교회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교회를 코로나 진원지로 생각한다는 뜻이겠지요.
저들은 그런다 해도 교인들까지 교회를 코로나 발생지로 보는 게 정말 슬픕니다.
정부가 지난주일, 20명이상 예배드린 교회들에게 방역지침을 어겼다고 비난하자 세상 사람들도 교인들도 교회가 방역수칙을 어겼다고 같이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교회들도 다 마스크 쓰고, 소독하고 7대 지침을 지키며 예배드렸다는 것입니다.
다만 20명 이상이 모여 예배드린 것은 교회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20명 이상 모여도 7대 지침만 잘 지키면 감염 안 된다는 게 파주 스타벅스 사례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손님27명 감염, 마스크 쓴 직원4명 전원음성. 서해안교회132명 전원음성)
그럼에도 사람들은, 심지어 교인들까지도 교회들이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데, 심곡동의 주님의 교회 같은 이단들 빼고 코로나가 터진 교회는 5만개가 넘는 교회 중 극히 일부입니다. 그것도 7대 지침을 지키며 드린 정상예배 중이 아니라 소모임과 단체 수련회에서 마스크 안 쓴 일반 교제에서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싸잡아 교회를 무슨 천하 몹쓸 집단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코로나는 의학과 과학이지 신앙의 영역이 아닌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까 7대방역지침을 따르고 있잖아요. 교회가 무슨 영업장도 아니고 사업장도 아닌데 다른 영업장 사업장 놔두고 교회부터 폐쇄하겠다는 그 발상자체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언론이 한 몸 되어 교회를 대중으로부터 분리하여 무력화시키려는 작업이 이제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너무 가슴 아픈데요, 이런 상태에서 코로나가 잠잠해진들 누가 교회를 나오고 누가 예수를 믿겠습니까?
종교인과세도 끝났고, 이제는 교회재산과 모든 수익에 세금을 걷는 일이 남았는데, 이것도 머지않아 공론화될 것입니다. 다만 형평성 때문에 기독교만 걷을 수 없어서 천주교나 절 같은 곳을 의식하여 시간이 더 걸릴 수는 있겠지만, 기독교를 적으로 보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사람들에겐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제 알곡만 남는 시대, 남은 자 7000명시대로 접어들었을까요?
그러니 제발 좌파 우파 이념적인 문제로 세상을 보지 마시고, 신앙인이니까 왜 공산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를 탄압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공산사회주의자들을 지지하고, 성경적 가치관을 훼손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야합니다. 어떻게 헌법에 있는 종교의 자유를 하위법인 방역법으로 막는 자들을 지지하고, 교회를 탄압하는 자들의 정책을 지지할 수가 있습니까? 떠나야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모이기를 폐하면 안 됩니다.(25절)
둘째로, 모이기를 힘써 권하셔야합니다.(25절)
셋째로, 그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합니다.(25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말세가 가까울수록 교회에 모이는 것을 폐하면 왜 안 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모이기를 폐하면 안 됩니다.(25절)
본문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아멘.
여러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순탄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고난과 고통의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기록될 당시가 주후60년 대 후반쯤인데, 이때는 기독교에 대한 로마 네로황제의 핍박도 정점을 향해 가는 시대라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든 시대였는데, 로마정부가 기독교를 핍박하니 사람들도 대놓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위해를 가하는 지경이라 생업이 어려워 생활고를 겪는 것은 물론이고, 신앙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항에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되었고, 신앙이 어리거나 믿음 없는 사람들은 주의 재림과 천국에 대한 확신이 약해져 세상으로 나갔고, 유대교로 돌아가는 등 예배와 교회에 모이기를 폐하는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상항에서 "교회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폐하다’는 명령어로, 교회 모이는 것을 절대 금하지 말라는 뜻인데, 당시 핍박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물론 못나가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못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며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을 절대 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모이는 것을 폐하면 안 된다고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한번 교회 나오는 것을 쉬면 이게 면역이 되고, 결국 교회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미 경험한 것들입니다. 교회에 관심을 갖고 자주 나오면 거기에 기쁨이 있고, 신앙도 성장하고, 믿음 안에서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데, 한두 번 모이기를 폐하면 이게 양심에 화인을 맞아 계속 안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하게 됩니다.
옛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는데, 한번 바늘 훔치기가 어렵지 일단 훔치면 그 다음부터는 담대해져 결국 소까지 훔치게 되는 것처럼 예배도 한두 번 빠지다보면 결국 시간의 문제지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교회도 안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잘 나오다가 갑자기 안 나오는 경우보다 거의 한두 번 빠지다가 결국 안 나오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중국코로나로 한국교회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 누차 말씀드렸는데, 교회학교도 다 무너지고, 코로나를 핑계로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교회를 떠난다고 보면 큰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반대로 순결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면 안 되잖아요? 그 마음에 주님이 있다면 어떻게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다고 세상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정말 그 마음에 주님이 있다면 예배를 폐하고 모임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행2:46절에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교회의 모임에서 멀어지는 것이 배교의 첫걸음이란 말을 했는데, 우리들이 신앙인이고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모이기를 폐하면 안 될까요?
교회에 모이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영적으로 보면 다 그 이면에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순간부터 사단과 영적싸움을 하고 있으며, 천국에 갈 때까지 끊임없이 원수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하나님나라의 군사들입니다.
사단은 지금까지 교회를 분열시키고, 사람들을 분리시켜 자기의 목적을 이루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잖습니까? 분열과 분리에는 항상 아픔과 고통이 따랐고, 화합과 통일, 하나가 될 때는 항상 기쁨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 개별적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인도하셨습니다.(민2장) 광야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 살다가 떠날 때도 하나님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먼저 출발하면 그 법궤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였고, 지파별로 할당된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습니다. 이처럼 성전중심으로 모여 사는 것이 큰 축복과 기쁨이었는데(대하31장)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뉘고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바벨탑의 심판도 흩어짐이었고, 주님도 흩어버리신다고 말씀하셨으며, 백성들이 범죄할 때 이방인의 손에 붙여 흩으신 것도 그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가족이 흩어지는 것도 일종의 심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이기를 힘쓰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은 사단의 계략에 속는 것이고, 하나님 심판의 한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나누고 흩어지게 하여 거기서 떨어진 자들을 추수해 왔는데, 일단 교회로부터 멀어져야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영적으로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분열과 흩어짐을 위해 사단은 참으로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는데, 때로는 핍박과 고난으로,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때로는 교인들끼리 불신과 분열과 다툼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찢고 나누기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날 이 중국코로나로 교회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것도 영적으로 보면 사단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면예배라는 말은 맞지만, 비대면 예배라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라 인터넷이나 유튜브같은 것으로 예배드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상항윤리를 빠진 것입니다. 상항과 형편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는 뜻인데, 말은 그럴 듯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일제신사참배도 하고, 순교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여죄수가 간수와 정을 통하면 감옥을 나가 두 아이를 돌볼 수가 있다면 이 경우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는가?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상항윤리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안녕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감옥을 가더라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솔직히 여러분!!! 인터넷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나요? 속옷차림에 개새끼 끼고, 이것저것 할 거 다하며 예배라니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건 아닌가요?
성경에 비대면 예배는 없습니다. 그때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없다고요? 그렇게 말하면 항상 현재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코로나가 1년 갈지 2년 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식당도 카페도 모이고 사무실도 근무하는데, 7대 방역수칙 지키며 1시간 모여서 예배드리면 안 되나요?
스타벅스나 서해안교회처럼 마스트만 제대로 쓰면 절대 안 걸린다니까요.
세상사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성향 교인들 설득해야하는 이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특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이기를 폐하면 절대 안 됩니다. 어찌하든지 교회에 모이지 못하도록 흩으려는 사단의 계략을 아시고 방역이라는 상황윤리에 빠져 모이기를 폐하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모이기를 힘써 권하셔야합니다.(25절)
본문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아멘.
성도에게는 반대 정신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모이기를 힘써 권면하라하셨는데,‘권면하라’도 명령어입니다. 다시 말해 명령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무조건 모일 것을 교우들에게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모이는 것을 권면하는 일이, 다시 말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사실 대부분 교우들은 누가 교회 나오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이 안 나오면 왜 안 나오는지 살펴보고 찾아가서 권면하고 해야 하는데, 그들 영혼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직분과 조직과 직책을 만든 것은 직분자들을 통해 교우들의 신앙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권면하고 돌보게 하기 위함인데, 그래서 직분자들이 연약한 형제들을 돌보아 믿음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는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 지금은 태평성대라 핍박도 없고 간섭도 없는 상황에서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핍박과 환란 중에 배교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편해도 너무 편해서 배교가 일어나는 현실을 하나님이 언제까지 방치하실지 걱정됩니다.
이런 상항에서 모이기를 폐하고, 교회를 떠나고, 배교하는 자들에게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무슨 뜻입니까? 핍박으로 모이기가 힘들수록 오히려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고,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그 상황과 타협하기보다는(상황윤리) 오히려 주님말씀 붙들고 더욱더 바르게 신앙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94장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가사처럼 방황하는 탕자를 애타게 찾으시는 주님께로 나아가야합니다.
여러분!!! 상황에 따라 나의 신앙과 태도가 변해서는 안 됩니다. 모이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 내 중심을 드리며 오직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이 반드시 평가받는 날이 옵니다. 그때 당당하고 떳떳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모이기를 힘쓰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합니다.(25절)
본문5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아멘.
오늘 본문에서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에서‘그날’은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예수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본문은 이날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언급하셨는데, 첫째는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수난의 때가 가까웠다(마26:45)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벧전4:7)고 하셨는데, 심판의 날이 이땅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주님이 오시는 날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까이 왔다는 것만은 주께서 말씀하신 여러 징조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니 깨어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마24:33; 살전5:2,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날을 준비하는 일로 무엇을 말씀합니까?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징조를 깨닫는 성도들은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하며, 서로에게 모이기를 힘쓰자고 권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성전휘장에 비유하며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찢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으셨으니 담대하게 그 길로 나아가되 서로 돌아보며 함께 갈 것을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나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구원의 길을 가도록 힘써야합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한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