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만 추모 10주기 공연
벽사전통춤보존회 기획공연 「커다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
스승을 향한 존경을 담아
전통춤의 근간을 지켜내고자 계승의 의지로 올린 추모의 헌무
7월 14일(일) 오후 7시 30분, 국악원 예악당에서 정재만 추모 10주기 공연, 벽사 전통춤 보존회 주최, 이경이·김정현 기획, 차수정순헌무용단·백만키로주식회사·전문무용수지원센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총동문회 후원, 차수정 예술감독(숙명여대 무용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 전통무용전공 주임교수), 이영일 총연출의 「커다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100분) 공연이 있었다. 정재만(鄭在晩)은 근대 한국무용을 집대성한 한성준, 춤 실천의 ‘한영숙의 춤’ 정신을 계승한 정통 한국무용가였다.
‘벽사전통춤보존회’(대표 차수정)는 한성준-한영숙-정재만으로 이음하는 전통춤 계승·보존 단체이다. 이 단체는 특히 ‘승무’의 정신과 맥을 계승하고 전통춤의 올바른 정립과 전통성을 이어가기를 희망하는 무용 전공자들이 뜻을 같이하는 단체이다. 이번 공연은 정재만(1948~2014) 무용가의 넋을 추모하고 그분의 춤 인생에 대한 존경과 사랑, 감사를 담아 제자들이 헌정하는 추모의 무대이다. 정재만은 생전에 춤을 향한 고뇌와 인내가 인생이 되어버린 무용가로서 늘 전통춤의 세계화를 꿈꾸어왔다. 그분의 삶은 온전히 춤 자체였다.
동시대 전통춤 예인들은 빠른 춤 환경의 변화와 장르 간 경계 허물기에 직면하며, 가치관의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진실한 춤으로 늘 세상과 소통하던 무용가의 삶과 무대 위 모습들은 후학들의 미래 원동력이자 교본이 되었다. 그 가르침은 한국 춤의 향방을 제시했으며, 근간의 맥락을 바로 세우고, 가치 있게 춤의 진실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연 제목 ‘커다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이’는 무거운 바윗돌을 매단 듯이 무게 있게 춤을 추어라’라고 강조했던 스승을 향한 제자들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차수정을 빼고 칠십 명의 무용수가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라 화려한 ‘진도 씻김굿’을 현대화한 오프닝 <하늘길.. 꽃을 띄우다>, 한영숙제 정재만류 <태평무>, 한영숙제 정재만류 <살풀이춤>, 정재만류 산조 <청풍명월>, 한영숙제 정재만류 <승무> 여섯 편을 선보였다. 숙명여대 교수 차수정은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무용역사기록학회·한국춤협회 부회장, 춤 문화유산 콘텐츠 발전위원회 위원장, 제45회 서울무용제 ‘명작극장’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녀는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위해 거대한 매머드 무용단을 운용하였다.
한국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정재만은 생전 국가무형유산 ‘승무’ 보유자(2000.12~2014.07), 국립무용단 무용수(1973~1980), 럭키금성 한국창작무용단 창단(1985), 정재만 남무단 창단(1986), 서울 아시안 게임 폐막식 안무(1986), 1987년부터 숙명여대 교수가 되어, 부산 아시안게임 무용총감독(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무용총감독(2002), 월드컵 전야제 안무 총괄(2002) 등에 참여하였고, 2013년 숙명여대에서 정년 퇴임하였다. 익산 강습회(2014년 7월 12일) 뒤 귀경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절절한 사연을 안고 해마다 정재만 추모 공연은 이어진다. 뜨거운 여름날의 제(祭)는 장엄 소나타의 무(舞)적 연희였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정제된 춤의 모든 것’에 걸린 공연은 <추모 오프닝>, <태평무>, <살풀이춤>, <청풍명월(淸風明月)>, <승무>로 엄선되었다. 정재만은 ‘승무’의 적통 승계자였고, 섬세한 그의 동작과 움직임은 선정된 춤의 본이 되기에 과분했다. 차수정 안무, 이영일 연출의 무대를 압도한 ‘벽사전통춤보존회’의 무리춤은 장엄한 추모의 열기와 예술적 심도를 높인 공연이었다.
<추모 오프닝> : ‘하늘길... 꽃을 띄우다’는 갑작스러운 스승과의 이별이 창작된다. 그날의 아픔이 스쳐 간 뒤, 십 년이 흘렀다. 넓고 긴 천으로 하늘로 다리를 놓아 꽃길을 만들었다. 배경 막에는 스승의 얼굴이 투사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분의 넋을 기린다. 추모 의식은 무속신앙과 정화의식이 중심이 된다. 종이꽃을 든 무용수들은 느린 움직임으로 비통한 울먹임을 받아 낸다. 얼굴 없는 영정의 전달이 정신적 교감을 이르며 전통춤 이음을 다짐하는 동작이 된다. 담백한 절제미의 ‘씻김굿’의 변주는 추모의 의미를 더한다.
<태평무>(한영숙제 정재만류) : 무용수가 왕 또는 왕비로 분장하여 나라의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한다. 벽사전통춤보존회’ 의 춤은 우리춤의 의미를 확장하여 춤사위가 매우 우아하고 단아하다. 절제미와 평정심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구성면에서도 태평무의 가치적 의미를 이미지화한다. 차수정 안무의 ‘태평무’는 정재만 특유의 솔로와 군무의 다채로운 안무 구성, 담백함과 화려함의 대비, 견고하면서 깔끔한 발디딤의 조화 등을 교본화하여 한 작품 내에서도 다채로운 춤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안무해 내었다.
<살풀이춤>(한영숙제 정재만류) : 눈물 머금은 서정시, 정재만류 ‘살풀이춤’은 담백, 단아의 대명사로 춤사위의 절제된 품격이 돋보인다. 살풀이장단에 춤을 붙여, 춤추는 무용수마다의 심적 고저, 내면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고도의 기교가 요구된다. 전통춤 가운데 여성미가 극대화된 춤으로써 기원은 무속에서 출발하였으나 동시대 무대예술로서 심미적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다채로운 <살풀이춤>은 무리춤의 정신을 살려 천의 적절한 운용과 시각적 이미지 창출, 전원 여성 무용수의 춤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청풍명월(淸風明月)>(정재만류 산조) : 대한무용협회 지정 명작무 제19호, 거문고에 맞추어 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춤은 여인의 단아하고 깨끗한 마음을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한다. 서정적 정서가 물씬 풍긴다. 춤의 구성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진양의 다섯 가지 장단이다. 단아한 춤의 태가 깊은 호흡에서 배어 나와 여유롭게 인생을 회상하는 듯한 여백미가 강조된다. 남성에게 한량무가 있다면 여성에는 청풍명월이 있다. 춤의 기품과 풍류에서 정재만이 강조한 삶의 철학이 투영된다.
차수정(예술감독, 숙명여대 무용과 교수)
<승무>(한영숙제 정재만류) : 한국 춤사위 가운데 심리적, 무대의 공간 구성미가 뛰어나며 예술적 경지가 가장 높다. 장삼놀음을 통한 동적 춤사위의 무게감과 밀도가 높아 몰입 에너지의 확장성이 두드러진다. 정재만은 “승무’를 출 때는 등허리에 커다란 산을 짊어지듯 무게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장삼자락은 하늘가에 수 천 번의 허공질을 되풀이하면서 뿌려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라고 했다. 염불장단, 도드리장단, 타령, 자진타령, 굿거리, 북, 당악, 굿거리 등 ‘장단별 춤사위’의 구성과 짜임이 매우 다채롭다. 품격의 춤이다.
차수정 예술감독, 이영일 총연출의 「 커다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 ... 」
벽사전통춤보존회 기획의 정재만 추모 10주기 공연은 운집한 추모객과 군무가 하나 된 춤이다. 안무는 세심하게 주제를 향한 무선(舞線)을 조율해내고 있었고, 연출은 동선의 임팩트와 조화의 어울림을 구상하고 있었다. 영상이 만들어낸 과거의 회상과 히스토리를 읽어가노라면 꽃잎이 거로 겹쳐져 있는 장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검게 변한 장미가 가을 미토스로 비춰지지만, 사실은 로만스를 위한 장치였음을 알게 된다.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 예술가에 대한 추모가 자신의 의식을 깨웠음을 알게 되었다.
벽사전통춤보존회 기획공연 「커다란 태산을 등에 짊어지듯,,」는 과거 한 시대를 대표했던 명무를 그리워하는 제자들이 남기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같은 사실적이며 깊은 감동을 남긴 의미있는 일편(一片)이 되었다.
장석용 무용평론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