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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는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을 초청해 '한·우크라이나 비즈니스 포럼'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스비리덴코 부총리 등 8명)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전후 복구 작업에 관한 중장기 로드맵과 추진 현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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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토목건설업체 삼부토건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시(市)와 폴란드 건설회사 'F1 Family Holding LLC'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마리우폴은 전쟁 최대 피해지역으로, 러시아군에 점령된 산업및 항구도시다. F1 Family Holding LLC는 우크라이나 수도권 부차에서 복구 사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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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인프라부의 올렉산드라 아자르키나 차관과 만나 전후 재건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이 자리에서 아자르키나 차관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구축한 재건사업 정보를 통째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달 21, 2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한 국제회의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특수를 잡기 위해 민관(民官)이 일찌감치 한마음으로 뛰고 있다. 우크라이나 특수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과 시설, 사회 인프라 등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특별한 수요다. '한·우크라이나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로스티슬라프 슈르마 대통령실 차장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재건 사업 규모를 9천억 달러(약 1천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무역협회에서 열린 한우크라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스비리덴코 부총리(위)와 포럼장 모습/사진출처:무역협회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추산된 사업 규모는 3분의 1수준인 4,110억 달러(약 530조 원)다.
코메르산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엔은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상황 및 전망'에 관한 보고서에서 "지난해(2022년) 우크라이나 경제는 대부분의 산업 역량과 에너지 인프라를 잃고 29.1% 역(마이너스)성장했다"며 "장기 전망은 전쟁의 지속 기간과 강도, 그리고 4,110억 달러로 추산되는 재건 자금의 조달 능력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유엔이 인용한 재건 비용은 세계은행의 지난 3월 말 발표(3,490억 달러에서 4110억 달러로 상향 조정)에서 나온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4일 전쟁으로 인한 손해를 복구하는데 4천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이 올해 말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전망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피해와 전후 복구 자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1년 예산(2023년 예산은 638조 7천억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이같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전후 복구 사업에 전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우선 순위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에게 전쟁 비용을 부담한(군사 지원에 나선)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갈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비교적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우리나라에게 돌아올 몫은 별로 크지 않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앞장선 폴란드와 앞다퉈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건 다행스럽다. 우리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삼부토건이 폴란드 건설업체와 MOU를 체결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삼성·LG·포스코·한화 등 대기업들이 폴란드로 달려가는 이유로 풀이된다.
하지만, 삼부토건이 폴란드 건설업체-마리우폴시와 MOU를 맺은 것은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무차별 포격·공습으로 도시 인프라와 산업단지가 완전히 망가졌다.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다. 전쟁전 인구 43만명에 땅의 넓이도 244k㎡에 이르러 우크라이나 10대 도시에 속했다. 마리우폴 복구 작업에 참여한다면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현지 상황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 푸틴 대통령은 마리우폴 점령 직후, '전쟁 복구및 재건 시범 지역'으로 지정하고, 후스눌린 부총리를 현지로 보냈다. 도시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미 중장비 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마리우폴을 찾아 복구 사업 진행을 점검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봄철(이제는 여름?) 반격작전'을 통해 마리우폴을 수복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전황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직접 통제를 받고 있는 마리우폴의 도시 재건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망명 시' 담당자와 MOU를 맺었다니, 다소 엉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올렉산드르 아자르키나 우크라이나 인프라개발부 차관과 회담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출처:국토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서 한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바르샤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하며 한국 기업들의 폴란드 진출에 힘을 실어줬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의 '최대 주주' 자격으로 누구든지 빨리 재건 사업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관건은 전쟁 상황과 사업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양국의 법 제도와 사업 관행상 마찰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다. 재건사업 참여를 원하는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국토교통부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와 함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같은 공공기관,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이유다.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참여하면 '대박이 터진다'는 식의 접근이다. 원 장관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는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어 향후 EU 내 거점과 파트너를 확보한다는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중동이나 동남아에 진출하는 것과 의미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