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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한국갤럽이 2014년 4월17일~5월2일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해 12일 발간한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를 보면, 종교를 믿는 20대 비율은 10년 전 45%에서 31%로 14%포인트 감소했다. 30대 종교인 비율 역시 10년 전 49%에서 이번엔 38%로 11%포인트 감소했다. 청년층의 종교 이탈율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1) 2030 세대의 탈(脫)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 더 나아가 향후 10년, 20년 장기적인 종교 인구 감소와 교회의 고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종교 인구를 처음 측정한 해는 1985년으로 그 해 개신교 인구는 650만명 정도로 전체인구 대비 16.0%였다. 당시 개신교 인구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다. 39세 이하 개신교인(어린이, 청년)이 전체 개신교인 대비 79.0%로 10명 중 8명이 39세 이하 젊은 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제 개신교가 그런 적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60세 이상 고령층 개신교인은 전체 개신교인 대비 5.5%에 불과했다. 그러던 개신교 인구 구조가 20년이 지난 2005년에는 862만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18.3%로 2.3%포인트 증가됐지만 실제 인구구조는 큰 변화를 보였다. 39세 이하 젊은 층이 79.0%에서 60.3%로 18.7%포인트 줄어들었고, 60대 이상 고령층은 5.5%에서 12.5%로 무려 두 배 이상 늘었다.2)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2012년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를 했었던 학원복음화 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대학 내에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응답한 학생은 18% 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성경 전체를 진리로 믿는다고 반응한 학생은 6.8%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1.2%에 달하는 학생들은 성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유추하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층의 가나안성도 현상이 나타나면서 종교란에 기독교인으로 표기는 하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이토록 심각하게 청년층의 영적 사막화가 진행되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외적으로는 기독교 이미지의 추락과 신뢰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소식들은 청년층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청년층의 영적 사막화의 내적요인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청년공동체 속에 세워지지 않으면서 영적 공동체 형성이 빈약해졌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목회자의 청년 목회 철학의 빈약함으로 인해서 청년층을 일군으로 일을 시키면서도 청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서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측면이 빈약해진 것이다. 결국 교회마다 청년을 제자화하여 동역자로 세우는 일에 실패하면서 결국 청년 운동성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만 분석하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대안이 필요하다. 청년사역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하여 청년사역의 10가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프로그램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 되어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광인론에 다시 빠질 때이다. 먼저 제자가 된 사람만이 진정 제자를 삼을 수 있다. 제자가 되지 않으면 제자훈련도 성공의 도구로 오용한다. 청년사역자가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한다.
청년 공동체는 언제나 청년을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프로세스를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 화려한 프로그램에 속지 말라. 프로그램이 지나간 자리에는 영적 쓰레기가 난무하지만 사람을 키워내는 과정(프로세스)을 거친 자리에는 사람이 남는다. 교회는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희망이다. 그러므로 최우선적인 사역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 커다한 숲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한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청년 사역을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할 때이다. 매년 청년 공동체에서 1명이든 2명이든 소수라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제자훈련을 실행하라. 단지 지식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실천형 제자훈련을 진행하라. 군중은 많아도 순식간에 흩어진다. 제자만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우리 시대는 먼저 제자가 된 청년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자신이 제자가 되어서 제자를 삼으려는 청년사역자들이 필요하다. 편법이 난무하는데 우직하게 정도를 걷는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는 공동체가 너무 절실히 필요한 한국교회의 오늘을 본다. 누군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광인론에 빠지는 청년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오늘 한국교회 청년 사역의 문제는 제가가 되어 제자를 삼는 청년사역자의 빈곤에서 오는 문제들이 아닐까 고민해 본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문제는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말할 수 없기에 생기는 문제들로 인해 온갖 악취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귀족화되어가고 왕궁을 향하는 사역자를 조심하라. 우리 시대는 광야로 수시로 나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진정한 복음의 광인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소수일지라도 진액을 쏟아 부어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2. 그리스도의 몸 된 유기적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됨의 경험이 청년을 살린다. 청년들이 청년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식하게 하라. 오늘날 청년사역은 외딴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내부적으로 서로 연결이 되고 교회 외부적으로도 연결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몸의 사고가 필요하다.
청년 사역을 통합적이고 유기적 사고 속에서 진행하라. 청년사역은 교회의 핵심 사역이어야 한다. 청년 사역의 위치는 교회를 세우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청년층의 삶의 자리와 적실성이 있어야 하고, 상처투성이인 세상 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청년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 공동체라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를 늘 고민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만 고민해도 사역의 방향성이 선명해질 것이다. 문제는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고민과 고뇌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자라는 청년들은 예수님을 닮아가기 보다는 각기 소위에 좋을 대로 살아가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것을 고민하는 청년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사에 공동체의 관심을 둘 것이고 하나님이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반응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적 공동체로서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공동체는 운동력이 있고 선명한 생명력이 있다. 주의 손과 발이 되어서 세상을 치유하며 주님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숫자를 늘릴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겠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면서 시대적 대안을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만들어 가는 이 시대의 작은 예수가 되라. 더 나아가 교회가 외부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3.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연합과 일치라는 것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 청년 사역의 특징인 창조성과 다양성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연합과 일치다. 우리 시대는 공룡의 모델보다 개미의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작은 교회라고 사역의 범위를 제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좋은 기독교 사역 단체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건강한 교회 연합활동을 활용하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교회 규모에 메이지 않고 청년 사역을 창조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사역은 규모의 논리를 따르면 안 된다. 재정에 묶이면 안 된다. 오히려 한국교회라는 큰 숲 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창조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연합과 일치를 붙잡고 함께 한다면 청년 사역은 그야말로 사방이 영적 광맥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전문성 있는 기관에 위탁을 하고 동역을 하면 새로운 사역의 길이 열린다. 문제는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를 할 때이다. 우물을 박차고 나와서 다양한 방식의 사역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라.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외견상의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모인 군중의 머리의 수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는 곳이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 공동체가 외모 콤플렉스, 숫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연합하고 연대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숲 속의 나무가 되도록 하라. 우리 시대는 공룡의 모델보다 개미의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4.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청년들에게 욕망을 탐하는데서 헤어 나오게 하라. 청년들을 바벨탑의 성공신화가 아닌 출애굽의 성경적 가치를 따라가도록 하라. 교회 안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경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수치가 드러나면서 현제의 교회 공동체의 한계와 모순을 많이 경험한다. 성공주의 신화에 깊이 빠져 있었던 한국교회가 깨어나지 않으면 이대로 잠들 수밖에 없는 위험수위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황금 송아지 앞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그것을 예배라고 하였던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사역도 마찬가지로 맘몬과 아세라의 논리에 빠져서 숫자 모으기에 바쁘고 성공으로 청년들을 몰아가기에 바쁘다. 여기에서 청년들은 신앙의 회의에 빠진다. 신앙과 삶의 분리와 세상을 탐하는 교회에 실망하는 것이다. 세상의 허다한 숱한 구조의 벽들과 차단막으로 인해 신앙이 욕망 충족의 도구에 머문다면 그 신앙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신앙의 초점을 하나님 나라 비전에 두어야 할 때이다. 세상은 바벨탑을 세우기에 바쁜 시대이다. 크고 높고 거대한 바벨탑을 통해서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는 시대이다. 청년 사역자는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다. 현실은 욕망을 탐하는 시대이다. 현상은 쾌락을 위해서 뭐든 하는 시대이고 욕망이 합리화되고 합법화 되어 가는 시대이다. 그 속에서 청년 사역자는 영적 본질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영적 본질은 결국 청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청년들이 출세가 아닌 출애굽의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성경을 삶으로 연결하도록 도우라.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경이다.
5. 교회 안에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상과 일터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단지 교회 안에서만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이끌라.
오늘 많은 청년 공동체에는 숱한 프로그램이 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은 주로 예능을 패러디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예능 패러디로는 청년들을 붙들어두고자 하나 역부족이다. 청년들이 왜 교회에 나올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재미를 위해 올까? 물론 재미는 필요하다. 뻔한 공동체보다 펀(Fun)한 공동체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의외로 많은 청년 사역자들이 재미의 포로가 되어 있다. 설교도 웃기려 하고 프로그램도 웃기려 하고, 엠티도 웃기려 한다. 그런데 예능에 중독된 세대들이 예능 수준 이하의 교회에 기대하는 것이 예능 패러디일가? 단호히 말하거니와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청년들은 하나님을 정말 알고 싶어서 교회에 온다. 그나마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월적인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리인 예배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청년들에게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공동체를 깊이 세워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예배의 중심에 자리하는 말씀의 시간이 잡담, 사담, 농담으로 채워지지 않게 하라. 청년들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뿌리를 내린다. 결국 청년 설교를 철저하게 준비하여서 말씀과 청년들의 현실세계를 연결하고, 말씀과 시대가 만나고, 말씀과 청년들의 삶의 고단한 자리가 만나야 한다. 그런 예배 자리를 청년들은 사모하며 찾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청년 사역자 안에 이 확신이 없이는 청년을 위한 사역은 없다. 무엇보다 청년 사역자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예배자가 되라. 그보다 더 우선적인 예배 사역은 없다. 예배를 쇼로 전락 시키지 마라. 청년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예배에 집중하면서 교회 안에서만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이끌라. 그래서 청년들이 일상의 예배자가 되고 일터의 예배자가 되게 하라.
6. 소그룹의 역동성을 살리는 구조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소그룹이 말씀과 기도와 영적 교제로 청년공동체의 영적 운동력의 허브가 되게 하라. 청년들이 소그룹으로 모여서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도록 이끌라.
대그룹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면 소그룹의 역동성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 감화와 교통 교제가 청년 공동체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 된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공동체는 빚어져 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진실된 나눔이 있는 공동체로 소그룹 역동성을 경험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소그룹 단위가 영적 운동력의 핵심이 되게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소그룹 리더를 잘 양육하고 훈련하여서 소그룹 리더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이 공동체를 세워가는 역량임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말씀 운동, 기도운동, 섬김 운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일어나는 장소가 소그룹이므로 소그룹 리더 모임을 통해 먼저 소그룹 공동체를 경험하도록 하며 말씀과 기도를 맛보아 아는 리더 훈련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모임 시간에 심혈을 기울이라. 리더들이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소모성 공동체와 소비성 공동체로 전락한다. 청년공동체는 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말씀과 기도에 기초한 소그룹 공동체이다. 건강하게 말씀과 기도가 살아 숨 쉬는 소그룹 공동체만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적운동력을 가지고 청년성 있게 돌파구를 여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7.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는 선교적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청년 공동체가 내부소비적인 공동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시대에 역동적인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청년사역의 미래를 여는 핵심 역량이다. 청년공동체의 방향을 선교적 공동체로 전환하라. 모든 것을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라.
청년 공동체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있다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다. 그 어떤 사역이나 프로그램도 영혼 구원보다 더 우선적인 가치가 아니다. 문제는 전도와 선교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도의 방식은 선교적인 방법이어야 통한다. 과거의 방법으로 노방전도만 지속해서는 전도가 쉽지 않다. 교회로 오게 되는 불신자들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은 관계전도를 통해서 온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관계가 전도의 매개가 된다면 청년들이 더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들에게 만인제사장에 대한 정체성을 심어 주면서 영혼 구원의 가치 인식을 분명하게 해 주어야할 때이다. 전도가 약해지면 공동체가 약해진다. 전도와 더불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전도를 해서 불신자가 교회에 왔을 때 공동체토양이 중요하다. 가시덤불이나 돌짝밭과 같은 공동체 토양이라면 열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길가에 버려진 씨앗처럼 소외되고 방치 된다면 열매맺지 못할 것이다. 전도의 문제는 결국 청년 공동체의 건강의 척도가 된다. 건강한 공동체가 좋은 당과 같이 뿌려진 씨앗들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전도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닌 유기적 사역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공동체의 흐름이 건강하면 전도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관계 속에 있는 이들을 초대했을 때 환대를 받으며 잘 정착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공동체는 전도는 구호가 아닌 삶의 방식일 것이다. 특히 다문화 시대에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미래를 여는 핵심 공동체 역량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하고 내부 집중형이 아닌 영혼 구원형의 선교적 공동체로 세워가면서 일상과 일터에서 선교적 삶을 살게 하라. (새로운 청년 사역이 온다. 새로운 교회가 온다. 이머징 처지,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책을 권한다.)
8. 개인 구원 신앙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섬김으로 변화 시키는 공적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한국교회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면서 공적 신앙을 강조하지 못함으로 한 쪽 날개를 잃어버렸다. 건강한 신앙은 개인 구원에서 공적 신앙으로 확대가 되고 확산 된다.
우리 시대 청년 사역은 이미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다. 개독교라고 외치는 안티들의 소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선명한 정체성에서 나오는 도덕성과 하나님의 나라가 일상에서 보여 지는 것일 것이다.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 세대를 향해서 청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퍼져가는 것이 최고의 청년 사역일 것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 공동체,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퍼지는 공동체는 누룩과 같이 겨자씨와 같이 세상을 바꾸는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로 자리매김을 하려면 결국 청년들에게 직업 소명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가르쳐 지키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청년들을 교회에 가두고 교회 일에만 충성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차원을 확장 시킬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속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신앙이 드러나야 할 자리는 교회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상과 일터이기에 청년들을 세상 속에서 성경적인 가치를 붙들고 시름하도록 양육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 교회일이 중요한 만큼이나 세상일이 중요하며 교회 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듯 세상일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충성되게 주께 하듯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은 이제 이전 세대처럼 개인 구원 신앙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구원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확장 시켜서 세상을 섬김으로 변화 시키는 공적 신앙으로까지 수준을 높이고 영적 성숙의 차원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비도덕적인 지도자를 당당하게 비판하고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면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꾸는 공적인 신앙을 가진다면 기독교를 향한 돌팔매질이 사라질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의 청년 공동체는 각 영역에서 성경적인 가치를 훈련받은 지도자들을 키워내는 이 시대의 아둘람굴이 될 것이다. ( 이 부분에 있어서는 폴 스티븐슨 교수의 책들을 추천하고 싶다. )
9. 통합적이고 통전적인 청년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교회 내부적으로는 어린이 청소년과 장년과 노년을 연결하라. 교회 외부적으로는 이웃. 민족. 역사를 복음과 연결하라.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의 필요를 연결하라.
연결하라. 21세기 특징은 연결하는 것이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어린이 청소년과 장년과 노년을 연결하라. 외부적으로는 민족, 복음, 역사와 청년을 연결하라. 세상의 필요와 하나님의 필요를 청년과 연결하라. 고난과 고통의 현장을 청년과 연결하라. 그런 까닭에 청년들의 신앙과 삶을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독불장군보다 네트웍을 통해서 일하는 시대이다. 교회는 태생부터가 공동체적이다. 혼자만 살고 혼자만 살찌우려고 하는 세포는 암세포이다. 건강한 세모는 지체됨을 소중히 여기면서 서로 연결되어진다. 청년사역이 건강해지려면 교회와 전체적으로 연결 되어야 한다. 세상과 연결 되어야 한다. 민족과 열방과 연결 되어야 한다. 시대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브리지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이다. 청년들의 신앙을 모든 것으로 연결하여 풀어가도록 훈련 시켜야 한다. 통합적이고 통전적인 청년 공동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연결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청년정신이다. 청년정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프로테스탄트이다. 성경에 기초해서 어그러진 모든 것에 대해 건강한 저항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이 되고 신앙이 사람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청년과 청년들의 연대가 필요하고 교회의 규모에 따라 사역하지 아니하고 네트웍을 통해서 사역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란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10. 청년성을 살려서 새 포도주를 담아내는 새 부대를 만드는 사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청년 공동체는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성경을 삶으로 실험하고 소화 시키며 도전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청년들에게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라. 청년들은 이미 기성세대에 의해서 통제되는 세대가 아니다. 그들의 세대를 담아낼 새 부대를 만드는 작업을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라.
오늘 한국교회 청년 공동체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다. 무엇이든지 그 시대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실천해 가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청년 공동체는 기존의 시스템 속에 안주하는 순간부터 이미 정체와 쇠퇴가 진행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본질에 있어서는 붙잡음이 필요하다. 본질이 복음이라면 그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인 부대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를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내용은 변하지 않아도 형식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새 부대를 준비하려면 청년성 있는 실험 정신이 필요하다. 말씀을 삶으로 실험하고 공동체적으로 실험하여서 새로운 우물을 계속 파야 하는 것이다. 청년공동체에서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이 숨 쉬고 있다면 청년들은 그러한 공동체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실수가 용납이 되고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일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치와 방향을 던져 줄 수 있는 공동체일 것이다.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이 살아 있는 공동체는 초대교회라고 생각 된다. 사도행전적 공동체와 각 시대와 상황 속에서 나온 서신들을 연구하면 교회는 안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의 기치를 붙잡고 세상 속에서 과감하게 도전하고 실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내었고 모든 장애물을 넘어서서 전진하는 공동체는 말씀과 기도라는 재료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계속 요리를 하여 세상을 살리고 먹이는 공동체로서 존재 하였다. 청년 공동체들이 그러한 대안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청년 공동체를 들어다보면 그 시대의 고민이 보이고 그 시대를 향한 대안이 보이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묵묵히 시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보여야 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안타까운 것이 청년들이 세상의 흐름에 질식하여 역류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건강한 도전 정신과 실험정신을 가진 공동체가 세워진다면 여전히 청년 공동체는 오늘 허다한 문제를 가진 세상을 변화 시키고 새롭게 하는 희망일 것이다.
이러한 10가지 패러다임 전환의 기본에는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이 기본임을 기억해야 한다. 청년들을 철저하게 말씀과 기도로 깨우고 세워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어떤 패러다임도 일시적인 프로그램이나 교회 성장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그러나 말씀의 본질에 기초하여 성경이 보여주는 방향을 찾아 간다는 것은 본질 중심의 사역으로 향하게 한다.
지금 한국 교회의 절실한 필요성은 기본으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10가지 패러다임의 방향성을 성경에 기초해서 확신을 가지고 각 지역교회에 적합한 방식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청년 공동체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허다한 프로그램을 찾아서 배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말씀묵상과 기도로 청년들을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흐르는 생수를 영적 기근에 시달리는 세상 속으로 흘러 보내는 것이 봉사와 섬김의 자리, 전도와 선교의 자리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각자의 자리를 기경해야 한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을 경험하고 생수를 곳곳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만들어갈 청년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청년대학부 사역은 흥망성쇠의 기로에 서 있다.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는 결국 원초적 영성의 농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 청년사역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깊이 있는 복음과 그에 대한 순순한 열정, 한 영혼을 향한 양육을 통한 성장과 성숙,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비전제시와 헌신이 중요하다. 사람은 단시간에 자라지 않는다. 치열한 씨름이 필요하다. 세심하지만 때론 강하게 한 영혼 한 영혼과의 치열한 각개전투가 필요하다. 10가지 방향성을 각 교회 청년 공동체 상황에 맞도록 고민하면서 적용해 본다면 건강하고 행복한 청년사역 활성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년공동체가 몇 명이 되는지 가늠하는 숫자놀음 대신, 단 한 명의 영혼일지라도 그 영혼의 변화를 소중히 여길 때 진짜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청년을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그 위대한 사역을 기다려주고 응원하며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사역자들이 장기적으로 사역하도록 재정적, 물리적, 정신적 여건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 사역과 장기적 사역을 위한 모든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본질적이며 가장 기본에 충실한 청년사역이 결국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역으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청년공동체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사역을 위해서 기도드리며
이상갑목사
1) 한겨레, :2015.02.12, 젊은층 이탈로 ‘종교 인구’ 비율 줄어
2) 지용근 대표, 2016.05. 아이굿뉴스, 1344호, "1985년 개신교인 10명 중 8명 30대 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