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9:31-43
‘31.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다윗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이야기와 다윗의 복귀로 인하여 빚어진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 사이의 갈등에 관한 내용입니다. 바르실래는 함께 가자는 다윗 왕의 제안을 사양하며 대신에 김함을 보냅니다. 유다 백성이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자 이스라엘은 유다가 왕을 도둑질했다고 비난합니다. 왕에 대해 열 몫을 가졌다는 이스라엘보다 왕의 종친인 유다의 말이 더 강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바르실래의 선행, 다윗의 제안과 바르실래의 부탁,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 유다의 강경한 대응 등입니다.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 다윗 왕과 동행하자는 호의를 극구 사양하고 대신 바르실래가 김함을 데리고 가 달라고 청했다는 말입니다. 김함(Kimham)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한국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바르실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아들을 왕에게 천거함으로 다윗의 예루살렘 이주 제안에 대해 응답한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다윗은 다른 왕자들처럼 김함에게도 베들레헴 근처에 땅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증거가 예레미야에 나오는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라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이집트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바로 예수님의 부모 마리아와 요셉이 머물렀던 장소라고 합니다. 다윗은 임종 시에 솔로몬에게 김함도 다른 왕자들과 같이 대우해달라고 유언함으로 바르실래의 호의에 끝까지 보답합니다.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 다윗과 백성들이 강을 건너 길갈 곧 요단 강가에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말로,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온 유다백성과 이스라엘백성 절반이 건넌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유다지파의 대표되는 사람들 전부와 이스라엘지파의 대표되는 사람들 약 절반이 왕과 함께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지파의 대표가 절반 밖에 참여 하지 못한 이유는 유다지파가 왕의 예루살렘 귀환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유다가 왕의 복귀행사에 주도권을 독점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뒤 늦게 그런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이스라엘 지파와의 논쟁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다윗 왕의 귀환 문제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먼저 협의하고 있었는데 그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유다 지파가 선수를 쳤기 때문입니다. 유다지파의 특권의식과 경쟁심 때문에 그들은 분노합니다. 그것은 결국 분쟁이 되어 다음 반란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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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 길르앗의 노인 바르실래가 다윗이 피난처에 있을 때 왕은 물론 왕의 모든 부하들을 먹여 살렸다는 기록입니다. ‘공궤하였다’는 것은 음식을 공급하여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당시 다윗의 부대는 약 4,000명 정도였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언합니다. 비록 그 숫자는 압살롬의 병사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조그만 성 마하나임에서는 감당하기 벅찬 식구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먹을 것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한 번 먹었다고 영원히 배부른 음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그 말은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 공급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복귀할 때 유독 함께 가자고 한 것을 보면 그의 지극한 정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나이를 밝히고 있으니 80세입니다. 자신은 노인으로 어떻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옳고 그른 것을 더 분별할 수 있으며, 음식의 맛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예가 이삭이 별미를 좋아한 관계로 야곱과 에서가 복이 바꿔진 사건입니다. 그 때 에서의 나이는 족히 80은 넘었을 것입니다. 바르실래는 결코 음식 맛을 모를 리 없습니다. 치매환자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참고, 절제하고, 공손히 사양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본이 되는 어른입니다. 그것의 결정적인 증거가 그는 물질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물질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펑펑 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이가 먹을수록 벌벌 떠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나마 없으면 살 길이 막막하고 자식들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아낌없이 지출합니다. 다윗이 제일 춥고 배고플 때입니다. 그는 필요할 때 물질을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손자 손녀를 위해 큰 집에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십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투자해야 하기 위한 것으로, 아들 봉급으로는 원활히 지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신들이 죽으면 다 너희 것이라고 말하는 노인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물거품이 되기 쉽습니다. 때를 놓쳐 아이들을 위한 종자돈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 늙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늙어 가느냐가 인생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바르실래처럼 나이 들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되, 일회성이 아니고 성의를 다하여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즐거움이 아니라 하늘의 즐거움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더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나누기를 원합니다. 물질, 시간, 재능, 그리고 사랑 등입니다. 나눔은 신비입니다. 나누는 사람은 계속 나눌 것이 생깁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럴 마음이 없으면 나눌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노년은 찬란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기보다 찬란합니다. 평소 어떻게 사느냐가 그 찬란함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