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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말해의 사계절
영화는 어느 무덤가에서 고사리를 뜯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목의 거친 껍질처럼 보이기도 하는 피부는 살아온 억센 세월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고사리를 따며 되뇌는 노랫가락은 회한이 담긴 듯 구슬프게 들립니다. 다큐멘터리 「말해의 사계절」(허철녕 감독, 2017년)은 90세의 여성 김말해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도곡마을에서 살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그곳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지금껏 살던, 밀양을 벗어난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볼 수 없었을 것만 같은 한 인물의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한국의 현대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노인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혹독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남편을 떠나보냈고 그 과정에서 시어머니가 경찰의 총탄에 희생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이후 큰아들은 아버지가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홀몸으로 견뎌내어야만 했던 노인의 일상은 가족을 건사하기 위한 노동의 반복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년의 삶 역시 평온하지만은 못합니다. 바로 765Kv의 고압 송전탑이 노인이 사는 마을을 지나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송전탑이 세워지기로 예정된 부지는 바로 시부모를 모신 선산입니다.
「말해의 사계절」은 주인공 김말해의 마지막 싸움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투쟁의 의의와 당위성에 향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인공의 일상을 묵묵히 보여줄 뿐입니다. 감독은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의 사계절을 가만히 지켜보고 말해의 사연은 그 속에서 자신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관객은 그제야 말해가 처음 되뇌었던 ‘내가 글을 쓸 줄만 알았더라면 책으로 몇 권은 써냈을텐데’라는 말을 이해하며 말해의 사연을 점차 알아갑니다. 감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인공의 삶을 기록하는 역사가의 태도를 취한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가라는 단어가 거슬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사적인 시선의 카메라에 역사가의 위치라는 서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처음 소개하면서 ‘다큐멘터리란 스크린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게 하는 창’이라는 말씀을 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고대 그리스 이래로 기록해 볼 만한 역사, 이른바 공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의미해 왔습니다. 수 천 년이 지나고 영화가 발명된 이후에도 다큐멘터리로 기록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공적인 소재라고 흔히 믿어왔고 그렇게 행해져 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와 같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방법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권력과 자본의 후원이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실존주의의 시대와 신사회 운동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개인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들, 그러니까 정치 이외의 것들도 공적 영역에서 말해져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쉬워지자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권력이나 자본의 의도가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향해 창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는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임을 인지하고 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더욱 새로운 통찰을 얻습니다.
영화 「말해의 사계절」 가운데 특히 두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는 송전탑이 지어지고 그곳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바리케이트에 선친의 무덤이 가로막혀 더 이상 그곳에 다가 가지 못하게 된 노인이 철망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지난 시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한 노인이 선대의 무덤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보 혹은 발전이라고 믿는 것이 진정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보장하는 것인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해의 전통적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2015년 세상을 떠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힘의 한 세기」를 떠올렸습니다. 107세의 거장이 자신의 마지막 침상 앞에서 우리에게 남겨준 이미지는 1930년대의 희망에 가득 차 이제 막 수력 발전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한 세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 기술문명을 통해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요?
또 한 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말해와 그의 이웃들이 예고 없이 전기가 단전되자 일어나는 해프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며 싸워온 한국전력에 전화해 언제 전기를 다시 연결해 주냐며 따지고 전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푸념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도 전기를 그토록 필요로 하면서 왜 희생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문명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후대와 함께 나누어 써야 하는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 불편의 크기로 인해 누군가의 희생을 작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송전탑이 완공되고 송전이 시작된 마을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마을의 일상은 예전과 같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그곳의 풍경이 바뀐 것처럼 긴 싸움을 거치며 이웃들의 사이도 예전과는 달라진 듯 해 쓸쓸합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나면 자막을 통해 김말해가 마을의 마지막 협상안 서명거부자임을 알려줍니다. 그녀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서명을 할지 모릅니다. 더 이상의 거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말해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고집스럽게 싸워야만 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말해의 사계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현대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수많은 ‘무엇’들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어느 아침의 기억
스페인의 영화감독 호세 루이스 게린의 2011년 작인 「어느 아침의 기억」은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죽음을 되짚어 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감독이 사는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들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날씨의 변화와 나무의 순환을 통해 시간의 경과를 암시하는 짧은 컷들이 반복되며 관객은 이를 통해 맞은 편 건물의 사람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어느 날, 맞은 편 건물이 새 단장을 하고 카메라는 발코니를 떠나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카메라가 묻는 것은 속옷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켜던 남자, 마넬의 죽음입니다. 건축 연대로 추정되는 1900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그 건물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넬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창밖으로 들려오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기억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소수의 사람들 역시 마넬의 죽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은 매년 그 죽음을 기억하는 건배를 할 뿐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마넬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관객은 서서히 그를 알게 됩니다.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마넬이 살던 방으로 향합니다. 방은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흔적들과 영화 속에서 그와 동일시되던 사람들의 시선은 죽은 마넬의 방을 향하고 있습니다.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시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카메라 뒤에는 주로 질문하고 관찰하는 감독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감독의 시선입니다. 처음 영화의 주제를 찾아 자신의 발코니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이 마넬을 발견합니다. 감독은 단 한 번도 카메라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유리창이나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인지하도록 만듭니다. 이를 통해 마넬의 기억을 추적하는 감독의 시선에 관객이 동참하게 됩니다. 감독은 계속해서 발코니의 창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건너편 건물의 또 다른 수많은 창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갑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관음증적인 욕망은 ‘마넬이 왜 죽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전환됩니다.
마넬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넬이 스쳐 지나간 순간, 멀리서 보이던 모습, 연주하던 소리와 같은 단편적 기억을 갖고 있을 뿐 입니다. 그런데 마넬이 죽은 지 이년이나 흐른 시점에도 사람들은 마넬을 아주 자세히 기억합니다. 미용실에서 만난 한 사람은 ‘모든 죽음은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마넬의 발코니를 바라보았거나 혹은 자신의 발코니로 들어오는 마넬의 연주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넬을 알게 되는 것은 마넬이 부재한 순간부터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서로 마넬의 연주를 말하고 생전 모습을 기억하기 시작합니다. 음악가들은 마넬의 음악을 이야기하며 스스로와 동일시합니다.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은 같은 악기를 한다는 이유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은 스케일(화음 음계)을 연습하는 습관이 닮았다는 이유로 마넬에 대한 기억들을 자신에게 맞춥니다. 마넬의 죽음을 직접 본 사람들의 기억은 그들이 갖게 된 사건의 외상을 보여줍니다. 분수대와 바 사이의 공간에 떨어진 마넬의 마지막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그 공간은 더 이상 그 전과 같은 곳일 수 없습니다. 그 공간을 마주할 때면 그들의 망막 뒤에서는 언제나 마넬의 죽음이 재현됩니다. 사람들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영화 같았어요.”,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 같았지요.”하고 말을 합니다. 매체가 다루는 비극, 죽음은 현실보다 더 강조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현실로 인식되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죽음이 매체가 구현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역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호세 루이스 게린 감독은 영화의 매체성과 영화 그 자체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니스프리」에서는 영화 감독 존 포드의 「조용한 사나이」가 촬영된 마을을 찾아가 영화가 촬영될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를 가지고 ‘영화가 기억하는 공간’, ‘영화를 통해 기억되는 공간’들에 대한 감독의 생각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림자 열차」는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유품인 가족 기록 필름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찾는 구조의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탐구합니다. 「어느 아침의 기억」의 마지막에서 감독은 첼로 교습소 꼬마의 입을 통해 오르페우스 신화를 이야기합니다. 목이 잘려 떠내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노래해야만 했던 오르페우스, 게린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넬의 집에서 벽에 걸려 있는 그림과 카메라의 클로즈업이 의미심장하게 제시됩니다. 한 남자는 바이올린을 켜고 있고 다른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좌절에 빠져 있습니다. 이 그림들의 클로즈업 사이에 감독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삽입했습니다. 그 영화에서 채플린은 광적으로 바이올린을 켜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집니다. 감독은 영화라는 것이 현실의 재현을 통해 비극적 상황에서도 그것을 넘어 극복하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작가적 신념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우리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진 후에야 그것을 기억하게 되는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매체와 현실은 자주 뒤바뀝니다.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잔인한 사건들을 통해 점점 더 자극에 둔감해지고 가상연애나 극한의 생존을 보며 현실을 잊고 부조리를 인내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일상적인 선택에서부터 정치적인 결정까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고 매체가 알려주는 대로 믿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회일수록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과 윤리는 중요해지는 것이겠지요. 영화 제작을 업으로 살아가는 저에게도 그것은 막중한 임우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로 나누어가며 예술가들을 길들이고 현실을 비참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목이 잘려 떠내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던 오르페우스와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이들이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내 친구 정일우
신학대학을 중퇴한 후, 적지 않은 나이로 입학한 예술학교의 쉰내기 시절 일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예술이 아니라고 룸메이트와 밤새 논쟁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생각이 어떠한들 무슨 상관이랴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간 기억이 납니다. 결국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자기 신념을 지키며 삶의 매순간을 훌륭하게 살아간 이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야 말로 진짜 예술이 아니겠냐며 그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새벽녘에야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예술에 대한 생각도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온전히 살아낸 주인공들을 그린 영화를 볼 때면 그 시절 생각이 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역시 ‘삶의 예술가’이자 ‘사랑의 예술가’였던 고(故) 정일우 신부의 삶을 그린 「내 친구 정일우」(김동원, 2017, 다큐멘터리)입니다. 정일우 신부의 3주기를 맞이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지난 겨울 호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김동원 감독이 오랜만에 내어놓은 신작입니다.
영화는 정일우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화면이 편지형식으로 짜여진 네 편의 내레이션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첫째 편지는 후배 예수회원이 선한 표양이던 선배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로 정일우 신부의 영성적인 모습이 그려집니다. 영성지도를 부탁했던 후배들, 함께 지낸 신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제로서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되살아납니다. 후배들이 기억하는 정일우 신부는 누구보다도 성소를 소중히 생각했던 선배였습니다. 다가오는 부르심을 그저 ‘살아버리라’고 말하면서도 성소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느님 앞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 영성가였습니다. 그리고 한계에 부딪히고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어차피 우리는 이리 저리 돌려가며 숨기려고 애써보지만 결국 하느님 앞에서 부족함을 숨길 수 없는 깨어진 꽃병이라고 말하며 위로하는 사랑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파격적인 분이었습니다. 공동체 미사는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 잔치였습니다. 비신자 주민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면서도 그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제도도 관습도 정일우 신부를 속박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예수처럼 살았습니다.
둘째 편지의 발신인은 빈민운동의 도반이었던 고(故) 제정구 의원의 부인입니다. 청계천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던 시절 이야기와 복음적 공유경제 공동체의 성공적 사례가 된 복음자리 공동체 이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일우 신부는 천주교 도시빈민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제정구 씨와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정일우 신부는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무언가 그들에게 해주려하지 않고 다만 그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마을청년들에게는 좋은 선배이자 선생, 술친구였고 아이들에게는 소꿉친구였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던 중 철거가 시작되자 추기경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이주해 집을 짓고 마을 사업을 벌여 빚을 갚고 자립에 성공합니다. 정일우 신부는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공동체가 자립할 수 있게 되고나서 정일우 신부는 그곳을 떠나 상계동으로 향합니다.
셋째 편지는 상계동 철거민들의 투쟁현장에서 정일우 신부와 함께 했던 김동원 감독이 자신의 기억을 꺼내어 놓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자신에게 자발적, 복음적 가난을 가르쳐준 스승에게 그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 마지막 편지는 도시빈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정일우 신부가 농촌 문제로 눈을 돌려 귀농하여 살던 시절이 그려집니다. 정일우 신부는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농촌에 정착하여 유기농업의 싹을 틔웁니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려지는 정일우 신부의 마지막은 심각한 치매에 걸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던 신부가 어린애처럼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에 빠질지 모르는 교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깨진 꽃병인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살아가는 교만은 우리를 탐욕스럽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풍요롭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최빈국에서 세계적으로도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점점 가난한 자들의 자리는 사라져 갑니다.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살고 아이들도 그렇게 모여서 자랍니다. 연말연시나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가난의 전시장에서나 가난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를 누리는 것은 세습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믿고 그저 내가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낙오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달려갑니다. 점점 가난한 자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는 이 사회에서, 억울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캄캄한 현실 속에서 감독은 정일우 신부를 그리워합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변호해야 하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냐는 감독의 외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일우 신부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자들 편에서 그들을 가장 우선 선택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의 표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 방법은 당신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발끝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로 알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함께 그들과 같은 땅을 딛고 그들의 이야기를 몸으로 들어 발끝까지 가득 채우는 삶이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발끝으로 듣고 공감하고 할 수 있는 지지와 연대를 하는 것이야 말로 정일우 신부가 이 세상에 틔운 싹을 우리 사회 속에 키워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영화를 읽어 주는 남자] 체리향기
몇 년 전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던 중이었습니다. 발에 온통 물집이 잡혀 한 걸음 떼기조차 힘들었고 억수같이 내리던 비마저 어깨를 무겁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때 길 옆 나무에 달린 빨갛게 익은 체리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을 뻗어 체리를 따서 입에 넣은 순간, 입 안에 퍼지던 싱그러운 향기는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고단한 순례길을 이어준 체리향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 작품, 「체리향기」(Taste of Cherry)입니다. 영화는 차를 몰고 인력시장을 돌며 누군가를 찾는 주인공 ‘바디’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들은 차창 밖에서 계속해서 그를 부르지만 그는 일꾼을 구하는 게 아니라고 답하며 지나갑니다. 한 남자가 빚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며 통화하자 그제야 바디는 자신이 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 남자는 바디의 말을 믿지 않고 욕을 하며 떠나갑니다. 많은 돈을 제시하면서까지 주인공이 사람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는 계속되고 바디가 자살을 도와 줄 사람을 찾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는 약을 먹고 구덩이에 누워 잠들면 아침에 그곳으로 와서 죽음의 여부를 확인한 후에 꺼내 주거나 묻어줄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바디는 자신의 지프에서 내리지 않은 채 사람들을 차에 태워 자신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부탁을 듣게 되는 이는 모두 세 사람입니다. 쿠르드족 출신의 군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피해 이란으로 유학 온 이슬람 신학생, 그리고 터키 출신으로 보이는 박제사. 주인공은 봐 두었던 구덩이로 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영화 안에서 ‘바디’가 어떤 사람인지 제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그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좋은 집과 차를 가졌다는 정도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한 ‘성 제임스 병원’이라는 곡의 내용으로 미루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수줍음 많고 겁 많은 군인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바디는 이것이 단순한 일이며 총을 쏘는 군인이 하는 일에 비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득합니다. 자신의 부탁은 그저 죽은 시체 위로 흙을 몇 번 덮어주거나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꺼내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겁에 질린 군인은 도망칩니다. 이슬람 신학생은 바디에게 죽음 이외의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며 말리기 시작합니다. 자살은 꾸란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중죄라고 계속해서 충고하고 함께 식사나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지만 바디는 설교를 원했다면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부탁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한 바디는 시멘트를 채취하는 돌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생각에 잠깁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감고 석회석 더미를 내려놓는 포크레인 아래에서 마치 파묻히기를 기다리는 듯 앉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이제 마지막 사내, ‘바그헤디’가 그의 차에 오릅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박제사로 일하는 그는 바디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아들의 치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거래를 마치고 출근을 하기 위해 함께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도중 갈림길이 나오자 바그헤디는 자신이 아는 길로 갈 것을 권합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편하고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지만 그 길은 전혀 아름답지도 편하지도 않습니다. 그 길 위에서 바그헤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도 바디처럼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목을 매러 올라간 나무에서 우연히 맛보게 된 체리의 맛, 그 순간 떠오른 태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사소한 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자신이 안내한 이 길처럼 좋다고 생각한 것 역시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디는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부탁만을 반복해서 확인합니다. 이제 모든 것은 준비되었습니다. 바디의 결심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황량한 광야와 버려진 땅만을 응시하던 바디의 눈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꼬리를 길게 내뿜으며 날아가는 모습, 아름다운 석양,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바디에게 다시 생의 의지가 생겨난 것일까요? 아니면 결국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까요? 영화는 결말을 분명히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가 구덩이에 누워 보름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에서 바디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테헤란 외곽의 버려진 땅입니다. 아이들은 버려진 집과 차에서 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폐품을 모으거나 일자리를 구하려 마냥 기다립니다.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겁쟁이 군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신학생, 버려진 공장을 지키는 경비원은 마치 우화 속 주인공들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우화 속 주인공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이란과 그 주변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 선 개인들을 대표합니다. 감독은 오랜 전쟁으로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동포들에게 한 가닥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덩이 속 바디의 얼굴이 사라진 후 등장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촬영 현장을 담은 메이킹 필름입니다. 군인 역할을 맡은 무명의 조연들이 휴식시간이 되자 나무그늘로 모여들어 들꽃 다발을 만들며 즐거워합니다. 영화 「체리향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러한 것에 있지 않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박함 속에서도 희망은 존재합니다. 삶은 계속되며 내 주변에서 발견되는 소중한 가치가 희망의 징표가 됩니다. 길고도 유난히 추운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새로운 봄에는 달콤하고 싱그러운 체리 맛처럼 행복한 소식만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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