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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미로
천상을 향한 순례길 상징
미로(迷路, Labyrinth)는 복잡하게 얽혀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이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두뇌 발달을 위한 교재로 흔히 볼 수 있는 미로는 중세시대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신심을 고양하는 데 사용됐다.
문명 초기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미로는 신화와 전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발견된 미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프스 발 카모니카(Val Camonica)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3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크레타 섬의 미로에 살았다는 그리스 신화는 미로를 다룬 유명한 이야기다.
이교도 신화 등의 영향 때문인지 초기 교회에서는 미로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곤 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지하무덤 카타콤바는 그 모습이 미로를 닮았지만, 카타콤바의 미술 속에 미로의 형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로는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적인 상징을 담게 된다.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는 순례의 길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교회의 미로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막다른 길이 생기는 형태가 아니라,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길인 형태다.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는 미로인 것이다. 복잡한 미로의 여정은 시련과 고난, 죽음 등을 뜻하지만, 미로를 통과해 나가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
미로가 지닌 ‘순례’의 의미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대신하게 해주기도 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성당 바닥에 있는 미로를 무릎을 꿇은 채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실제로 있었던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것과 같다고 여겼다.
특히 12세기경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교회의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당의 미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에 있는 미로다. 이 미로는 12개의 동심원을 기준으로 추가 왕복하듯이 오가면서 마지막에 중앙에 이르는 길로 이뤄져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이야기] 할로윈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 의미, 악령 달래는 축제에서 유래
아이들이 유령이나 괴물, 만화나 영화주인공 등으로 분장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얻는 모습은 할로윈(Halloween)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할로윈 문화가 퍼져 길거리나 쇼핑몰 등에서 할로윈의 분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할로윈의 어원인 ‘All Hallows’Eve’는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라는 의미다. 전례력 상으로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의 바로 전날이 할로윈인 것이다. 할로윈은 어원으로 보나, 날짜로 보나 교회에서 비롯한 행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켈트족의 풍습에서 온 것이다.
할로윈의 기원이 된 켈트족의 ‘사윈’(Samhain)은 고대 드루이드교의 축제다. 켈트족은 켈트의 달력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유령이나 마귀가 저승에서 온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여러 귀신으로 변장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악령들을 달래기 위한 축제가 ‘사윈’이었다.
켈트족 국가들이 가톨릭교회를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켈트족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축제인 사윈을 무작정 금지하기보다 교회의 교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변형시켰다. 켈트력 10월 31일을 양력 10월 31일로 옮기고 모든 성인 대축일의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이렇게 죽은 이들이 돌아오는 날은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을 기억하는 날로 바뀌었다. 할로윈은 악령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 대신 가난한 이들에게 ‘소울 케이크’(Soul Cake)를 나눠주는 날이 됐다. 케이크를 받은 가난한 이들은 케이크를 전해준 이의 고인을 위해 기도했다. 가장무도회도 악령 피하기에서 성인이나 천사들 분장으로 바뀌었다. 이날에는 성인의 유해나 유물을 운반하는 행렬을 이루기도 했다.
교회의 할로윈 행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개신교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현대의 할로윈은 할로윈을 이어오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퍼진 축제다. 현대의 할로윈에서는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 축제로서 모습을 찾기 어렵다. 다만 어린이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풍습이나 할로윈을 맞아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 등에서 할로윈에 담긴 교회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카드
트럼프(Trump), 플레잉카드(Playing card) 등으로 불리는 서양의 카드에는 킹(King), 퀸(Queen), 잭(Jack) 등 인물이 등장한다. 언뜻 교회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카드의 등장인물에는 의외로 성경의 인물이 많다.
먼저 스페이드 킹은 다윗 왕이다. 기원전 1000~961년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은 구약성경에만 그 이름이 800번 넘게 등장할 정도로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 중요함은 카드 규칙에서도 변함이 없어 스페이드 킹은 인물이 등장하는 카드 중에서는 가장 높은 카드다.
유딧기의 유딧은 하트 퀸의 모델이 됐다. 용모가 아름답고 하느님을 크게 경외하던 유딧은 이스라엘 베툴리아가 항복할 위기에 이르자 아시리아군의 만찬에 참석해 총사령관이었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아시리아군이 퇴각하게 했다.
다이아몬드 퀸은 창세기의 라헬을 그린 것이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다.
또 클로버 잭의 모티브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에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에 맞서 항쟁한 유다 마카베오라는 설도 있다.
사실 카드의 기원과 교회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성경의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이유는 지금의 카드가 형성되던 중세시기가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1~13세기 경 카드가 유럽에 전래되면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며 형성된 것이다.
카드의 4가지 모양 중 하트가 성직자를 상징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카드는 원래 검 · 성배(聖杯) · 동전 · 곤봉으로 그려졌다. 각 상징은 각각 기사 · 성직자 · 상인 · 농민의 계급을 나타냈고, 그 계급이 그대로 카드 순위에 반영됐다. 이 모양이 후에 스페이드 · 하트 · 다이아몬드 · 클로버로 바뀌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거치던 카드는 15세기경 인쇄기술의 발달로 널리 보급되면서 형태가 고정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빵 (상)
프레첼 특유의 매듭모양 기도하는 모습에서 유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교회는 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빵 중에는 교회에서 유래하거나 교회의 이야기가 얽힌 빵도 많다.
특히 ‘프레첼(Pretzel)’은 교회와 인연이 깊다. 프레첼은 긴 반죽을 8자 모양으로 꼬아 구워낸 독일의 빵이다. 크고 작은 빵이나 과자 등 다양한 유형으로 제작되지만, 프레첼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유의 매듭모양은 대부분 유사하다.
프레첼의 매듭모양은 ‘기도하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기도하는 모습’이라 하면 흔히 손을 모으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프레첼의 모양은 팔짱을 낀 기도자세에서 착안한 것이다. 프레첼의 독일어인 브레첼(brezel)이란 말도 팔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브라키움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프레첼의 기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먼저 7세기경 수도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주던 빵에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한 수도자가 기도나 성경구절을 잘 외우는 어린이에게 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떠 만든 빵을 준 것이 첫 프레첼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사순시기에 먹는 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사순시기 금육을 지키기 위해 고기 대신 빵을 먹던 신자들이 빵 모양을 기도하는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느 설이든 프레첼이 기도하는 형상을 담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15세기경 독일에서는 프레첼이 신앙심과 행운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음식으로 여겨졌고, 어린이들이 프레첼을 목에 걸고 새해를 기념하는 풍습도 생겼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사순시기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아 성 금요일에 프레첼을 먹는 관습이 이어지기도 했다. 아직도 독일 여러 지방에서는 새해를 맞아 먹는 ‘노이야스 브레첼(Neujahrs brezel)’이나 사순시기에 먹는 ‘파스튼 브레첼(Fastenbrezeln)’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16일, 이승훈 기자]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빵 (하)
부드럽고 달콤한 마카롱 17C 佛 수도원 비법 담겨
마카롱, 마들렌, 에그타르트 등은 수도회에서 유래한 빵이다.
마카롱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간식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프랑스 북동부 낭시(Nancy)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의 공이 컸다.
마카롱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머랭(거품) 과자의 일종이다. 17세기경 가르멜수도원의 수녀들은 특유의 방법으로 마카롱을 만들고 있었다. 18세기 혁명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수녀원을 잃은 수녀들은 자신들을 숨겨준 이들을 위해 이 마카롱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낭시의 마카롱은 ‘수녀들의 마카롱’이라 불리고 지금도 낭시에는 수녀들의 비법을 이은 마카롱 전문점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마카롱 전문점으로 남아있다.
프랑스의 빵, 마들렌은 조개 모양으로 만든 작고 푹신한 빵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의 인물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련 있는 빵이다. 마들렌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프랑스 말이다.
프랑스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일생을 마친 곳이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성녀를 향한 사랑이 깊은 나라다. 그래서 성녀의 축일인 7월 22일을 성대하게 지냈는데, 이날 특히 많은 양의 마들렌을 만들어 나눴다고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영성을 따르는 프랑스의 한 수도회에서 마들렌을 처음 구웠다는 설도 있다.
포르투갈 벨렘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에그타르트의 원조로 유명하다. 수도원의 수녀들이 수도복을 빳빳하게 다리기 위해 계란 흰자로 풀을 먹였는데, 이때 남은 계란를 활용해 만든 것이 에그타르트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천문학
지동설 주장 코페르니쿠스 등 성직자들 천문학 분야서 활약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신부였다.
도심을 떠나 밤하늘을 바라보면 천체의 향연에 시간을 잊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들은 이동한다. 지구가 회전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일상적인 상식이지만 50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동설은 흔히 과학과 교회가 대립하는 예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가톨릭 사제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바르미아대교구 사제로 재무를 담당하는 교구 운영 위원이었다. 또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523년 교구장이 사망하자 임시 교구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천문학을 연구했다. 그 결과 1542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해 태양을 중심으로 다른 천체들이 공전과 자전을 하고, 심지어 지구를 비롯한 천체들이 둥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구는 평평한 판과 같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당시로선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권에서는 회전(Revolution)이 혁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판 당시 여러 추기경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연구결과를 지지했고, 교황 비서가 그의 이론을 교황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하며 교회와 대립하는 학자들이 많아지자 교황청은 1616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의 일부를 수정해야만 출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 분야에서 활약한 많은 성직자 중 한 명이었다. 부활대축일을 결정하는 역법(曆法)의 기초가 되는 천문학은 늘 교회의 관심사였다.
크리스토프 샤이너 신부(1575~1650)는 태양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첫 천문학자였고, 베네딕트 세스티니 신부(1816~1890)는 처음으로 별의 빛깔을 종합적으로 연구했다. 천문학 분야에서 예수회 신부들의 공헌이 많았기에 달 분화구 중 30여 개에 예수회 신부들의 이름이 붙었다.
18세기에는 로마대학교에 천문대가 설치됐다. 이 바티칸 천문대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저명한 천문학자와 함께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