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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가천대 총장, 새책 <길을 묻다> 출간
산부인과는커녕 전반적인 의료복지가 황무지이던 시절, 인천에 산부인과를 개원하며 많은 생명을 받아내고 살려낸 여의사. 가천박물관을 아우르는 가천문화재단을 설립, 인천을 문예부흥의 발원지로 만든 주인공. 이길여 가천대총장을 수식하는 말엔 늘 ‘인천’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사랑과 헌신’도 그를 수식하는 단어이다.
새책 <길을 묻다>(샘터사, 512쪽)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지난 한 세기 걸어온 길을 화롯불 옆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를 것처럼 서술한 책이다. 김충식 가천대 교수는 끊임없이 도전하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여성 의사이자 존경받는 교육자로 사랑과 헌신으로 살아온 이길여 총장의 삶을 2년에 걸쳐 대담한 뒤 책으로 펴냈다.
▲ 이길여 회고록 <길을 묻다> 표지
군산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이길여 총장은 열정과 집념으로 공부를 해 서울대 의대, 미국 유학 뒤 1958년 동인천 인천 용동 우물가 인근에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한다.
이길여 산부인과는 환자들에게 입원보증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1977년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보증금을 내야 했으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보증금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한 이 총장은 무의촌과 낙도의 무료진료에도 팔을 걷어붙였으며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와 철원, 양평 등 의료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의료봉사를 확장해 나갔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목에 걸어주었다.
이길여 산부인과는 의료과학기술과 의료시스템 선진화를 앞당기기도 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엔 ‘태아심박’ 측정 초음파기가 4대 있었는데 그 중 한 대가 여기에 있었다. 환자들은 태아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산모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엘리베이터는 지역의 명물이기도 했다. 이같은 이길여 총장의 모습은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에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이 곳엔 1950~60년대 실제로 운영됐던 산부인과 병원이 그대로 재현해 많은 발걸음을 끌고 있다.
이 총장은 1969년 병원을 9층으로 증축했으며 1978년엔 전 재산을 털어 우리나라 여의사로는 처음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한다. 이길여 총장은 이후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전국에서 손꼽히는 종합병원으로 키워 인천시민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안겨주고 있다.
▲ 이길여 가천대 총장
1998년 가천의과대학을 설립한 이 총장은 경원대학교를 인수하고 2012년 4개 대학을 통합하며 학생 수 기준 수도권 사립 3위 규모의 ‘가천대학교’를 출범시킨다. 사재를 포함해 1600억 원을 투입해 뇌과학연구소와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기초의과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며 2009년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의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하기도 한다.
그는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UN여성대회 정부대표, 서울대 의대 동창회장, 의사협회 100주년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천대 총장으로 백년지대계를 실천하고 있다. 가천대학교, 가천대 길병원,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등 의료 교육 문화 봉사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 ‘가천길재단’을 이끌고 있다.
▲ 동인천 용동에 있는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전시장 1층엔 1960~70년대 산부인과 풍경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놓고 있다.
저자 김충식 교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저자로 방송통신위원회 전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천대 교수 겸 특임부총장, 한일미래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맞바람이 바람개비를 돌리듯이,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삶의 동력을 얻는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그것이 언제나 나를 나답게 단련하고, 성취로 이끄는 동력이 됐거든요.’ (502쪽), 2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