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모임에서는 무용담이, 양념이다.(남자 친구들 모임에 가면 간혹 무용담이 나온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무용담은 군 복무 시절에 겪었던 훈련 이야기나 기합받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격을 잘해서 포상휴가를 받았다거나 숲속에서 멧돼지와 마주친 사건은 맨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로 둔갑 되기도 한다. 때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깡패와 일전을 벌였던 일에다 자신의 상상을 미화시켜 호기롭게 떠벌린다. 내세울 만한 무용담이 별로 없는 나는 잠자코 듣는 편인데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줄행랑 사건을 무용담으로 떠벌린 적이 몇 번 있다.
50년 전 이야기다. 중학교 겨울 방학을 맞아 서울에 사는 누님댁을 방문했다.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 방문은 몇 번 경험이 있었지만, 그날은 동트기 전 어둠이 깔려서 그런지 방향감각이 무뎠다. 서빙고동 가는 80번 버스를 타려면 역 앞에서 타야 하는데 지하도를 건너는 바람에 도로 반대편으로 나오게 되었다. 역 앞의 밝은 보습과는 달리 가로등도 꺼져 있고 건물을 밝히는 네온사인도 없어 어두컴컴했다. 인적도 드물었다.
얼마긴 걸어가는데 한 청년이 내 옆으로 바짝 붙어왔다. “아저씨, 80번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응, 나를 따라와.” 하고 짧게 말했다. 잠시 후에 다른 청년이 또 나타났다. 순간 불안감이 휩쓸고 지나갔다. ‘조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저씨 이젠 알겠어요,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한 후 육교를 향해 올라갔다. 순간 육교 위로 냅다 도망을 쳤다. 육교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아까 위협하던 그 청년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가로질러 쫓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극도의 공포심이 몰려왔다.
마침 시내버스 한 대가 내 앞에 급정거했다. 나는 높이뛰기 선수처럼 가드레일을 훌쩍 뛰어넘어 버스에 올라탔다. 여자 차장은 “오라이?”를 외쳤고 버스는 출발했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땀방울이 흥건했다. 어디로 가는 차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타고 갔다. 날이 밝자 건물이며, 가로수며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눈앞에 한강 인도교가 나타났다. 어디쯤인지 대충 지리적 감각이 되살아났다. 버스를 내려 택시를 탔고 누님댁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나의 줄행랑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새벽 사건은 나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되었다. 60~70년대는 서울역이나 청량리역 주변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청소년들을 유인해 범죄조직원으로 만든다는 말들이 나돌던 시절이다. 그날 조폭들에게 잡혀갔으면 역전파나 동대문파의 조직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직원의 감시 속에 도망도 치지 못하고 행동대원이 되어 설치다가 감옥에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명동파의 부두목쯤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아내와 아들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어머!”하고 손뼉을 친다. 어쨌든 나는 그날의 줄행랑에 성공하여 조폭 두목보다 더 좋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재미있는 줄행랑 이야기도 있다.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장이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잠겨있는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때 커다란 곰의 머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교장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고 곰도 놀라 숲속으로 달아났다. 마침 기숙사 문을 열고 나오던 여교사도 도망을 쳐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일이 있은, 후 학교에서는 교장에게도 위험수당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곰이 출현했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줄행랑을 쳐서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숲속으로 달아난 곰도 먹이를 찾으러 다시는 인가로 내려오지 말고 본래의 삶의 터전인 자연에 잘 적응하기를 바랐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줄랭랑도 있다. 알량한 권력의 힘을 믿고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정치인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해외로 도주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부실 펀드를 판매한 경제사범이나 강도, 살인을 저지를 흉악범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을 치기도 한다. 대부분 실패로 마무리되지만 국가나 개인에게 막대한 피해와 상처를 입히는 나쁜 줄행랑이다.
줄행랑이 물리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때가 있다. 심리적인 위험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의 마음속에 일어난 복수에 대한 갈등 ‘오셀로’의 마음에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날 때도 그 위험성을 간파하고 심리적 줄행랑을 쳤더라면 처참한 비극의 파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 비극이 ‘하마르티아’가 원인이라는 설이 있다.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성격적 결함이다. 서기. 질투. 교만, 탐욕, 방탕과 같은 악덕이 마음에 작용한다. 이럴 때 그것으로부터 줄행랑을 칠 수 있다면 우리의 심경이 좀 더 평안해질 것이다.
줄행랑은 승이를 위한 훌퓽한 작전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나약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줄행랑을 실행하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분별력과 용가가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물리적 악조건과 심리적 파도가 덮쳐올 때가 허다하다. 가끔 36계 줄행랑의 계략으로 슬리하는 한 편의 무용담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