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78/200204]임실지역의 맛집은 어디?
서울특별시에 사시는 친구와 후배들이 잊어먹을 만하면 전화를 한다. “한번 내려가기는 해야 할텐데” 하면서 “그나저나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묻는다. 혼자 기거起居하고 있으므로, 막상 오려고 생각하니 ‘먹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당최 그런 걱정을 허들마라. 여기도 인근에 맛집들 많아. 만난(맛있는) 것 사줄팅개, 와보기나혀” 그러고는 맛집들을 떠올려봤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모시거나 데리고 가는 맛집들이 달라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누구라도 무난하게 잘 먹으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할 만한 집도 여럿이 있는 것을.
먼저, 나와 취향이 같다고 전제하고, 맛집 몇 군데를 소개하겠다. 자동차로 가니 막힐 것도 없이 10분도 안돼 도착하는 곳이 오수이고, 주차 걱정은 저리 가라이다. 골목맛집으로 ‘장안집’을 들 수 있다. 단일메뉴, 소머리국밥집(8000원)이다. 취재는 안해 봤으니, 그집 역사는 알 수 없지만, 부드러운 소머리국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밑반찬 맛을 잊을 수 없다. 톡 쏘는 웅숭깊은 갓지(갓김치)라니? 우리 부부같이 와사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딱이다. 쏘는 맛도 그렇지만, 막 담은 겉절이도 참 좋다. 대여섯 번 갔는데, 실망한 사람이 없었다. 틀림없이 수육도 맛있겠지만, 굳이 비싼 수육을 먹지 않아도 된다. 전주시청 앞에서 ‘장안집’ 분점이 있어 시식을 해봤는데, 오수 본점에 피하면 ‘새발의 피’였다.
두 번째 소개할 집은 ‘한우랑돼지랑’이란 집인데, 갈비탕 11000원에 양이 푸짐하지만, 육회 한 접시가 서비스로 나오는 게 특이하다. 육회비빔밥(10000원)을 시켜도 육회는 서비스로 나온다. 돼지갈비 1인분에 13000원인데, 친절한 아주머니가 직접 구워 주시는 게 얼마나 편한가. 갈비는 어떻게 재어놓고 얼마간 숙성을 시키는게 관건關鍵일텐데, 준수한 편이고 가성비 짱이다. 이곳도 가끔 찾는 곳이다. 맛집은 일단 고객만족도를 최우선으로 쳐야 할 것인데, 갈 때마다 메뉴를 달리 하는데 실망한 적이 없다. 육고기를 좋아하면 갈비를 대접하고 싶다.
의견義犬의 고장이라고 알려진 오수獒樹라는 곳이 재밌다. ‘큰 개獒’자 ‘나무 수樹’자, 모두 아실 것이다. 주인이 술에 취해 개천둑에서 잠이 들었는데, 불이 났다. 충견이 제 몸에 물을 묻혀 주인을 구한 후 타죽었다. 가상히 여겨 갖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았는데, 큰 느티나무로 자랐다. 고려 중기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나오는 설화다. 그고장에 ‘신포집’이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보신탕집이 있어, 늘 빈축을 샀는데, 언젠가 할머니가 죽었다던다, 문을 닫았다. 그 딸들이라던가, 전주에도 신포집이 있고 지금도 영업중이라 한다. 아무튼, 보신탕(사철탕)만큼은 현지에서 맛보게 해드릴 수 없어 유감이다.
다음으로 임실로 가자. 그곳도 차로 15분 안짝이다. 전통시장을 제법 잘 꾸며놓아 보기에 심히 좋다. 3평도 안되게 보이는 보리밥집이 시장통에 있다. 비빌 야채를 푸짐하게 준 것도 좋고, 값도 7000원으로 싼 편이다. 서너 명이 갔는데, 보리밥만 비벼놓고 나오기가 좀 거시기하리라. 그럴 경우는 제육볶음 1인분(10000원)과 함께 막걸리를 시켜야 할 것이다. 추천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맛집의 1차조건은 된 것이다. 인근에 팥죽으로 유명한 집이 얼마 전 텔레비전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것을 우연히 봤는데, 가보지는 못했지만, 금세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도봉집’이라는 순대국집이 바로 옆의 ‘개미집’과 맛의 우열을 다툰다고 하는데, 도봉집에서 2인분 포장을 시키면, 두 번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양도 많고 맛도 있다. 식당 입장에서도 비좁아 손님들로 붐비는데, 포장주문을 훨 반기는 것같다.
또 하나, 소개할 곳은 임실역 근처 17번국도 휴게소의 맛집 ‘임실본가’이다. 임실하면 제법 청정지역인지 다슬기가 유명하다. 나는 ‘대수리국’이라고 간판에 써있는 집은 언제나 들르고 싶다. 대수리는 전북지역의 사투리일 것이다. 이 민물고동은 지역에 따라 이름도 가지가지다. 충청도에선 올갱이라 하고, 강원도에서는 고동이라고 한다한다. 이 대수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다. 아욱을 넣고 국을 끓여야 제맛인데, 요즘은 부추(정구지, 솔)를 넣고 끓이는 게 대세인 듯하다. 왕년에 우리 어무니는 우리가 대수리를 잡아오면 일단 삶아서 학독(겉절이를 담고나 콩을 가는 돌확)에 부어서 들들들 갈았다. 조그맣고 둥근 돌이 얼마나 예쁜지, 이번 집수리하면서도 그 돌만은 고이 모셔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대꼬챙이나 바늘로 툇마루에서 달을 보며 까먹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임실본가’의 다슬기탕(8000원), 추천한다. 물론 임실 청운면의 ‘운암식당’ 등의 다슬기탕만큼은 개운하지 않다지만, 이 정도면 아주 준수하다. 시식들 해봤겠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알고보면 맛집들이 숨어있다. 연예인 이영자씨는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 ‘킬러’이다. 그집의 곰탕이나 소머리국밥도 맛있다. 관광버스나 택시기사들이 많이 찾는 집으로 ‘기사식당’이 있지 않은가. 그집들을 가면 대부분 전혀 실망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으시리라. 임실 하면 빠트릴 수 없는 민물새우매운탕집이 있다. 옥정호를 아시리라. 그곳의 '옥정호식당'은 점심무렵만 되면 인산인해, 어지간한 중소기업과 맞먹을만큼 손님들로 성황이지만, 맛이 일품이기에 강추한다. 착한 가격으로 민물새우 매운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한 친구는 낯선 도시를 가면 자기 차는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아무 택시나 올라타서 이런 메뉴의 맛집으로 데려다달라고 한다 고했다. 한 끼니 맛을 위해선 소소한 택시비가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다. 맛의 고향 전주도 초행길이면 식당, 그것도 맛집 찾기가 참 애매한 일이다. 그럴 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어느 비빔밥집이, 콩나물국밥집이, 어느 막걸리집이 유명하다는데, 그곳으로 갑시다”고 하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깔끔한 한정식집을 가시고 싶다면 나는 ‘호호박’을 소개하겠다. 지난주에도 갔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집밥’이다. 정갈한 반찬 몇 가지에 흐뭇하고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 나올 것을 확신하다. 별관의 별식은 비싼 편이지만, 값만큼 효용성이 높을 것은 틀림없다. 전주는 우리집에서 40분이면 족하다. 맛을 위해서라면 1시간정도 투자하는 것이 무엇이 아까우랴. 나는 대처인 서울에서 살 때도 1시간이상 기다려 먹어본 맛집도 수두룩했다. 누구는 ‘네가 무슨 식도락가食道樂家라고 그렇게 열성을 피우나’라고 말하지만, 가치가 있는 걸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식도락가는 아니지만(일단 돈이 풍족해야 하므로), 세미semi 식도락가는 될 것이다.
남원은 추어탕으로 유명하지만, 아무 집이나, 특히 관광안내서 등에서 소개하는 맛집들은 실망하기 일쑤다. 병원장 친구가 강추한 ‘산수추어탕’은 언제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미꾸라지와 민물새우를 튀긴 튀김(15000원)도 드셔보시라. 추어탕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되어야 한다. 멀리 남양주 별내에 사는 친구는 그 맛을 못잊어 벌써 네 번째 다녀갔다. 그 성의가 가상해 한번은 한그릇을 포장해달라 하며 ‘형수’(우리는 친구의 부인을 모두 형수라 부르는 미덕의 소유자들이다)께 갖다그리라 하여 칭찬을 허벌나게 받기도 했다.
시간이 된다면, 누구라도 한번 서울 정동극장 골목의 ‘남도집’이라는 추어탕을 가보시라. 일단 실가리를 많이 넣고 오래 끓이면 걸쭉해지게 마련이다. 그집은 거짓말이 아니라 11시 반부터 1시반까지는 줄을 서야 하고, 값도 아마 서울에서 최고로 비싸 15000원은 될 것이다. 십수 년전에 지하철신문이 히트를 친 때가 있었다. 아실 것이다. 메트로Metro, 포커스Focus, AM7 등이 난립했는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야말로 썰물처럼 사라졌다. 자본주의의 유행이나 IT 트렌드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무서운 세상이다. 아무튼, 그 지하철신문에 소생이 ‘음식칼럼니스트’가 되어 1주일에 1회씩 ‘직장인 점심 추천맛집’을 연재한 적이 있다. 소개식당에서 공짜 점심을 여러번 얻어먹기도 햇으니. 손님들이 손바닥기사를 오려서 그 식당을 찾아오고, 그 식당은 해당기사(소생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를 크게 확대해 벽에 붙여놓은 것을 같이 간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말없이 가리켰던 기억도 뚜렷하다. 흐흐.
참고로 2006년 4월 어느날(휴우- 15년전이다. 포커스신문에 연재할 때이다) 쓴 맛집칼럼 한 편을 부기한다. 종로 1가 지역이 개발되면서 피맛골도 사라지고, 그 유명한 ‘청진옥’ 해장국집이 있었다. 그 집에 못지않는 게 고려대 근처의 ‘대성집’이어서 소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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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맛집 3번째]'모주꾼들의 고향' 속 풀고 한 잔 더!
사람속이 다 다르듯이 해장국도 지역별로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맛의 고향’ 전주의 콩나물해장국도 일품이겠으나, 서울토박이들은 청진동해장국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모주꾼들은 속을 풀어야 다음날 행동거지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고 대뜸 하는 말이 “어디서 속풀 데 없냐”다. 어느 때는 다동의 ‘터줏골 북어국’집이나 ‘날배추국’집을 추천하고, 광화문근처의 ‘지리복어탕’과 지금은 없어졌지만 ‘부산뽈테기’과 ‘충청도 아욱올갱이’국을 내세우지만, 요즈음엔 무조건 안암동오거리의 ‘어머니 대성집’ 이다.
첫째, 새각시 때부터 39년동안(시어머니가 5년하다 물려주었으니 실제론 34년) 한 자리를 지키며 육회를 주무르고 산 전인성(64) 할머니의 넉넉한 웃음과 인심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둘째, 안주가 심플하여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장수육, 육회 모두 10년 전에도 2만원이었다. 선지에 실가리가 적당히 들어간 해장국 한 그릇이 5000원이다. 양지머리가 조금 더 들어간 ‘특’은 5500원. 무엇보다 된장국을 먹고 난 듯이 담백하고 속이 풀리는 게 신기하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문을 여는 데 ‘10년 단골‘은 발에 걸릴 지경이다. 식당 운영시간도 재미있다. 술 먹고 취하라고 장사를 하는 게 아니고 술 취한 사람들 빨리 깨라고 하는 장사가 아닌가. 새벽녘에도 술 깨려고 비틀비틀 들어오는 술꾼들의 고향이다.
배짱을 부릴만도 한데 사장님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30여평 규모에 방이 2개 있는데, 점심에 예약하지 않으면 기다리기 일쑤다. 인근 대학교 교수와 직원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 사람의 눈물만이라도 닦아줘도 삶의 보람이 있을 터인데, 만사람의 속풀이를 도맡은 ’음식 공덕‘은 어디에다 비할까.
또 하나 있다. ’육회 전문’이라는 간판이 부끄럽지 않게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 홍두깨살을 방금 잘라낸 생고기처럼 비벼내는 솜씨는 알려주지도 않는다. 어떤 손님은 거의 날마다 점심에 육회 한 접시만 뚝딱 먹고간다. 불그스름한 빛깔의 육회는 입맛을 당기고도 남는다.
계란 노란자위도 풀지 않고 고추장에 비비지도 않는데 부드럽기가 장난이 아니므로 모주 한 잔 걸치는 게 어떠한가. 조금 취한다한들 해장국으로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다. 31살 아들이 도와주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비좁은 골목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02-92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