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의 悲劇性 ㅡ이어영 ㅡ
우리는 윷놀이를 좋아한다. 멀리 三國時代 때부터 있던 固有한 풍습이다.* 그러나 윷놀이에는 무엇인가 韓國的 인 비극이 서려 있는 것 같다. 던져진 윷가락은 엎어지기도 하고 젖혀지기도 해서 그 때 그 때의 運命圖를 만들어 낸다. 한번 떨어진 윷가락들은 다시는 변경될 수도 없고 고쳐 질 수도 없다.
<도>면 <도>고 <개>면 <개>이다. 그래서 때로는 윷놀이가 운명을 占치는 <윷점>으로 변하기도 한 것이다. 西歐의 주사위도 그 面에 있어서는 물론 다를 것이 없다. 그 것도 역시 우연을 향해 내던져진 운명의 數字인 것이다. 그래서 dice(주사위)란 말의 근원에는 <운명에 의해서 주어진 것>(datum)이라는 뜻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다 같은 우연속에 내맡긴 행위라 할지라도 <윷>은 <주사위> 에 비해 한층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면체의 주사위는 개개의 면이 각각 독립적인 운명을 나타내고 있지만 윷은 하나 하나의 윷가락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그 연관성 아래 비로소 결정적인 한 의미를 형성하게 마련인 것이다. 윷가락 하나마다 엎어지고 젖혀지는 운명이 있고 또 그러한 운명들이 합쳐진 전체의 운명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주사위>는 어디까지나 <홀로 있는 運命>이지만 윷가락은 <서로 있는 運命>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관련된 運命性 ! 이것이야말로 韓國人의 특히 그 한국적 사회풍토의 象徵이라 할 수 있다.
西歐를 꿰뚫고 흐르는 인간의 힘은 한 개인의 英雄主義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東洋에서도 특히 韓國은 개인의 운명보다는 派黨이라는 서로의 연관된 運命의 형세 밑에서 권력과 행운의 得失劇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개의 윷가락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앉아 있으면 李朝의 그 四色黨爭이 눈앞에 어린다. 나의 운수만으로도 안된다. 東人이라든지 西人이라든지 南人이라든지 北人이라든지 그 派黨의 運이 펴지면 得勢를 하고 한번 惡運이 몰아치면 다같이 쓰라린 조락의 길을 밟아야 한다.
白衣從軍을 한 李舜臣에게서, 戰勝한 將軍이 돌아갈 고향을 찾지 못했던 그 李舜臣에게서 우리가 느끼는 것도 개인의 운명이라기보다는 시들어 가는 南人의 운명이었다. 아니 굴러 떨어지는 그 운명의 윷가락 그것보다도 말판에서 뛰고 있는 말들을 볼 때 우리는 한층 더 절실한 이 民族의 비극을 暗示받게 되는 것이다. 윷의 말판이야말로 저 피비린내 나는 士禍黨爭의 壓縮圖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사위 놀음>과는 달리 그것은 앞에 가는 말을 잡아 먹는 놀음이다. 적의 말을 잡아 먹는 맛에 윷을 노는 지도 모른다. 피나는 努力으로 出口직전에까지 간 말의 뒷덜미를 쳐, 잡아 먹을 때 한편에서는 애석하고 억울한 탄성이 흘러 나온다. 앞서가는 말이 언제나 불리한 것이 윷놀이 말판의 현실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따라서 잡은 놈이 다음에는 거꾸로 또 먹혀야 한다. 달면 잡혀 먹고 잡히면 또 단다. 먹고 먹히는 이 줄기찬 윷놀이의 生理에는 지긋지긋한 윷판(政爭)에서 빨리 도망쳐 나가는 것이 유일한 승리자로 되어 있다. 그것뿐이랴? 相對 편과의 싸움은 그렇게 야박하고 치사스러워도 자기편끼리는 업어가고 업혀가는 따스한 規則이 있다.넉동무니를 함께 업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 윷놀이의가장 큰 幸運이요 기쁨이다.
이 便乘, 이 作黨, 거기 윷판에 柳子光이가, 그리고 金宗直一派가, 피를 吐하며 쓰러져가는 趙光祖 그리고 鄭松江이가 주어진 운명앞에서 쫓고 쫓긴다. 이 윷놀이판의 「게임」과 같은 政爭의 현실이 바로 또 하나 슬프디 슬픈 우리의 울음을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庶民은 배고파서 울고 유복한 인간들은 , 지식인들은 三族을 멸하는 黨爭의 검은 선풍 속에서 울었다. 이때의 목숨은 文字 그대로 「목」에 붙은 「숨」에 불과한 것이었다. 「석나고 배 터진다」는 윷놀이의 속담이 그대로 현실의 한 象徵이었던 그 사회에서는 영원히 행복한 覇者란 것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배고픈 庶民들은 草根木皮를 구하려고 山으로 갔고 배부른 선비들은 政爭을 피하여 또한 山으로 갔다. 그리하여 이 땅은 乞人과 「閑雲野鶴」을 찾는 隱遁居士로 寂寞江山을 이루었던 게다.
우리가 좋다는 말 대신에 『괜찮다』는 말을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라는 긴 말이 줄어서 된 것이다. 현실에 관계하기만 하면, 나라일에 관계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었다. 죄없는 妻子息까지도 억울한 刑罰을 받아야 했다. 或은 쓸쓸한 귀양살이에서 눈물을 「거문고」로나 달래야 했다. 즉 관계하지아니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자연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은 반드시 風月을 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배고픈 설움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 政爭이라는 눈물의 윷놀이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주어진 숙명(윷가락)에는 그저 얌전하게 순응만 하면서도 말판 위에서는 앞서가는 놈을 잡아치우는 悲劇의 그 윷놀이가.... .
註 *윷에 대한 기원과 그 풍속에 대해서 崔南善氏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윷은 한국에만 있는 노름으로서 新羅시절로부터 성행한 증거가 日本의 옛책에 적혀 있읍니다. 옛날일은 알 수 없지마는 近世에는 윷이 農家의 노름으로서 歲初에 편을 갈라서 한편은 山農이 되고 한편은 水鄕이 되어가지고 그 이기고 짐으로서 그 해 農事가 高地에 잘 될 지 低地에 잘 될지를 판명하는 占法의 옛뜻을 잃어 버리고 다만 부인네들의 「윷팻점」이란 것이 약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생각해보면 더욱더 윷놀이 속에 잠재되어 있는 宿命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흙속에 저 바람속에
ㅡ 이것이 韓國이다
李御寧 著
初版發行 ; 1963. 12. 25
十五板發行 ; 1965. 4. 10
첫댓글 흙속에 저 바람속에
ㅡ 이것이 韓國이다
李御寧 著
6ㅇ년대말경에 읽었던 명문을 다시 대하니 새럽습니다.
다리 역할을 해 준 혜당님, 고맙습니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라는 긴 말이 줄어서 된 것이다. 현실에 관계하기만 하면, 나라일에 관계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었다. 죄없는 妻子息까지도 억울한 刑罰을 받아야 했다. 或은 쓸쓸한 귀양살이에서 눈물을 「거문고」로나 달래야 했다. 즉 관계하지아니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자연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은 반드시 風月을 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배고픈 설움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 政爭이라는 눈물의 윷놀이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주어진 숙명(윷가락)에는 그저 얌전하게 순응만 하면서도 말판 위에서는 앞서가는 놈을 잡아치우는 悲劇의 그 윷놀이가-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