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공터의 사랑」 감상 / 박준
공터의 사랑
허수경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1992) .............................................................................................................................. 태어난 지 200일 무렵부터 아이에게는 영속성이라는 감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영속성은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일입니다. 덕분에 보호자가 문 뒤로 숨었을 때 불안해하며 울었던 이전과는 달리 문 뒤에서 장난을 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을 수 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일순간 떼면서 소리를 내는 아웅 놀이를 즐기는 것도 이때이고요. 여름 가고 가을 밀려드는 이 시기, 영속성이라는 감각을 다시 생각합니다.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아주 없던 일이 된 것도 아닐 겁니다. 박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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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출생 1964년, 경남 진주시
사망 2018년 10월 3일 (향년 54세)
학력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고대근동고고학 박사
데뷔 1987년 실천문학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등단
수상 2018. 제15회 이육사 시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