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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uel Ramey ~ Bizet Carmen Toreador (El Torero Escamillo)
투우의 고장 론다에 가다
2024.7.9 론다(Rond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에 있는 말라가주의 도시이다. 투우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론다에는 1784년 건설된 신고전주의양식의 투우장인 론다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이 있고,
론다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투우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론다에서는 알라메다 델 타호(Alameda del Tajo), 바뇨스 아라베{Baños Arabe, 아랍목욕탕(Arabic baths)을 가리킨다}, 헤밍웨이산책길, 1759년에 착공하여 1793년에 준공된 누에보다리(Puente Nuevo) 등 많은 명소를 볼 수 있다. 특히 헤밍웨이가
한때 론다에 머물면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843)의
배경이 되기도 한 도시가 바로 론다이다.
알라메다 델 타호는 론다에 있는 식물원, 공원이자 산책길이다. 알라메다 델 타호는 19세기 초에 만들어져
식물원처럼 키 큰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공원 안에 깨끗한 대리석이 깔린 넓은 산책길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알라메다 델 타호 입구에 페드로 로메로의 동상(Estatua de Pedro Romero)이 있다. 페드로 로메로는 론다에서 처음 투우를 창시한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손자로 투우사로 활동하는 동안 5,600마리의 황소를 단 한번의 부상도
없이 쓰러뜨린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라고 한다. 페드로 로메로는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초상화에도 등장하고, 헤밍웨이가 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고 하는 소설에서도 론다에서 경험한 투우를
소설속에 묘사하면서 론다에서 만난 페드로 로메로가 실명으로 소설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마타도르 페드로 로메로의 초상(고야, 1795-1798)
알라메다 델 타호 안에 고예스카의 동상(Estatua de la Goyesca)도 있다. 흔히 다마 고예스카(Dama Goyesca)라고 부르고, 전통적인 고예스코(Goyesco)의상을 입은 여성으로 론다를 대표하는 여인을 상징한다. 론다에서는
매년 9월 페드로 로메로축제(Feria de Pedro Romero)와 함께 1954년 안토니오 오르도녜스(Antonio Ordóñez)가 설립한 코리다 고예스카(Corrida Goyesca)투우대회가 열리고, 참가하는 사람은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에서 영감을 받은 고예스코의상을 입는 전통이 있다.
미라도르 데 론다(론다전망대)에서 멀리 론다산맥과 피레네산맥, 타호협곡(Tajo Cayon)의 가장 인상적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현기증이 있거나 높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너무 절벽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하고,
굳이 절벽 위까지 나가지 않고도 멀리 보이는 타호협곡의 아찔한 광경을 조망할 수 있다.
론다투우장은 1485년 무어인으로부터 론다를 되찾아 7세기에 걸친 이슬람의 지배를 물리친 후 1779년에 시작되어 1785년에 완성된 투우장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돌과 벽돌의 조합이 아닌 완전히 돌로 만들어진 최초의 투우장이다. 론다투우장의 공식적인 명칭은 토로스 데 라 레알 마에스트란자 데카발레리아
데 론다(Toros de la Real Maestranza de Caballería de Ronda)로 꽤 길고, 론다에 있는 레알 마에스트란자 데 카발레리아가 운영하는 투우장이라는 의미이다.
론다투우장 입구를 보면 황소의 동상(statue of a bull)이 있다. 가까이 가기에도 무서워 보이는 성난 황소가
투우사에게 눈을 부릅뜨고 돌진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1779년에 시작되어 1785년에 완공된 론다투우장은 그 지름이 66미터(217피트)나 될 정도로 거대하다.
론다투우장에는 2층으로 나누어져 좌석이 있고, 각 층에는 5개의 돌출된 줄과 68개의 아치를 구성하는 136개의
기둥이 있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행하여지는 근대투우의 시조는 론다 출신인 프란시스코 로메로라고 하고, 18세기 론다투우장이 만들어진 후 로메로가문은 프란시스코 로메로-후안 로메로-페드로 로메로까지 3세대에 걸쳐 투우사를 배출하여
유명하다. 로메로가문의 투우사 중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1754~1839)는 5,600마리 이상의
황소를 무찌른 투우사로 투우의 역사에 빛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론다에는 로메로가문 이외에 유명한 투우사를 배출한 가문으로 오르도녜스가문도 있다. 오르도녜스가문에서는
카예타노 오르도녜스(Cayetano Ordóñez)와 그 아들 안토니오 오르도녜스(Antonio Ordóñez)가 투우사로
유명하고, 두 인물의 동상이 론다투우장 입구에 서 있다. 특히 헤밍웨이가 쓴 소설로 두 명의 저명한 투우사
루이스 미겔 도밍긴과 그 처남 안토니오 오르도녜스의 경쟁을 그린 ‘위험한 여름’(The Dangerous Summer)이 있고, 실제로 헤밍웨이는 투우사 안토니오 오르도녜스와 좋은 친구가 되어 론다 근처에 있는 코르티조
(컨트리하우스)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한다. 현재도 안토니오 오르도녜스의 손자인 프란시스코
오르도녜스(Francisco Ordóñez)와 카예타노 리베라 오르도녜스(Cayetano Rivera Ordóñez)는 여전히
스페인에서 유명한 투우사로 활동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투우(bullfighting)를을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황소의 전진’(coursing of bulls)이라 부르고, 혹은 라 피에스타(la fiesta), 즉 축제(the festival)라고도 한다. 스페인식 투우는 투우사가 소에게 카포테(capote, 빨간 망또)를 흔들고, 흥분하여 날뛰는 소를 창으로 찌르고
작살을 꽂은 뒤 심장을 관통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투우사에는 주역을 맡아 카포테를 흔들고 소의 심장에
검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마타도르(matador, 죽이는 사람을 가리킨다)가 있고, 작살을 꽂는 반데리예로(banderillero)가 두 사람, 말을 타고 창으로 소를 찌르는 피카도르(picador)가 두 사람, 페네오(peneo)라는
조수 여러 사람이 한 조를 이루며 전체로 묶어서 칭할 때에는 토레아도르(toreador)라고 한다.
투우에는 용맹한 들소에서 골라 쓰고, 투우장에 내보내기 전 24시간을 완전히 빛이 차단된 암흑의 방에 가두어
둔다. 투우장에 나온 소는 어두운 장소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밝은 햇빛 아래로 나온 탓도 있고, 흔들거리는
카포테의 조롱을 받으면서 흥분하여 더욱 날뛰게 된다. 소가 투우장에 등장하면 마타도르가 카포테를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고 퇴장하면 말을 탄 피카도르가 창으로 소를 찌른다. 바로 반데리예로가 등장하여 소의 돌진을 피하면서 차례로 소의 목과 등에 6개의 작살을 꽂는다. 소가 상처를 입으면서 점차 쇠약하게 되지만 더욱 흥분하고, 이후
약 20분이 지나 흥분이 최고도에 이를 무렵 마타도르가 다시 등장하여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소를 피하다가
정면에서 돌진하여 오는 소를 목에서 심장을 향하여 검을 찔러 즉사시키면서 투우는 끝난다.
처음 스페인에서 행하여진 투우는 말을 타고 소와 싸우는 기마형태의 투우이나{(레호네오, Rejoneo)방식이라고
하고, 레호네아도르라 불리는 투우사가 말 위에 올라탄 상태에서 짧고 넓은 칼날을 막대 끝에 잡아맨 레혼이라는
창을 사용하여 황소를 죽이는 경기이다}, 17세기 말 론다 출신의 투우사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투우를 하다가 말에 떨어져 윗옷을 벗어 소와 겨루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땅에 서서 소와 싸운 사건으로 인하여 17세기 말로부터 말을 타지 않고 땅에 서서 소와 싸우면서 빨간 망토인 물레타(Muleta)를 사용하는 근대투우가
시작되고, 프란시스코 로메로는 근대투우의 시조로 추앙을 받게 된다.
투우(프란시스코 고야, 1824)
투우는 소를 일부러 조롱하여 흥분시킨 후에 등에 차례로 창과 작살을 꽂고 급기야는 칼로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죽는 모습을 구경하는 잔혹한 경기라서 최근에 들어서는 투우경기가 잔혹하거나 잔인할 뿐만 아니라
동물학대 등의 관점에서 동물보호단체의 반발까지 겹쳐 논란이 크고, 투우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도 예전과 같지
않다. 현재 스페인의 17개 지방(Comunidad Autonoma) 중 카나리아제도(1991)에서만 법적으로 투우가
금지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투우가 금지되고 있지는 않다. 2012년 카탈루냐지방정부가 제정한 투우를 금지하는
법률에 대하여 2016년 스페인헌법재판소에서 카탈루냐지방정부에게는 투우를 금지시킬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해당 법률이 폐지되면서 카탈루냐에서도 법적으로 투우경기가 가능하기는 하나, 이후 카탈루냐에서는 투우경기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론다투우장에서도 더 이상 상시로 투우경기가 열리고 있지는 않고, 다만 관람하려는 사람에게 입장요금(9유로)을
받고 개방되고 있다. 론다투우장 안으로 들어가면 론다투우장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나 웅장한 광경을 직접 느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우박물관(Museo Taurino)에서 투우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투우복을 비롯하여 투우사의 무기, 투우와 관련된 기록적인 사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론다 신시가지(El Mercadillo)와 구시가지(La Ciudad) 사이에는 타호협곡이 깊게 파여 있고, 그 바닥에
과달레빈강(Rio Guadalevín)이 흐른다. 타호협곡 위에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론다투우장, 소코로광장 등이 있는 엘 메르카딜로(El Mercadillo)로부터 에스파냐광장에 가면 바로 누에보다리가 있고, 중간에 푸엔테 로마노{Puente Romano, 처음 로마시대에 기초를 놓은 다리이므로 로마다리라고 하나,
아랍시대에 재건되어 아랍다리(Puente Arabe)라고도 한다}, 그 위에 푸엔타 비에호{Puente Viejo,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이지만 로마다리보다 늦게 1616년 건설되고 푸엔타 산 미구엘(Puente San Miguel, St. Michael's Bridge)으로도 불린다}가 있다.
푸엔테 누에보(Puente Nuevo)는 타호협곡의 바닥에서 120m(390피트)나 되는 높이에 우뚝 솟은 다리로
타호협곡을 가로지르는 세 다리 중 가장 높고, 론다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이다. 푸엔타 누에보는 누에보다리, 즉
새로운다리(New Bridge)라는 의미이나, 결코 근래에 지은 최신식의 다리는 아니고, 이미 1751년에 시작되어 1793에 완공된 다리로 충분히 오래된 다리이나, 타호협곡에 걸친 세 다리 중 가장 늦게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누에보다리로 불리고 있다.
누에보다리를 제대로 감상하는 뷰포인트는 여러 장소에 있다. 파라도르전망대, 누에보다리전망대, 라호야 델
타호전망대 등에서 누에보다리는 물론, 타호협곡의 웅장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타호협곡 아래로 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누에보다리와 타호협곡이 어울어진 절경을 다른 각도에서 구경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출신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조언을 따라 프랑스 파리를 떠나 1923년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내전 당시 종군기자로 스페인에 온 헤밍웨이는 마드리드, 팜플로나와 나중에
안달루시아의 도시인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를 거쳐 론다를 발견하고는 투우에 푹 빠지게 되고, 투우의 도시
론다에 머물게 된다.
헤밍웨이는 론다에 머무는 동안 투우와 투우사를 등장시키는 여러 소설을 쓴다. 1932년에 쓴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이라는 소설에서 투우를 통하여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 본질을 밝히게 되고, 또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는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로 실제 론다 출신의 전설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를 등장시켜 론다에서 경험한 투우를 소설 속에 묘사하고 론다에서 만난 페드로 로메로를 소설의
모델로 등장시키고 있다. 역시 헤밍웨이가 1959년부터 1960년 사이에 집필하여 그 사후인 1985년 출간된
논픽션의 형식으로 된 소설 『위험한 여름』(The Dangerous Summer)도 두 명의 저명한 투우사 루이스 미겔
도밍긴과 그 처남 안토니오 오르도녜스의 라이벌관계를 그리고 있고, 실제로 헤밍웨이는 안토니오 오르도녜스와
좋은 친구가 되어 론다 근처에 있는 코르티조(컨트리하우스)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스페인내전 중 실제 론다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1939년 쿠바 하바나, 플로리다 키 웨스트, 아이다호선 밸리 등 세 장소에서 집필하지만, 론다의 에스파야광장을
소개하는 부분이나 특히 스페인내전 초기에 민족주의에 동조한 사람에 대한 처형을 묘사하면서 공화당원이
안달루시아마을의 절벽에서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을 던져 살해하는 장면을 론다의 타호절벽에서 일어난
살인에서 영감을 얻어 묘사하고 있는 등 론다를 주무대로 하고 있다.
파세오 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가 론다에 남긴 흔적을 따라 누에보다리에서
론다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다. 헤밍웨이산책길은 타호강과 과달레빈강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므로,
헤밍웨이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론다에 남긴 헤밍웨이의 족적뿐만 아니라, 론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도 있다.
론다투우장 옆을 보면 훼밍웨이의 흉상이 걸린 기념비가 서 있다. 론다에서 오랜 기간 지내면서 론다의 투우와
투우사, 론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쓴 훼밍웨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청산 노승렬 카페 글을 카톡으로 대사9회 재구 동기 蓮湖 구자훈 소설가에게보내주었더니, 2025년 1월에 과거 고료 1억원 작품을 수상한 소설가 딸의 내외가 구자훈 소설가 내외를 해외여행에 초청하여 한달동안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지를 주유하면서 헤밍웨이가 머물고 작품을 썼던 론다를 하루를 내어 탐방하면서 위의 사진중 바로 위의 사진을 찍어 2월 7일에 카톡으로 나에게 보내준 것이다.
나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자기의 여행을 상세히 알고있으니 놀랐을 거다.
극도의 근시로 안경을 두 개 끼었던 아일랜드 더블린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시도한 '의식의 흐름' 수법을
언급하면서 연금 이체를 위해 OPT 카드도 가져갔다는 말을 했다. 관광중에 연금 관리, 작품 검토 등을 한다는
얘기인데, 불가에서는 망상이라고 한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해외에 장기 체재하려면 집에 오는 신문도 처리를 해야 하고, 귀중품도 별도로 보관해 놓아야 하지.
누에보다리 근처에 파라도르호텔(Parador de Ronda)이 있다. 파라도르호텔은 헤밍웨이가 론다에 머물 때에 거주하면서 여러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한 장소라고 한다.
소코로광장(Plaza del Socorro)은 론다에서 인기가 있는 장소로 1918년 블라스 인판테(Blas Infante)가
시르쿨로 데 아르티스타스(Circulo de Artistas, 예술가협회)라고 부르는 건물의 1층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안달루시아의 국기와 문장을 펼친 장소이다. 블라스 인판테는 스페인내전 당시
소코로광장에서 프랑스군에 의하여 처형된 정치가이자 역사가로 안달루시아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소코로광장을 잘 살펴보면 블라스 인판테의 동상이 있다).
소코로광장에는 옆에 두 마리의 사자, 그 뒤에 두 개의 기둥이 있고, 옷을 거의 벗고 펜티만 걸친 남자의 동상이 있다(뒤에 있는 건물은 론다플라멩코극장이다). 동상의 주인은 헤라클레스이고, 그 뒤에 있는 기둥은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하며 유럽대륙과 아프리카를 나누는 지브롤터해협을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스페인의 국장(Escudo de España)에도 헤라클레스의 기둥(Columnas de Hércules)이 들어가고,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5세의 좌우명인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 즉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 바다로 나가서는 안 된다(Non Plus Ultra)는 금기를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신세계를 발견하고 지배하려는 야망을 대변한다}.
헤라클레스가 에우리스테우스로부터 부여받은 12가지 과제 중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광경을 상징한다.
안달루시아의 휘장과 같은 모양이고, 위에는 Dominator Hercules Fundator(지배자 헤르쿠레스 창시자),
아래에는 Andalucía por sí, para España y la Humanidad, 즉 ‘안달루시아 그 자체로, 스페인과 인류를
위하여’라고 하는 모토가 적혀 있다.
소코로광장에는 파로키아 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소코로(Parroquia de Nuestra Señora del Socorro)
성당이 있다. 혹은 이글레시아 델 소코로(Iglesia del Socorro), 즉 구원성당(Church of Help)이라고도 한다.
지금 보는 파로키아 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소코로성당은 본래 1557년 11월 말라가주교인 돈 프란시스코 데
파체 코 데 코르도바에 의하여 봉헌된 성당이나, 1936년 본래의 성당이 화재로 완전히 파괴되어 1956년에야 새로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론다 아랍목욕탕은 13세기와 14세기 이슬람시대에 지어져 스페인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아랍목욕탕으로
냉탕(차가운 욕실), 온탕(따뜻한 욕실), 열탕(뜨거운 욕실)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아랍목욕탕 천장에 있는
채광창을 통하여 빛이 실내로 들어오게 되어 있고, 수영장처럼 큰 목욕탕을 이용하는 로마인과 달리 무슬림은
때때로 작은 목욕탕을 이용하기도 하나 보통 증기를 이용하므로 기본적으로 증기목욕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출처: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