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검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고 있다. 한때 사돈 나라라며 서로 치켜세우던 상황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이 비록 베트남 전쟁때 미군편에 서서 참전했을 때도 당시 베트콩에서는 한국인들의 처한 상황이 그러니 한국군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베트남인들이 한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은 베트남을 떠나라는 구호를 꺼내들기 시작했고 외국기업들에는 철수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어가는 상황이다. 본인이 베트남에서 머물던 지난 2018년에는 베트남에서 한국인들의 인기가 참 좋았다. 삼성 등 한국의 유명기업들이 베트남에 둥지를 틀고 베트남인들을 대거 고용해 사업장 움직임소리가 경쾌하게 났을때이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팀을 맡아 승승장구하던 시기와 맞물려 베트남인들은 한국인들을 참으로 환대했다. 그 당시 동남아시아의 월드컵 대회라고 하는 스즈끼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숙소 인근 야외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주변에 함께 있던 베트남인들과 텔레비젼으로 중계되는 스즈키 축구대회를 보면서 함께 환호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그 당시 옆좌석의 베트남인은 서툰 한국말로 한국이야말로 베트남의 영원한 친구국가이라며 대단한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감독으로 허락해준 한국인들이 너무 감사하다고 진심어린 표정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의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이 축구를 관람했을 때와 일상사에서는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당시 친구와 함께 호치민시티에서 사무실을 열어 작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베트남의 부동산거래는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한국처럼 공인중개사 시스템이 정착되어있지 않다. 그냥 사무실이 나오면 현수막으로 가게가 나왔으니 연락하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다였다. 그러면 그 곳으로 전화해 임대료를 상의하고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는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임대할 상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임대료가 두배 세배로 뛰는 것을 그냥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한국인들은 봉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한국인들은 돈이 많은 나라 사람이다, 그냥 때돈을 번 나라이다, 그러니 바가지 씌워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베트남인들에게 팽배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창 베트남 관광붐이 거셌고 놀러온 한국인들이 팁값 등으로 마구 돈을 뿌려대니 베트남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판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 임대 등 그곳에서 살겠다는 사람들한테까지 그렇게 나오니 베트남인들을 다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후 베트남에서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한국인들로부터 베트남인들의 독특한 특성을 모르면 베트남에서 백전백패한다는 말도 들었다. 겉으로는 어수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계산에서는 능구렁이같은 영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셈에 아주 민감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중국인들과도 그런 면에서 참으로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베트남이 예전에 중국의 속국으로 천년을 보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베트남에 있으면서 실제로 본 실화이다. 꽤 큰 식당을 가진 베트남 주인의 아들이 갑자기 자신의 가게를 놔두고 라이벌격인 옆집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인즉 옆집가게에서 월급을 자신의 집보다 조금 더 지급한다는 것이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바로 그 돈으로 자신의 가족들도 배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베트남 설날인 뗏 기간 직후에는 웬간한 사업체에서는 인력난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고향에 갔던 직원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한 번 가면 함흥차사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동안 조금 벌어둔 것으로 먹고 놀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그때서야 어슬렁대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 온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이는 중소기업체 사장들은 명절때가 되면 그야말로 초긴장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미리 여러명의 베트남 사람들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가 인원을 충원하는데 대부분이 고향에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죽은 사람도 돈이면 살릴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행정처리도 돈의 여부에 따라 그 처리기간이 완전히 고무줄이다. 서너달 걸리는 일도 일주일면 해결되고 일주일이면 처리될 사안도 몇달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업이 급한 사람들이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주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이번 코로나 사태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각국이 문을 걸어잠그니 베트남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응하는 방법이 문제였다. 공산국가인 것을 감안해도 너무 심할 정도의 통제가 이뤄졌다. 펜데믹이라해도 앞뒤 판단하지 않고 획일화 일변도였다. 대규모 사업체도 일제히 조업을 중단하게 된다. 방역과 거리두리를 하면서 일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선 완전 통제시스템을 가동했다. 물론 방역시스템과 의료상황이 좋지 않기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손발을 꽁꽁 묶어두는 정책속에 그곳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인 등 외국기업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백신과 관련해서도 자국의 힘으로 자국민들을 구제할 생각은 않고 외국기업들에게 손을 벌이니 참으로 딲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이 베트남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각 기업체마다 노조의 힘이 강해지고 그들의 일방적인 요구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급증하게 된다. 돈에 민감한 베트남인들인데다 노조의 힘이 거세지니 그런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의 고민이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특징중의 하나인 강한 민족주의가 가세하면 그 상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보통 때는 서로 무관심한 것 보이지만 조그만 계기가 생기면 똘똘 뭉치는 것이 바로 베트남인들이다. 자국인들이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되면 잠시도 참지 못하는 것도 베트남인들이 가진 대표적인 성향이다.
박항서 감독의 경우를 보면 베트남인들의 성향을 더욱 깊게 알 수 있다. 박 감독이 부임하고 난 뒤 베트남인들은 축구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부르는 스즈끼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그동안 베트남인들이 상상을 못했던 것을 박감독이 해냈다. 베트남인들은 잠시 흥분하고 박항서 찬가를 목청껏 질러댔다. 지나가는 한국인들에게 큰 절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간혹 질 때도 나오면서 이제 박 감독을 매도하기 시작했다.감독 교체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독이 잘해서가 아니고 선수들이 잘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점차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축구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베트남이 지금 급속 성장을 이룬 것은 베트남의 운이며 베트남인들이 노력한 댓가이지 삼성 등 외국기업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외국기업들 없어도 베트남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물론 외국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국의 기술력과 능력으로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트남의 성장은 자국의 기술력에 기반을 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중국은 자국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베트남은 잘 나가는 중국의 성장속도만을 배웠지 그속에 담긴 기술력 향상은 등한시했다. 우선 빨리 배부른 부동산 관련 기업에 올인을 했다. 그동안 자동차 등 기술분야관련 기업체도 등장했지만 기술력이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괜찮은 제품은 만들어지기 힘든 것 아니겠는가. 베트남인들은 이런 것을 간과하고 있다. 아직 베트남은 외국 기업들에서 많이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그 기업들에서 기술력과 경영 방식을 배워야만 했다. 그러나 독특한 민족주의 다시말해 미국과 프랑스 중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이겼다는 그 승리의 경험이 그들의 앞날에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베트남인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 맞짱 뜨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제 사업부분에서 베트남에게 기대하긴 어려우니 다른 나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과 아직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으니 그래도 버티자는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베트남에서 작은 사업을 해보겠다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을 정확히 알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베트남뿐만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 국민성과 그들이 가진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모르면 그야말로 백전백패이다.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칼을 가는 민족을 그냥 웃는다고 마냥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참으로 무모할 수밖에 없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지금 베트남은 그동안 중지했던 관광사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벌지 못한 것을 일시에 회복하겠다고 판단하고 찾는 관광객들에게서 그 방법을 찾는다면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얼마나 바가지 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관련 단가는 급등하겠는가. 벌써 그런 현상이 이미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사람은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아는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1980년대 후반에 베트남을 찾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베트남인들은 참으로 순박한 듯이 보였다. 돈의 위력을 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웃음이 그냥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돈의 위력에 젖어들고 돈 맛을 알고 오토바이가 급증하면서 베트남인들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니 그동안 가려졌던 베트남인들의 국민성이 이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지 모르겠다. 하여튼 베트남을 정확히 알고 대처해야 큰 코다치지 않는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을 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2022년 4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