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닐 휘슬러
미국,1834~1903
화가의 어머니
The Artist's Mother, 파리, 오르세 미술관
서양의 명화 중에 어머니의 모습을 제일 잘 표현한 작품은 무엇일까? 단연 늙으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지는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가 아닐까? 얼마나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는지 <화가의 어머니>는 1934년 미국 최초의 어머니날 기념우표로 발행될 정도였단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했어. 그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아 동참하기도 했고, 벨라스케스의 렘브란트의 영향도 받았단다. 휘슬러는 타고난 위트와 사교적 성격으로 주목을 끌 만한 활동을 즐겼지.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에도 무척 민감했단다.
예술가로서 자부심과 명예에도 민감해서 자신의 작품에 악의적으로 평가한 평론가 존 러스킨과 법정분쟁(1878년까지 했을 정도였지. 휘슬러의 호전적 성격만큼은 그의 매혹적 작품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단다.
"예술이란 예술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휘슬러의 예술관이었단다. 색과 형태가 최종적으로 이루는 조형방식, 이 심미적인 측면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지. 풍경화, 초상화를 막론하고 대상이 실제와 닮았는가 하는 문제는 휘슬러에게 부차적 요소였단다. 대신 조형방식에서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즐겨 그렸단다.
은은한 색조와 물기 있는 착색의 '야상곡' 연작이 그것이었지. 뿐만 아니라 옆모습의 전신 초상화도 자주 그렸단다. 1863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한 <흰색 심포니 1번, 흰 옷을 입은 소녀(Symphony in white no.1, The white girl)>가 낙선했는데, 이 해 낙선전에서 약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었지.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출품된 그 낙선전이었단다.
어머니를 향한 휘슬러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시 휘슬러는 뉴욕의 첼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였는데, 어머니는 이미 67세의 고령이었지. 장시간 서 있는 것이 어려운 어머니를 위해 휘슬러는 의자에 앉는 구도를 썼단다. 그래서 이 그림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보다 색과 구도의 힘에 있단다.
단정한 자세로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정면을 응시하는 어머니. 의자에 앉은 휘슬러의 어머니와 왼편 커튼의 검은색이 화면 전체의 무게를 장악하고 있구나. 벽면은 특히 회색으로 색칠하고 상단에 걸린 그림에는 또 흰색을 사용했지. 이 그림의 원제목은 '회색과 검은 색의 조화: 화가의 어머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The Artists Mother' 란다. 휘슬러가 붙인 이 긴 제목이 그의 예술이 지향하던 방식을 잘 보여주는구나.
어머니의 초상을 그렸지만, 휘슬러가 궁극에 지향했던 것은 색과 형태의 조형방식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이었단다. 검은색, 회색 그리고 모델의 구도를 통한 절제된 시공간을 만드는 것이지. 검은색, 회색 그리고 정적인 구도의 조화로서 보여주는 격조와 품위야말로 예술가의 어머니가 버텨온 인고의 시간이 아니겠느냐.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를 조형요소와 결합한 휘슬러의 어머니 초상은 근대회화의 아이콘이 되었구나. 풍부하고 부드러운 블랙의 색감, 대비되는 빼어난 색채와 인물의 정수를 표현한 통찰력에 이르기까지, 그가 고수했던 미학이 그대로 담겨 있구나.
의자에 앉은 측면의 모습과 색채만으로도 휘슬러의 어머니의 성품을 알 수 있겠느냐? 휘슬러가 전하는 이 품격이야말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애틋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