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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은 죽은 후, 약력이라 해서, 살아온 인생을 대여섯 줄로 표현한다. 언제 어디서 출생. 어디서 근무하다 언제 도미. 언제 어느 교회서 세례. 언제 무슨 직분으로 임직. 언제 소천. 이것이 그 사람의 전 생애다. 죽은자는 죽은자들에게 맡기라 해서인지, 주님 안에서 잠든자니 주님께 맡기는지, 장례식 뒤엔 아예 신경을 끈다.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랴? 가난을 정복하던 투지와 좌절, 사랑이 싹트고 익고, 도중에 실패하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있다. 상처를 싸매주던 엉뚱한 사람과 결혼한다. 시집식구 처갓집식구는 얼마나 문제투성이었으랴? 배우자가 고통을 안 주었다 해도, 아이들 기를 때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죽여주던 일은 얼마나 많았으랴? 늙어가면서 만난 생판 낯선 이성에게서 첫사랑의 환영을 발견하니 참혹한 꼴은 꼴이 아니다. 갈등하고 고민하고 삐뚜로 나가지 않았어도 문제는 줄어들지 않는다. 모두 포기한 후, 예쁘게 늙어 평탄하게 죽겠다고 결정하기까지는 얼마나 기도와 눈물이 흔들리고 뒤섞이었으랴?
이 수많은 이야기를 누구나 똑같이 겪는 일이라며 싹 무시해 버리고, “세례 받고 죽다”라는 한마디 말로 덮어두기는 너무 억울하다. 사람이 죽으면 묻어버리는 것은 실제로 시신이 아니라 그의 수많은 사연이다. 샛별처럼 가슴 찌르는 이야기도, 다시 캐내지 못할 특이하고 유일한 교훈도, 죽은이의 것은 모두 무시하려 든다. 귀찮아서 뭉뚱그려 시신보다 먼저 땅속에 통째로 묻어버린다.
네브라스카 노스플래티 근처 맥휘어슨이라는 내쇼널 공동묘지를 둘러보았다. 미국 군인으로서 전쟁 중에 젊은 나이로 죽은 사람도 있고, 전쟁을 치른 베테랑으로서 긴긴 생애를 살다가 죽은이도 있다. 군인부부가 전쟁터에서 함께 죽은이도 있다. 아내는 젊은 나이로 전지에서, 남편은 90살까지 살다 죽은 군인커플도 있다.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과 생사년월일은 인생을 숙고해보게 만든다. 특히 한국전에서 죽은 미군과 베테랑들이 많이 묻혀 있어서, 그들의 생애와 행적을 비롯해 인생을 파헤치고 싶다. 조국의 독립전쟁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세계평화를 위해 외국을 지원하다가, 20세 안팎의 나이로 죽었다. 물론 영원의 세계에서 보면 20세에 죽건 80세에 죽건 차이가 없을 것이다. 윌리스 타우어에서 내려다보는 땅 위의 행인이 대통령이건 날품팔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하늘에서 보는 인생이 손자로 죽으면 어떻고 할아버지로 죽으면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똑같이 한국전에 참가했어도 우리가 보면 다르다. 부산 인사본부 사무실에서 뉴스 듣던 병사와 인천상륙작전이나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했던 병사와는 천지차이다. 똑같이 압록강까지 전진하여 강물에 오줌을 갈겼던 군인이라도, 훈장을 받은자와 고생만 실컷 한 무명병사는 목성과 수성의 크기만큼 큰 차이다. 영원에서 보면 그게 그것일지라도, 각 인생의 아픈 마음이나 애타는 가슴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귀천이나 선악의 구분 없이 이름을 남기고 죽는다. 오래 기억되어도 좋을 것이 없고, 곧 잊혀도 억울할 것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은자는 이름이 묘비에 새겨진다. 천덕꾸러기로 살았다 해도 고아로 굴러다니다 죽었다 해도, 생년월일부터 사망년월일까지 묘비에 최소한도 몇 줄은 새겨 넣어야한다. 그런데 달랑 한 줄로 희미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죽은 사람도 있다.
“Unknown U.S. Soldier."
이 미국 젊은이는 어떤 위대한 사람이었기에, 혹은 얼마나 서러웠던 삶을 살았기에, 이름도 안 남기고 뼈와 군복 쪼가리만 남겼는가? 둘러보니 이런 묘비가 꽤 많다. 오대산 중턱이나 백마고지 너머에서 형체와 소속을 알 수 없는 시신이 발견되었다. 흰 별표가 그려진 군복의 일부가 훼손된 신체에 걸려있거나, 노랑머리털이 엉겨 붙은 육체의 일부가 굴러다니다가 발견되었나보다. 미국 병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름도 소속도 모르는 조각이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한국전과 월남전을 거치면서 퍼플하트와 실버스타 훈장을 받고, 제대하여 오래오래 살다가 “Loving Husband, Dad and Grandpa”라는 글까지 새겨 받으며 죽어간 풍요로운 베테랑도 있다. 한국전 월남전의 경험에 아프간 참전까지 추가한 만만찮은 노병으로 살다 죽은이도 눈에 띈다. 가장 가슴 저리는 묘비는, 달랑 “이락전”이라고만 새겨졌고, 십팔 세에 죽은 이름도 모르는 소년의 묘비다. 그가 나쁜 짓만 하며 살았다 해도 만나보고 싶다. 모든 사람이 “흔해빠진 전쟁 이야기”라는 비로 싹싹 쓸어 땅속으로 묻어버린 젊은이의 넋두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수많은 영혼들이 묘비에 새겨진 몇 줄의 글이라는 입을 통해, 그들 생애를 말하고 있으나, 묻혀버린 그들의 언어를 캐내어 이해하긴 쉽지 않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