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바람, 그리고 시인의 꿈
10년 전쯤이었을까요.
그때의 저는 여행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여행자였습니다.
낯선 도시의 풍경, 오래된 골목의 냄새, 길 위에서 마주친 얼굴들을 조심스레 기록하며 살아가던 시절.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글을 쓰세요.
당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세상의 풍경을 담아보세요.”
그 한마디가 제 가슴에 파문처럼 퍼졌습니다.
그날 이후, 여행의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내 마음의 조각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운명처럼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손님으로 만나 좋아하게 된 방 교수님.
그분의 글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불교 철학의 깊은 사유와 세상의 가난, 아픔, 노동, 그리고 가족의 기억을 담은 문장들이었습니다.
그 글은 마치 한 그릇의 진한 국물 같아 한 번에 다 삼킬 수 없었지만,
먹을수록 몸에 스며드는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마음 깊이 흔들렸습니다.
“언젠가 나도 이 길 위에서
내 여행을 시로 쓰리라.”
그 다짐을 품고 저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의 배경은 터키.
역사와 바다, 그리고 바람이 서로 뒤섞인, 시간의 층위가 켜켜이 쌓인 나라였습니다.
이스탄불 –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곳
터키의 수도 앙카라가 아닌, 진짜 심장은 이스탄불에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새벽은 낮게 울리는 아잔(이슬람 기도 소리)으로 시작됩니다.
아잔이 골목을 따라 퍼져나가면, 밤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고
붉은 지붕 위로 햇살이 스며들며 하루가 시작됩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도시를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습니다.
한쪽은 유럽, 다른 쪽은 아시아.
다리 위에서 서로 마주 보며 숨쉬는 두 대륙이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아침 산책길에 오른 갈라타 다리 위에서
저는 낡은 낚싯대를 손에 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새들이 앉아 있었고, 발밑에는 작은 고양이가 졸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제 시선을 느꼈는지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그 한마디가 바람처럼 제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긴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한 시인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밖은 까매서 멀리 가는 길은 쉽게 나서는 것이 아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
길은 그저 어둡고 막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마치 바람이 길을 안내하듯,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카파도키아 – 바람의 조각
카파도키아에 도착했을 때, 저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들은 마치 누군가가 바람으로 시를 쓴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바람과 모래의 흔적이
이곳을 거대한 시집으로 만들어 놓은 듯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 열기구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새벽의 공기는 서늘했고, 하늘에는 아직 별빛이 남아 있었습니다.
열기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없는 골짜기와 마을이 작은 장난감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도 이 바람에 깎여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시간의 칼날이
내 마음의 모래를 조금씩 깎아내며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쪽 마을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
그 연기는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의 첫 문장처럼
하늘로 천천히 흩어졌습니다.
에페소스 – 돌 속에 남은 숨결
터키 서쪽, 에게해에 가까운 도시 에페소스에 도착했을 때
햇살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지중해의 바람이 오래된 돌기둥 사이를 스치며
마치 고대의 숨결을 불어넣는 듯했습니다.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 앉아
저는 수천 년 전 이곳을 가득 메웠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상상했습니다.
돌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위를 걷는 우리의 발끝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너진 기둥을 따라 걸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을 지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기도가
지금도 이 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돌들이 제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너의 발자국도 언젠가 돌이 되리라.”
순간,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눈물은 바람에 말라 소금이 되었고,
그 소금은 내 마음의 깊은 곳,
마치 사해(Dead Sea)처럼 고요히 스며들었습니다.
안탈리아 – 지중해의 끝에서
여행의 마지막 날, 저는 안탈리아의 바다 앞에 섰습니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은 끝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또 밀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시도, 여행도, 인생도 결국 파도와 같다는 것을.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또 새로운 물결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것.
바람이 제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그 바람 속에는
이스탄불의 아잔 소리, 카파도키아의 바람, 에페소스의 돌 냄새가
모두 섞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보낸 날들의 총합이자,
제가 앞으로 써내려갈 시의 재료였습니다.
마지막 문장
돌아오는 길
저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이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시로 완성하리라.”
터키의 바람이 제 마음에 남긴 흔적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언어로, 그리고 시로 다시 불러내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여행은 끝났지만,
제 시는 이제 시작입니다.
첫댓글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끝없는 성숙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