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자리붙임
이 흥 우
수필가, 시조시인
동해바닷가에 가서 회를 먹었다. 가자미, 도다리, 우렁쉥이 두루 섞은 모둠회를 주문하고 앉는다. 앉자마자 조갯국에 숙회 몇 점, 날미역 등이 차려진다. 술 주문을 받는다. 남들 많이 먹는 술을 달라고 했다.
회라는 음식은 대부분 살아있는 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한다. 바로 죽여서 회를 떠야 하므로 미리 주문을 했어도 손님이 도착해야 회를 뜨게 되니 조리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음식은 미리 준비했다가 손님이 도착하면 즉시 내놓을 수 있지만 회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기다리는 시간이 있게 된다. 이 기다리는 시간을 달래주기 위하여 자리붙임음식이 나온다. 자리붙임 또는 좌座席붙임이라고 한다. 정감 있는 말이다.
이 좋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스키다시”가 더 세를 타고 있다. 스키다시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일본어 츠키다시突き出し에서 온 말로 급하게 내 놓는다는 의미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급하게 먼저 내놓는 음식이니 의미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이 말을 대신한다고 차림반찬 또는 곁들인 반찬, 밑반찬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도 있으나 상황에 맡는 말이 아니었다. 차림반찬은 상차림을 하자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내놓는다는 것이고, 곁들인 반찬은 본 음식에 더불어서 곁들이 버금음식이다. 밑반찬은 오래두고 먹어도 될 만한 반찬으로 많이 만들어서 저장하면서 본 반찬에 곁들여 조금씩 덜어먹는 기본반찬이다. 어느 것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회를 먹으러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라고 내오는 음식이름으로는 자리붙임을 따를 수가 없다. 순 우리말이라 더 정겹다.
우리표준어 사정원칙 제1항,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제2항 외래어는 따로 사정한다. 로 되어있다. 이 원칙에 따라서인가. 횟집에 가면 먼저 나오는 음식을 스키다시라고 부른다. 사전에도 술집이나 고깃집에서 메인요리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밑반찬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정황과 어울리는 말이라서 스키다시가 우리말 사전에 자리를 잡고 둥지를 트는 동안 자리붙임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사라지고 있다.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지방이라고 소외되는 현상은 언어에서도 많이 겪고 있다. 바닷가에서 상황에 맞게 만들어져 쓰이던 자리붙임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동해안 횟집에서 정겹게 주고받던 말인데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여년이 흘러서인가 스키다시로 변해버렸다. 젊은 횟집주인조차 자리붙임 음식이라고 하니 낯설어하는 표정이다. 사람이야 늙어서 대가 바뀐다지만 일상 쓰던 말이 왜 이렇게 소멸되어 가는지 안타깝다.
언어는 그 민족의 힘이다. 늘 쓰던 언어가 하나 둘 사라짐은 그 민족의 힘이 조금씩 변해가는 현상과 다름없다. 언제부터인가 민족을 내세우기를 꺼려하고 다민족으로 살자고 그래서인가 우리의 기층언어가 점차로 사라져가고 있다. 문제는 누구도 그 자리에 외래어가 자리 잡고 둥지를 트는 현상이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는데도 바로 느끼고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을 느껴서 제안하면 혹 꼰대라고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망설이기라도 해서일 테다.
세계에는 자기네 언어를 잃거나 잊고 민족이 소멸된 사례들이 있다. 아주 번성했던 만주족이 그 대표가 아닌가. 요즈음은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사용되는 언어조차도 따라가며 이해하기가 좀체 쉽지 않다. 이 나라 언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언론매체에서까지 외래어와 줄임말을 거침없이 써대니 나이 들은 이들은 때로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우리말 지키기 주체는 온 국민이 해야 하겠지만 글과 말을 무기로 생업을 이어가는 이들이 앞장서주었으면 한다. 말하기일상에서도 자리붙임 말이 찾아지고 사용되어야 하겠다. 그래야 본대화가 맛깔나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리붙임이라는 말이 표준어로 삼아져서 다시 쓰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