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산책
깊어가는 가을
코로나가 닥치기 직전 전국 기초단체마다 다투어 수입종인 핑크뮬리로 가을을 치장하더니 이제 댑싸리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한 번 보고나면 신비감이 떨어져 잘 찾지 않으니 기초단체가 그만큼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 비닐하우스로 뒤덮여 악취를 풍기던 황무지가 4대강사업 덕분에 거대한 황산공원으로 바뀌었다. 오토캠핑장 등 레저용 시설이 잘 갖춰져 코로나 전까진 부산 울산 창원 김해 등지에서도 탐방객이 즐겨 찾던 곳이다. 지난주 『양산시보』에 알록달록한 댑싸리 사진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탓에 핑크뮬리든 댑싸리든 금년에도 흥행을 이어가긴 어려울 터이다.
유럽이 원산지인 댑싸리는 6년 전 에버랜드가 처음 들여왔고 싸리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엔 ‘대싸리’라 부르다 댑싸리가 되었단다. 볼수록 신기한 것은 그 작은 초록 잎이 서서히 물감이 번지듯 노랑과 빨강으로 변하는 것이다. 황산공원 댑싸리는 키가 50cm 정도 자란 상태로 붉게 물들었지만 너무 간격을 성글게 심은 탓에 제대로 모양을 살려 카메라에 담긴 어려웠다. 바로 옆 핑크뮬리도 꽃을 피웠지만 색감은 다른 지역 꽃보다 칙칙한 느낌이다. 가을이 절정을 지나면서 가장 화사한 꽃을 피운 건 역시 억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 옆에 누런 수크렁이 아름답게 피어 가을 서정을 더했고 그 옆에선 갈대도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사는 아파트에서 5km 거리인 황산공원. 그 중간엔 신도시에 새로 들어선 성당이 있다. 주일미사 후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았을 땐 가을마중 나온 사람들이 많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외국 명승지를 떠올리게 했다. 어린 꼬마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많았고 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이도 가끔씩 보였다. 가난시대를 관통하며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부모의 고마움을 모른다고 말들이 많지만 어쩌랴. 역병이 하루 빨리 물러나 마스크 없이 공원을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공원 남단엔 마음정원도 있다. 공원 건설 때 국토부가 조성한 곳으로 10여 년 세월에 훼손된 시설물도 많이 눈에 띈다.
오늘자 신문은 "가을이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10월 중순에 이처럼 기온이 1.3도까지 내려간 건 64년 만이라 했다. 이런 기상이변도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것이 아닐까 싶다. 방한복을 걸치고 코스모스와 억새를 찾아나서는 중부지역 사람들 모습이 떠오른다. 한반도 남녘은 그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지 않은 탓에 낙동강을 따라 국토를 종주하는 자전거 마니아들도, 산책 나온 시민들도 두꺼운 옷은 볼 수 없었다. 늘 북적대던 파크골프장도 오늘은 적막감이 돌았다. 태평양을 앞두고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 낙동강도 벌써 2년 넘게 생태탐방선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 황혼을 사는 인생이라도 이 가을 공원을 찾는다면 결실의 계절을 음미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