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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O CORTAZAR - It was love at first sight - YouTube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
빈두설경(賓頭設經)
빈두로(賓頭盧, bindola: 不動 뜻)
존자(尊者)와
타연왕설법경을 줄여서
빈두설경(賓頭說經)이라고도 한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안수정등(岸樹井藤)은
‘강 언덕에 있는 나무와
우물 속에 있는 등나무 넝쿨’이란 뜻이다.
세계 대 문호
톨스토이는 유명한 불교 설화인
안수등정(岸樹藤井) 이야기를
이끌어 와 절망적인 상태를 묘파했다.
백서흑서(白鼠黑鼠)
흰 쥐와 검은 쥐
부처님의 인생에 대한 비유의 말씀
불설비유경 해제
당 시대 의정이 번역하였다(A.D. 710).
가장 근본적인 불교교리를
쉬운 비유를 통해 설명한 경으로
이 경의 내용은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
대당(大唐)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는
실라벌성(室羅伐城)의
서다림(逝多林)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에 세존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승광왕(勝光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간단히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왕은 지금 자세히 잘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 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 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 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 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 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 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 것 없는 맛을
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한 것이요,
우물은 생사에 비유한 것이며,
그 험한 언덕의 나무 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비유한 것이며,
나무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목숨이 줄어드는 데
비유한 것이요,
네 마리 독사는
4대{四大, catudhātu는
地(지, 땅, pathavī),
水(수, 물, āpo),
火(화, 불, tejo), 風(풍, 바람, vāyo)}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5욕(五欲, 식욕, 성욕,
재욕, 명예욕, 수면욕)에 비유한 것이요,
벌은 삿된 소견에 비유한 것이며,
불은 늙음과 병에 비유한 것이요,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生), 노(老), 병(病), 사(死)는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5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넓은 들판은 무명의 길이요
달리는 사람은 범부의 비유며
큰 코끼리는 무상의 비유요
그 우물은 생사의 비유니라.
나무 뿌리는 목숨의 비유요
두 마리 쥐는 밤과 낮의 비유며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줄어드는 것이요
네 마리 뱀은 네 가지 요소이다.
떨어지는 꿀은 5욕(欲)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은 삿된 생각의 비유며
그 불은 늙음과 병의 비유요
사나운 용은 죽는 고통의 비유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것을 관찰하여
생(生)의 재미를 곧 싫어하라.
5욕에 집착 없어야
비로소 해탈한 사람이라 하나니
무명의 바다에 편한 듯 있으면서
죽음의 왕에게 휘몰리고 있나니
소리와 빛깔을 즐기지 않으면
범부의 자리를 떠나는 줄 알라.
그때에 승광대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사의 근심스러움을 듣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
생사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저를 위해 이처럼
미묘한 법의 이치를 말씀하였사오니,
저는 지금 우러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하오. 대왕이여,
그 말대로 실행하고
방일하지 마시오.”
촌철살인의 비유, 불설비유경
경전 중 가장 짧으면서 가장 유명
복잡한 인생본질 몇마디로 적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쉬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승광왕(勝光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잘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 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 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 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 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 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 것 없는 맛을 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우물은 생사에,
그 험한 언덕의 나무 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나무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데,
네 마리 독사는 4대(大)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5욕(欲)에,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 노, 병, 사는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5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그때에 승광대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사의 근심스러움을 듣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
생사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저를 위해
이처럼 미묘한 법의 이치를
말씀하였사오니,
저는 지금부터 우러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하오. 대왕이여,
그 말대로 실행하고 방일하지 마시오.”
이때에 승광대왕과 대중들은
모두 다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것이 게송을 뺀
불설비유경의 전문이다.
게송이라 해야 앞서 산문으로 설한
비유의 내용을 반복해서 읊은
20구가 전부다.
불설비유경 게송
曠野無明路, 走喻凡夫,
大象比無常, 井喻生死岸;
넓은 들판은 무명의 길이요
달리는 사람은 범부의 비유며
큰 코끼리는 무상의 비유요
그 우물은 생사의 비유니라.
樹根喻於命, 二鼠晝夜同,
齧根念念衰, 四蛇同四大;
나무 뿌리는 목숨의 비유요
두 마리 쥐는 밤과 낮의 비유며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줄어드는 것이요
네 마리 뱀은 네 가지 요소이다.
蜜滴喻五欲, 蜂螫比邪思,
火同於老病, 毒龍方死苦。
떨어지는 꿀은 5욕(欲)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은 삿된 생각의 비유며
그 불은 늙음과 병의 비유요
사나운 용은 죽는 고통의 비유다.
智者觀斯事, 象可厭生津,
五欲心無著, 方名解脫人。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것을 관찰하여
생(生)의 재미를 곧 싫어하라.
5욕에 집착 없어야
비로소 해탈한 사람이라 하나니
鎮處無明海, 常為死王驅,
寧知戀聲色, 不樂離凡夫。
무명의 바다에 편한 듯 있으면서
죽음의 왕에게 휘몰리고 있나니
소리와 빛깔을 즐기지 않으면
범부의 자리를 떠나는 줄 알라.
이 경은 아마도
수많은 불교경전들 중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유명한 경전이 아닌가 싶다.
그 누구도, 형언하기 어려운
인생의 본질을
이토록 짧은 몇 마디로
이토록 예리하게
적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리고
그것으로 모자라
절간의 벽마다
그림으로 그려 전하고 있다.
이 경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쾌락,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죽음과
괴로움의 본질이
촌철살인의 비유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언제나
이렇게 직시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갈 길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태연히 산다.
옛날 어떤 사람이 큰 들판에 나갔다가
미쳐서 날뛰는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가 들 한복판에 있던
옛 우물터에서 뻗어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 다른 적이 있었다.
우물 네 구석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물 한복판에서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위에서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둥둥 구르고
밑에서는 용과 뱀이 혀를 날름거리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나그네는
유일한 생명줄인 등나무 넝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그런데 머리 위의 큰 나뭇가지에는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앉았다 날았다 하였는데
그때마다 꿀이 떨어져서
입에 들어갔다.
그는 꿀의 단맛에 취해서
모든 위험을 잊고 도취되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에는
난데없이 불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고 한다.
"한 나그네가 넓게 펼쳐진
광야를 걸어가고 있었네.
나그네는 문득 자기의 뒤에서
어마어마한 코끼리가 그림자처럼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알아차렸네.
무시무시한 코끼리가
자신을 짓밟아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나니
나그네는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하네.
나그네가 겁에 질려
더욱 빨리 도망치나
코끼리는 무서운 속력으로
쫓아오네.
두려운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어느 새 벌판 끝에 이르니
막다른 절벽 만났네.
등나무 넝쿨이 휘감고 있는
한 그루 나무가 위태롭게
절벽 위에 서 있네.
그 넝쿨 한줄기가
절벽 아래 우물로 축 늘어져 있네.
코끼리가 뒤에서 발을 들어
나그네를 짓밟으려하니
그 나그네 겁에 질려
등나무 넝쿨을 잡고
우물 속에 내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네.
안도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우물 안 사방으로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시뻘건 입을 벌린 우물 속
독룡들은 나그네가
내려오길 기다리네.
등나무 넝쿨, 생명줄 삼아
우물 중간에 잠시 매달려 있지만,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등나무 넝쿨을 갉아 먹고 있으니
두려움은 더욱 밀려드네.
그때 문득, 머리 들어
우물 위를 바라보니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떨어지고 있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나그네 엉겁결에 입을 벌려
꿀물 받아 먹으니
몰려들던 공포는 잊혀져가네.
들판에 바람 불어 나무 흔드니
벌집도 따라 흔들리네.
흔들리는 벌집에서
벌이 흩어져 내려와
나그네를 쏘고
들판에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네."
"나그네는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보잘 것 없는 맛을
탐하고 있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네.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이요,
나그네는 중생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이요,
우물은 생사이며,
절벽의 등나무 뿌리는 목숨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을,
나무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것이며
네 마리 독사는 몸둥아리 4대(四大)요,
벌꿀은 5욕(五欲)에,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빈두설경(賓頭設經)
부처님은 빈두설경(賓頭說經)에서
다음과 같은 설화를 이야기하셨다.
옛날 어떤 사람이 큰 광야에 나갔다가
미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도망쳐 가다가
들 한복판 옛 우물터에
뻗어 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들어가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 네 구석에서는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우물 한복판에서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위에서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동동 구르고
밑에서는 용과 뱀이 함께
혀를 널름거리니
오도 가도 못한 행인은
오직 하나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그 등나무 넝쿨에
몸을 꼭 붙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 발굽소리
같은 게 들렸다.
이상히 여긴 행인은
고개를 빼들고
그 소리를 경청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를 구하기 위해서 오는
대상들의 말 발굽 소리가 아니라
자기가 잡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흰 쥐와 검정 쥐가
서로 번갈아 가며 쏠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였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하늘 가에선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날고 있었다.
앉고 날 때마다
떨어지는 꿀방울 너덧개,
그것이 입에 닿았을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에만 도취되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엔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태울 만한 모든 것은 다 태워 버렸다.
안수정등(岸樹井藤)
부처님께서는 안수정등이라는
비유담을 통하여
쫓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인생의
실체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건장한 사나이가
한없이 넓은 언덕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듯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언덕이었습니다.
쉬엄쉬엄 꽃도 구경하고
벌레들도 쫓고
언덕의 풍경도 감상하며 거닐고 있는데,
멀리 사방팔방으로부터
사나운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좁혀들어오는 불길을 보면서
어떻게 벗어날까를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데,
불현듯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나
사납게 덤벼드는 것이었습니다
먼 곳의 불길보다는
미친 코끼리를 피하기에 급급했던
사나이는 황급히 도망을 쳤고,
눈 앞에 큰 나무가 나타나자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다른 곳으로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나무 밑을 맴돌며
그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무에 의지하여
한숨을 돌리기는 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탈출할 길을 찾았고,
마침 나무에 얽혀 있는
칡덩굴이
아래쪽의 크고 깊은 우물로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나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칡덩굴에 매달렸고,
차츰 아래로 내려가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우물 속이라 하여
평화롭지는 않았습니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 세 마리가
떨어지면 잡아 먹겠다며
큰 입을 벌리고 있었고,
우물 가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잔뜩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목숨 줄인 칡덩굴에 꽉 매달려 버텼지만,
차츰 힘은 빠지고
손은 저려 왔습니다.
그나마 빨리 떨어지라고
우물 위쪽에서는
흰 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칡덩굴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으니...
"죽었구나!" 생각하며
칡덩굴만 잡고 있는데,
갑자기 입 안으로
액체 한 방울이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 구멍에 지어 놓은
벌집으로부터
꿀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달콤한 그 꿀은
모든 것을 잊게 했습니다.
그는 한두 방울의 꿀을 받아 먹는 재미에
더 이상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인생의 괴로움과
죽음의 두려움을
모두 잊은 채
칡덩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빈두설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안수정등의 비유담은
우리의 인생을
언덕과 나무와 우물과 칡덩굴로 엮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佛說比喩經(불설비유경)
岸樹井藤(안수정등)
이 이야기는 佛說比喩經에 나오는
比喩談이다.
우리들 人間事를
너무도 絶妙하게
表現해놓은 글이 아닌가 생각하며
예전에도 글을 通해,
또는 귀 동냥을 通해
무수히 들어온 比喩談이건만
우리들의 귓전에 자주 울리고
心琴을 울려주는
法文이 아닌가 생각한다.
岸樹井藤(안수정등)이란
岸樹(안수)는 '江 기슭의 나무'
卽 絶壁의 나무
"이몸은 마치 險峻한 江 기슭에
危殆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아서 무너지기 쉽다.
暴風을 만나면
반드시 쓰러지기 때문이다"라고
比喩한데서 緣由하며
이를 河喩라고 한다.
井藤(정등)은
'우물 속의 등나무 넝쿨'
이란 뜻으로
人生이 살아가는데
藤나무 넝쿨 잡고
狀況을 謀免하려는
暫時 잠깐동안
絶體絶命의 危機와
恍惚한 꿀 맛에 取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人間事를 比喩하여
잘 描寫하고 있다.
한 나그네가 아득히 펼쳐진
너른 벌판을 가고 있었다
나그네는 문득 뒤를 보다가
어마어마한 코끼리가
自己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음을 알았다.
여기에서 코끼리는
人生의 無常함을 象徵한다.
산더미 같은 그 黙重한 코끼리의 발이
自身을 짓밟아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자,
나그네는 逃亡치기 始作했다.
나그네가 怯에 질려
逃亡치는 速力을 낼수록,
코끼리도 垈地를 쿵쿵 울리며
무서운 速力으로 쫓아왔다.
나그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一波萬波로 增幅되어
搖動치기 始作됐다.
죽기 살기로 精神없이 달아나다 보니,
더 以上 逃亡칠 벌판이 없었다.
結局 막다른 絶壁에 이르고 만 것이다.
비 바람을 맞으며 자라왔을
나무 하나가 絶壁에
危殆롭게 뿌리를 박고 서 있었고
나무를 감아 올라간 藤나무 넝쿨 한 줄기가
絶壁 아래의 우물로 축 늘어져 있었다.
‘휴 이제 安心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저 덩치 큰 코끼리가
敢히 이 우물 안까지 쫓아 오겠는가’
나그네는 安堵의 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安心도 暫時
瞬息間에 사라져 버렸다.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地點의 四方에서
毒蛇들이 혀를 날름 거리며
나그네를 向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毒이 江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그네는 아래로 내려 가려고
마음 먹고 밑을 내려다 보았다.
오, 이런, 저 아래 바닥에는
毒龍이 시뻘건 입을 벌린 채
위에서 내려오는 먹이를 받아 먹을
萬般의 準備를 하고 있었다.
올라가면 저 위에서 지키고 있는
코끼리가 날 밟아 뭉갤 것이요,
내려가면 저 아래에서 기다리는
毒龍의 입 속에 삼켜질 것이다.
여기 가만 있어도
毒蛇들이 이빨을 내 몸에
박아 올 것이다.
나그네가 處한 悲劇的 狀況은
여기에 그친 게 아니었다.
藤나무 넝쿨을 生命줄로 삼아
우물 中間에 暫時 매달려 있지만,
저 위의 나무 위에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藤나무 넝쿨을 쏠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虛空에 매달린 채 버티며
팔 힘은 다 빠져 가는데,
얼마 안 있어 쥐들이 쏠고 있는
이 넝쿨도 끊어져 버리고 말 것은 自明하다.
그때 문득,
나그네는 달콤한 뭔가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絶壁 위 나무에 매달려 있던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그네는 엉겁결에 입을 벌려
꿀물을 받아 먹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꿀물이 나그네의 벌린 입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그네의 極度의 恐怖는
꿀을 받아 먹으며
暫時 잊고 慰安을 받았다.
그래, 이게 人生이야, 뭐 별 거 있나?
지금 나 꿀 먹고 있다!
나그네는 毒蛇도, 毒龍도, 코끼리도,
넝쿨을 쏘는 쥐들도 잊어 버린 채
꿀물이 주는 달콤한 幻想의
世界에 빠져 있었다.
瞬間的인 快樂에 安住하여
人生의 참된 길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比喩的으로 담고 있는 法文
(법문, 불경의 글)이다.
여기에서 曠野는 生死를 比喩하며
그 나그네는 凡夫를,
코끼리는 無常을,
언덕 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 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比喩한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쥐들이 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瞬間瞬間 줄어 드는 것을
比喩하며
네 마리 毒蛇는 地水火風 四大를,
꿀은 五慾樂을 比喩한다.
우리가 恒常 이와 같이
現實을 어디 한 곳 발 디딜 곳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면
現實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人生이란 커다란 妄覺의 늪에
빠져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러한 岸樹井藤의 意味를
바르게 깨닫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向해 가고 있는지?
늘 잊지 않을 때
우린 岸樹井藤 안에서
自由를 얻게 될 것이다.
特히 우리가 떨어지는 꿀 방울을
五慾樂으로 比喩하고
이 五慾樂은
눈, 귀, 코, 입, 觸覺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으로
世尊께서는 이러한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 하고
五慾의 狀態를 벗어나는 것을
强調하셨다.
우리 다같이 各自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위에서 列擧한 바와 같이
絶體絶命의 危機가 닦쳤음에도
當場 입에 떨어지는
달콤한 꿀 한 방울 때문에
모든 것을 暫時 잊고 살지는 않는지?
暫時 快樂의 늪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남의 손가락질 안 받고
떳떳하게 살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은
自身의 地位, 名譽, 富로
幸福을 느끼려고 한다.
돈도 名譽도 物質的인 尺度는
한 瞬間 幸福일 뿐이다.
永遠할 수는 없는 것이다.
眞情한 幸福은
모든 執着을 버려야 한다!
君子三樂이란 故事가 있다.
그 一 樂은
父母兄弟가
無頉(무탈)한 것이며,
二 樂은
하늘을 우러러 봐
한 點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
三樂은
英材를 모아
後學들을 가르치는 것이
君子三樂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完璧할 수는 없지만
正道를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 으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 해 본다
1. 불길: 사바세계,
깨달음이 없는 무명의 생활
2. 미친 코끼리는: 업연(業緣),
카르마, 업장.
3. 칡덩굴: 목숨줄
4. 세마리 독용: 삼독, 탐, 진, 치
5. 네마리 독사는: 사대, 지, 수, 화, 풍
6.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 해와 달, 세월, 시간
7. 달콤한 꿀물: 오욕락(五慾樂),
1) 식욕 2) 성욕 3) 재욕 4) 명예욕 5) 수면욕
넓은 들판에서 노닐다. -
무명의 길에서 노닐다.
코끼리에게 쫓기다. -
어리석음에 쫓겨
숨을 곳을 향해 헤매다.
사람이 달리다. -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범부가 무명에 쫓겨 달아나다.
우물 속에 빠지다. -
생사 속에 빠지다.
험한 세상의 나무 뿌리를
붙잡고 매달리다. -
험한 세상 속에서
생명이라는 것을 붙잡고 매달리다.
검고 흰 두 마리 쥐가
나무 뿌리를 갉아 먹다. -
밤과 낮으로 생각생각이 사라져
나의 생명이 끊임없이 사라지다.
네 마리 독사가 사람을 해치려 하다. -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재난이
사람을 해치려 하다.
나무 뿌리의 벌꿀이 다섯 방울씩 떨어지다. -
생명이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다섯가지 욕심
(재욕, 식욕, 성욕, 명예욕, 수면욕)이
생겨나다.
벌에게 쏘이다. -
이치에 맞지 않는 어긋난 생각에
고통을 당하다.
들판의 불이 나무를 태우다. -
산다는 무명에서 생기는
늙음의 고통이 생명을 없애다.
우물의 아래 독룡이 있다. -
생사(우물) 속에서 생명(나무 뿌리)에
매달려 있다 떨어지면 죽게 되다.
옮겨 온 글 편집
첫댓글 난 왜 부처님 말씀은 통 못 알아 듣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