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교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도 답답해 하소연해 볼랍니다.
햄스터를 갖고 온 여자아이 A, 미술시간에 화장실에서 B와 C에게 보여주었다는데
1학기에도 햄스터를 주머니에 넣고와 하루종일 조물락조물락 댄 경험이 있었던 A이기에
"햄스터 갖고 왔니?"
"아니요. 안 갖고 왔는데요."
커다란 눈망울을 또록또록 뜨고 대답하는 A- 이런 A의 눈망울 때문에 몇 번이나 속아 넘어갔었지.
B와 C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햄스터 분명히 봤어?"
"예, 화장실 우리들 아지트 있는 데서 분명히 보여줬어요."
다시 A에게 묻습니다.
"아녜요, 전 안 갖고 왔어요."
순간 멘붕.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그러면서 A는 자기의 가방, 어깨에 맨 보조가방, 호주머니를 보여줍니다.
일단 일단락하자.
"그래, 알았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햄스터를 학교에 갖고오는 건, 학대행위야. 햄스터가 얼마나 힘들겠어?
다시는 학교에 갖고 오지 말자."
그리고 세 아이를 보냈는데,
잠시후 B와 C 두 아이가 다시 왔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니까 A가 옆반 아이에게 햄스터를 맡겼어요."
"그리고 어제 카톡으로 나보고 햄스터 먹이 갖고 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C는 자기의 휴대폰을 보여주는데...
이건 뭐 학교 끝나면 카톡에 보이스톡에 휴대폰이 빽빽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잘못 되는 건 스마트폰이 100%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줍니다.
아이들은 공부만 끝나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죠.
온갖 유투브 영상을 다 봅니다.
문제는 수업 끝나면 담임은 그런 걸 제지할 아무 능력도, 힘도 없다는 것.
다음 날.
햄스터를 잠깐 맡아주었다는 옆반 D를 불렀습니다.
"예, 잠깐 맡아달라고 해서 들고 있었어요."
D의 말에 뒤통수를 한 방 딱 맞은 느낌이 들었지요.
알고 보니
A는 집에 햄스터가 있는데도
B에게 사달라고 사달라고 졸라 함께 인근 마트에 가서 7,000원을 주고(햄스터 4,000원, 통 3,000원) 샀다는 거예요.
그리고 A는 C에게는 먹이를 가져오라고 하고.
집으로는 가져갈 수 없으니 이렇게 주머니 속, 가방 속에서 햄스터를 키우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거금 7,000원을 주고 햄스터를 사준 B를 훈계하고
"너는 돈이 어디서 나서 거금을 들여 친구에게 햄스터를 사주었느냐, 친구에게 척척 사줄만큼 그렇게 부자냐 등등"
A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사실 바로 전에 있었던 사건도 얘기할 겸-여자아이들을 규합해 누구 누구랑 놀지 말라고 했던 A, 어쩌다 그 누구 누구랑 얘기라도 할라치면 마구 꼬집었다는 A)
전후 사정을 얘기하는 도중에 자꾸만 말을 끊는 A의 엄마
"우리 아이가 그랬으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어머니,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런 행동을 했겠죠."
내 말에 다시 음성을 높이는 그 엄마.
"우리 아이가 햄스터를 가져갈 리가 없어요."
화까지 내는 엄마. 마치 내가 자기 아이를 몰아넣기라도 한 양.
"어머니, 저는 누구 편을 들자고 전화를 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이가 오면 잘 타일러 전후사정을 알아보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몹시 언짢네요.
어떻게 자기 아이를 100% 안다고 생각하는지.
마치 담임이 잘못도 없는 자기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그리고 또 다음날.
A가 '구체적 사실의 기록'이라는 종이를 받아들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적었습니다.
저는 반성문이라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구체적 사실의 기록'이라는 종이를 사용합니다.
속으로는 과연 저 아이가 진실대로 적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너무나 태연하게 자기는 안 그랬다고 하는 저 아이에게 속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불리할 때면 눈물로 하소연하는 저 아이.
그러면 착하고 마음 약한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아이 말을 다 들어주고 다독여주고 함께 놀아줍니다.
그게 그 아이의 무기인 듯.
구체적 사실의 기록에는
엄마와 아빠 왈 "B가 햄스터를 샀으면 그 아이가 키워야지 왜 네가 키우느냐?"고 했고
A는 자기가 졸라서 사준 거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진짜 사실을 적었네요.
그 다음에는 뭐 그러그러한 이야기들.
아이들의 거짓말.
때로는 알면서도 하고, 모르면서도 하는 거짓말
어떤 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 때면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을 인정하죠.
그러면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로 끝나고.
그런데 모든 사실을 시치미 딱 떼고 눈 또글또글 굴리면서 하는 이 아이의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친구들을 이용해 먹으면서 친구들을 거짓말쟁이로 쉽게 몰아가는 이 아이의 거짓말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참으로 답답한 며칠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해답을 모르겠네요.ㅠㅠ
(나중에 꼭 동화로 써봐야겠어요. 우정을 가장한 가짜우정?
김경옥 작가의 신간 '가짜 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를 읽고 리뷰를 쓰려다가 갑자기 떠오른 우리 반 사건.)
첫댓글 ㅎㅎㅎ. 대부분의 어른들 왈
"애가 거짓말 하겠어?"하며 치는 보호막이 아이들을 늑대소년으로 만든것 아닐까요.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요.ㅠㅠ
어른이나 애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잘 들키느냐 그렇지 않느냐 차이이고 다양한 형태의 문제인 거죠.
경옥샘 가짜뉴스 책 축하하면서 제가 쓴 더 헌트라는 영화에서도
유치원생 아이의 거짓말에서 시작된 이야기인데요,
어른들이 아이가 거짓말을 할리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키우게 돼죠.
영화 헌트 봤어요. 정말 마음이 무거웠던 영화.
! ! '더 헌트'가 산초샘 작이군요. 짱^★^
@산지기 아닌데요?? 영화 이야기인데요...
것두 덴마크 영화.
@산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