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을 정말 좋아한다. 산책 이야기가 나오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인다. 함께 산책하는 사람이 나의 지나친 호들갑에 당황스러워할 때도 많다. 나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산책이 좋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내가 혼자 나가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동네에는 우리만의 산책길이 있다. 동네를 한 바퀴 크게 돌면서 사람도 없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나무와 꽃이 많은 꿀코스를 개발해두었다. 꽃향기 맡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길이 나만의 낙원이다.
늘 같은 길을 산책하면서도 매일매일 그 길을 걷고 또 걷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그런 것도 같다. 집에서는 계속 붙어 있는 것 같아도 잠시 눈을 맞출 뿐 이내 다른 곳을 보기 일쑤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아도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에 섭섭함이 물밀듯 밀려오기도 한다. 하루 종일 나만 바라봐주길 바라는 게 욕심이라는 건 알지만 온전히 내거인 순간을 몇 시간이라도 갖고 싶은 심정이 자주 든다. 그러니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서로에게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산책의 시간을 나는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하루 이틀 산책을 못할 때도 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서 몸이 피곤한 사람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무작정 조르기도 미안하면 일부러 철퍼덕 누워서 나도 쉬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심전심이라며 자기도 오늘은 도저히 산책할 힘이 없었다고 말하면 마음이 짠해지면서 오늘은 저 사람을 봐주자 싶다. 대신 옆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걸로 됐다. 산책이 정말 좋지만 그보다 저 사람의 ‘안녕’이 나는 더 좋은가보다.
나는 말리노이즈,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반려견이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남자에게 안겨 탁구클럽에 왔다. 탁구클럽 마당에 있는 작은 집이 내 집이라는데 겨울이라서 더 그랬는지 나는 그 집이 너무 춥고 외로워서 밤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도 울어서였는지 그 남자는 나를 안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여자와 아이 둘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줬다. 그날 밤 나는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엄마를 만나는 꿈도 꾼 것 같다.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 가족들의 눈치를 살폈다. 뒹굴거리며 예쁜 짓도 해보고 쉬가 마려우면 꼭 베란다에 나가 쌌다.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키울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너무 어린 강아지를 밖에 둘 수도 없으니 겨울이 지날 때까지는 나를 이 집에 머물게 하자는 가족회의가 막 끝난 날, 나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아서 처음으로 힘차게 왈왈 짖었던 것 같다.
겨울 내내 그 집에서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코가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가 그리운 건지 다른 강아지 친구가 그리운 건지 이 집에선 맡을 수 없는 다른 냄새가 너무너무 맡고 싶어 코가 근질근질했다. 그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매일 개 사진이 있는 책을 열심히도 들여다보던 여자는 어느 날 엄청난 사실을 알았다는 듯 깜짝 놀라며 나를 데리고 첫 산책을 나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내가 산책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인과 함께 걷는 꽃길, 나의 첫 산책은 황홀했다.
오늘도 나는 산책을 한다. 이제는 내 몸이 엄청 자라 함께 산책하는 사람이 힘겨워할 때도 많다. 멀리서 꽃 냄새가 나면 빨리 달려가고 싶지만 그랬다간 주인이 휘청거리며 끌려올 판이니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려 애쓴다. 언젠가 나이가 더 들어 힘이 빠지면 그땐 주인과 보폭을 맞춰 더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는 아직 젊고 꽃은 만발했고 내 주인은 산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를 기꺼이 웃으며 따라다녀줄 만큼 나를 많이도 사랑하니까.
첫댓글 "전지적 개 시점" 흥미진진합니당ㅎㅎ
오마이뉴스 기사 게재 축하드려요!
http://omn.kr/20b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