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혼식
김정자
가을을 재촉하는 소슬바람이 어느새 길가에 활짝핀 코스모스의 미소
를 몰고 왔다. 코스모스 위에 앉은 빨간 잠자리는 꽁지를 잡을 때 가
슴이 뛰놀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게 한다.
남편의 친구의 막내딸 결혼 청첩을 받고 우리 부부는 조치원 인근
신부 자택으로 향했다. 신작로 옆으로 수많은 자가용이 줄을 지어 세
워져 있고 저택의 정원 위로 차일이 쳐져있다. 결혼식 축하객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몰려왔다.
초가을의 날씨인데도 오후 세시에 예식이 거행됨으로 저택의 잔디
밭에 내리쬐는 햇볕은 거의 30도에 가까운 열기로 몹시 덥고 힘들게
했다.
몇 년 전에 신부의 조부 조모님의 금혼식을 이 잔디밭에서 올렸기
에 늙으신 얼굴에 연지곤지 찍고 전통혼례를 거행 하던 모습을 가끔
떠올리곤 했었다. 신부의 어머니가 막내딸 결혼식의 장소를 자택으로
정한 것도 백수에 가까우신 그분들에 대한 마지막 효심인 듯 싶었다.
대문 앞 접수대에서는 인사장과 식사대가 들어있는 봉투를 답례로
건네어주었고 동네 아줌마들이 찹쌀떡과 약간의 음료로 손님 대접에
여념이 없다. 결혼식장이 서구식으로 아주 멋있게 꾸며있는 것을 보
니 전통혼례가 아닌 것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파란 잔디위에 아취
형의 장미넝쿨을 중심하여 온통 꽃으로 장식한 야외 예식장이 아름답
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차일을 친 그늘 아래로 신부어머니의 친구들이
모여
“오늘 예식은 신부가 노래를 한데!” 하며 특별한 예식이니 끝까지 남
아 지켜보자는 이야기들을 하며 잔뜩 기대을 하는 모습이다.
신랑 신부는 외국에서 학업 중에 만난 선남선녀인데 신부는 성악을
전공하고 신랑은 작곡을 전공했다고 한다. 신랑 신부의 입장에 앞서
화동들 네 명이 2조씩 짝지어 꽃을 뿌리며 입장을 하고 한쪽에선 폭
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온 동네를 요란하게 했다.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로 살포시 가리어진 상기된 신부의 얼굴이 전
해 듣던 소문대로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모습으로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로워 보이는 아름다운신부! 그
여인의 일생을 책임지겠다는 믿음직한 표정으로 정답게 팔짱끼고 뽀얀
안개속을 걸어나온 신랑, 비누방울에 휩싸인 채 살포시 내딛는 신랑
신부의 입장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목사님의 장황한 주례사는 뜨거운 햇볕 아래 서있는 축하객들에게
는 고통인 듯 싶었다. 주례사가 끝난 다음 신랑이 직접 작곡 작사한
축가를 그들의 친구들이 부를 때 나는 그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갔
다.
그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하모니 되어 온 동네에 울려 퍼졌고 소
란스러웠던 축하객들은 아주 조용한 분위기로 그들의 노래하는 자태를
지켜보는 모습들이 너무도 진지하기만 하다.
“이 세상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우릴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끊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사랑을 나눌 수 없으리...” 1절의 축가가 끝난 후
2절은 음악을 전공한 오늘의 신부와 신랑이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노
래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검은 예복으로 성장한 신랑과 하얀
드레스로 우아하게 차려입은 신부의 손에 쥐어진 하얀 백합이 그들의
순결한 사랑을 말 해 주는 듯 싶었다. 두 사람이 함께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오늘의 그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가 되어 가을 하늘을
둥둥 떠 다니는 뭉개구름 처럼 행복에 젖어 34년 전 그이와의 행복했
던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는 신식 결혼식장으로는 중앙
초등학교 뒤쪽으로 YMCA회관이 유일하게 있었는데 드레스를 입
고 달달 떨기만 했던 나의 초라한 모습이 생각이나 부끄러워 혼자서
얼굴이 불거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신부 신랑이 그렇게 여유 있고 멋진 모습으로
하객들에게 노래로서 고마움의 인사를 하는 예식은 처음 보았다. 조
금전 뜨거운 열기에 지쳐버렸던 손님들이 온통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들을 지켜보는 순간은 힘들었지만 신랑
신부의 노래하는 모습이 오랜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들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긴- 축가는 계속 되었다.
축가의 3절에는 신랑 신부의 퇴장하는 순서로 친구들의 의미 있는
노래에 맞추어 씩씩하게 걸어 나오는 한 쌍의 연인들의 출발이 아름답
다. 축하객들의 박수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행진이 끝날 무렵 오늘
맺어진 부부와 손님들의 머리 위에 길다란 색종이 테잎과 꽃가루가 온
정원을 뒤덮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와” 하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는 답례로 혼주측이 건네준 봉투가 조금은 야
박 하다고 서운해 하였지만, 예식이 끝난 후에는 모두들 오늘의 한
쌍에게 축배의 잔을 높이 들어주고 싶어 아낌없이 건네는 축하의 말이
온통 흥분된 어조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큰일에는 먹는 잔치라 하지 않았던가? 역시
푸짐하게 차려놓은 잔칫상이 없으니 어딘지 허전한 마음의 한쪽을 감
출 수가 없다.
올 여름의 끝자락에서 뿜어내는 태양의 열기는 여전히 내려쬐는데
하얀 드레스와 검정 예복의 주인공들이 밝은 미소를 띠며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일일이 정성껏 드리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작로에 하늘하늘 청초하게 피어있는 코
스모스가 한결 환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축가를
열심히 부르는 행복한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 세상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우릴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끊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사랑을 나눌 수 없으리...
현재나 장내일 이나 능력과 높음과 깊음이나 다른 피조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사랑을 끊을 수 없으리...’
멋지고 아름다웠던 신랑 신부의 영원한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
들이며 가을의 아스팔드길을 신나는 음악과 더불어 달려본다.
2000. 6 집
첫댓글 멋지고 아름다웠던 신랑 신부의 영원한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
들이며 가을의 아스팔드길을 신나는 음악과 더불어 달려본다.
가을의 멋진 결혼식 의미가 깊군요.
어제 나도 멋진 파티 같은 결혼식을 보고 왔습니다.
작가인 신부가 작사한 노래를 무지컬 배우들이 멋지게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꽃 정원의 런웨이를 걷는 시랑 신부를 보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고 왔습니다..
새로운 선남선녀의 사랑의 결실을 보며 지나간 나의 모습을 그리며 농익은 사랑의 깊이를 생각하며 돌아왔습니다.
어제 그 일로 더 큰 공감을 느껴봅니다.
결혼식을 집 마당에서 했다니 보통 집안은 아니네요
덕유씨야 옛날 사람이니 부끄러움도 많았겠지요
저가 그랬습니다 결혼식을 옛날식으로 했는데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내가 머리가 기운상태로 찍혔습니다
사진 기사가 조금만 익숙했드라면 주위를 해서 사진을 찍었을 것인데 옛날에는 익숙한 사진 기사가 없었지요
긴장한 상태로 머리가 기울었으니 보기가 싫어 사진을 치우고 말았지요
요즈음 젊은이들은 미리 상대를 골라 연애를 하다 만났으니 익숙하여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방글방글 웃으며 예식을 하는 것 보면 한편 예쁘기도 하지만 방정한 기분이 들더군요
우리 집안에서도 큰일이 생기면 하객들에게 식사대접을 하지 않고 봉투로 대접합니다
대신 식대값은 충분히 넣고 멀리있는 분들은 교통비까지 지급합니다
왜 이런 방식을 하냐 하면 교통비나 사람들의 각자 입맛을 마추지 못해 그렇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