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뛰어난 무력
▶ 여포전 내 표현들
사납고 용맹하여 병주에서 복무했다...용력하고 민첩하여.....원소는 군사들에게 추격하게 했는데
모두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없었다.....여포는 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다
▶ 궁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유비를 돕기 위해 활을 쏴서 곤궁에 벗어나게 한 것도 사실이다.
여포가 활을 들어 극을 쏘았는데 소지를 정확히 맞췄다.
제장들이 모두 놀라 말하길, ‘장군은 천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여포전
▶ 정사의 몇 안되는 일기토 승리 기록 보유자.
곽사와 여포는 더불어 싸웠는데 여포가 모(矛)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와 곽사를 구했다. - 여포전
▶ 이 정도 평가면 정사에서도 보기 힘든 칭찬임.
보통 우리가 아는 맹장들에 대해서도 그냥 용맹했다 정도로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포효하는 호랑이라고 표현하니 이 정도면 탑클라스임.
2. 하지만 최강자라 단정짓기엔 좀 모자름
▶ 일기토가 거의 구라인 연의 특성 상
호뢰관에서 유비 관우 장비를 한꺼번에 상대했다는 이야기나
조조의 장수 6명(허저, 전위, 하후돈, 하후연, 이전, 악진)을 동시에 막았다는 일화 모두 구라다.
위에 설명한 곽사와의 일기토만 사실이다.
특히 호뢰관 일기토는 당시 유비의 입지라던가
후술할 반동탁연합군을 상대로 저지른 여포의 병크를 감안해보면 있을 수가 없다.
연의가 여포에게 베푼 수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겠다.
아무래도 연의 지은이가 여포에게 항우 포지션을 맡겼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특히 가상캐릭터인 초선 을 등장시켜 후술할 불륜남 이미지를 싹 바꾼 걸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여포는 연의에서 후한의 항우 포지션을 맡는 수혜를 받아
싸움 잘하는 이미지를 얻고 불륜남 이미지를 지운 셈이다.
▶ 활쏘기와 기마에 능하고 여력이 남보다 뛰어나 '비장 '이라 세간에 불리긴 했는데
흑산적의 장연 도 비장과 흡사한 '장비연' 이라는 평가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이유로 후한 시대 비장 소리를 들은 장수로 여포와 장연을 꼽는 듯하다.
즉 '비장'이란 칭호가 당시 여포 혼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다만 여포는 바로 그 장연의 군대를 상대로 대단한 활약을 하며 적을 격퇴시킨다.
이런 점에서 대단하다고 할 순 있겠다.
▶ 장연과의 전투로 '인중여포, 마중적토' 라는 칭찬을 들었다.
....원소는 여포와 함께 상산에서 장연을 공격했다.
장연은 정병 1만 남짓에 기병이 수천에 이르렀다. 여포는 적토라 불리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었다. -여포전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했다. - 조만전 (주석)
근데 이게 여포전에서 여포가 장연을 공격할때 등장한 적토마에 대한 주석으로 짧게 나온 거라
당대 명사들의 여포에 대한 공식 평가라기보단 장연을 공격할 시기의 뛰어난 활약상이나 아우라에 대한 묘사에 가까울 것 같다.
▶ 결정적으로 여포에 대한 당대 명사들의 평가는
용맹에 대해 높이 치켜세우면서도 별로 크게 두려워 하지 않는 태도가 섞여있다.
여포는 용맹한데다 또 원술을 믿고 있어서 만약 그가 회수와 사수 사이를 종횡토록 놔두면
호걸들이 반드시 그에게 호응할 것이니 - 순유
여포의 위력은 항적에 미치지 못하고, 곤궁함과 패배는 그보다 더 심한데,
만약 승세를 타고 공격하면,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 곽가
강하지만 무례하니, 필부의 영웅일 뿐이오. - 정욱
여포는 용맹하나 지모가 없는데, 지금 세 번 싸워 모두 패배하였으니 그 예기가 쇠퇴하였습니다. - 곽가, 순유
여포는 장사로 싸움을 잘해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으니 - 진궁
여포는 용맹하나 꾀가 없고 행동거지가 가벼우니 의당 조기에 도모해야 한다 -진등
▶ 곽가나 정욱은 관우, 장비에 대해 만인지적 혹은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평가 를 했는데
그에 비하면 표현수준에서 위압감이 떨어진다 .
그리고 임팩트가 생각보다 약했는지 후대에까지 위명이 크게 전해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이십이사차기 에서처럼 연의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후대의 용장들을 칭송할때 관우나 장비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
관장지용 이라는 문구가 생겨났지만 여포에겐 그런 경우가 잘 없다고 한다.
다만 '포사(布射) '라 하여 여포가 활을 잘 쐈다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 결국 최강자라기 보단 당대 손꼽히는 용장이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듯.
3. 게다가 겁이 엄청 많았다
▶ 후한서 동탁열전에 따르면 여포가 반동탁연합군 소속이었던 손견의 성을 공격할때 일이다.
먼 행군을 하느라 피로에 지친 호진과 여포의 부대가 쉬면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여포가 혼자 놀라 "적이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전 부대가 혼란에 빠져 갑옷을 버리고 10여리를 도망쳤다가 적이 없음을 알고 (...)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성 공격은 실패한다.
▶ 학맹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옷도 제대로 못입고
마누라만 데리고 화장실을 통해 빠져나가 고순에게로 도망갔다.
반란 진압도 고순이 다 했다.
▶ 고순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여러번 간언했다.
고순 : "장군께서 몸을 움직이실 때 치밀히 생각하지 않고 번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길 좋아하시니
그런 잘못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영웅기
▶ 연의에서처럼 조조에게 포위당했을때 조조에게 항복하려던 걸 진궁이 말렸다.
▶ 성밖으로 나가 조조와 싸우려 할때 마누라가 자기 버리고 나가 싸우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자 결국 못나갔다.
▶ 장연군 격퇴 같은 호쾌한 승전도 있지만
뛰어난 지휘관이라기엔 손견, 이각과 곽사 상대로 패배하고
고순의 충고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장패와 싸움을 벌이다 멋적게 되는 등의 아쉬움이 많다.
4. 정사에서도 배신 + 패륜
▶ 자신을 두텁게 대하던 정원 죽임.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 받는 것을 보고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게 했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로 나아가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하여 부자(父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다.-여포전
▶ 의부 동탁도 죽임. 정사에서도 동탁은 여포의 의부였음. 패륜을 저질렀단 얘기.
여포 :“부자(父子) 사이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왕윤 :“그대의 성은 여(呂)이니 본래 골육도 아니오. 지금 죽음을 걱정할 겨를도 없는데 무슨 부자지간이라 하시오?”
마침내 여포가 이를 허락하고 손수 칼로 동탁을 찔렀다. - 여포전
▶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배신을 그닥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원술에게 의탁하려 할때
"내가 동탁을 죽였으니 원술의 원수(동탁이 원씨 가문 일가친척을 모조리 죽임)를 대신 갚아준 셈" 이라며 으스대는 기록이 있다.
동탁과 부자지간이었던 여포가 지 좋을대로 배신해놓고 하는 말이라 원술로선 기가 찰 노릇.
원술이 안받아주자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이런데다 주변 사람 무시하는 성격이라
나중에 원소에게 의탁했을때 여포의 태도에 빡친 원소가 암살단까지 보내 죽이려 들었다.
▶ 서주에서 유비 뒤통수 친 것도 사실이다.
▶ 이후 원술에게서 재물 지원받았으면서 원술이 유비를 공격하자 방해하였고
나중에 원술의 혼인제의 사자였던 한윤을 잡아 조조에게 넘겼다가
이후 곤궁에 처하자 원술에게 다시 혼인하자고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음)
첫댓글 연의 최대 수혜자는 관우임. 신이 됐는데
오잉? 연의때문에 중국이며 우리나라며 사당생기고 그렇게된건가요?
@09090909090909 연의 이전에 삼국지평화고 연의가 인기 끌면서 명나라시절 필수서적이되고 그때 신이됨
삼국지 연의 - 14세기에 나관중(羅貫中)이 장회소설(章回小說)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
관우 - 송(宋)나라 이후에는 관제묘(關帝廟)를 세워 그를 무신(武神)이나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송나라 - 960∼1279
연의랑 상관없습니다.
@Jesus Vallejo 관우 아니라도 신으로 모시는 삼국지출신은 많습니다만. 이정도 인기를 구가하게 된건 연의 덕분입니다
@구양공자 첫 댓글에는 연의 때문에 신이 됐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자 갑자기 연의로 인기를 논하고 계시네요,
관우는 송나라때부터 추앙받은게 맞습니다.
중국의 황제에 있어서 충의의 화신인 관우는 좋은 정치 도구였죠.
북송때에 송 휘종(숭녕원년-1102년)에 충혜공(忠惠公)으로 시호를 받기 시작하여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로 이어집니다
@Jesus Vallejo 송나라때부터 아니고 죽은뒤부터 신이 된게 정확하겠죠? 관우가 죽고 덩달아 여몽, 조조가 죽어서 말이 나온거니까요. 송나라때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무렵은 적어주신 그대로고 , 연의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신이 된거라 생각합니다
@구양공자 송나라때부터 신이 된거 맞아요.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를 다스리는 도구중 하나로, 신앙을 이용한거고 그때부터 민담 야사들이 퍼지기 시작한거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제3공화국, 박정희 시기에 충무공 이순신의 현충사를 재건하고 성역화 시킨거랑 비슷한거에요. 때문에 북한에선 우리나라만큼 이순신의 존재를 모르기도 하구요.
@Jesus Vallejo 당장 위에만 봐도 써있네요.
관우 - 송(宋)나라 이후에는 관제묘(關帝廟)를 세워 그를 무신(武神)이나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Jesus Vallejo 관우 말고도 감녕도 사당있고, 제갈량도 사당 있고 조조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건 다른 사람 다 제치고 원탑 먹은게 송나라 부터인지는 잘 모르겠고 사당을 언제부터 세워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연의에서 최대 수혜자로 등극된건 맞다는 겁니다. 중국에 사당 넘치는데 지금 중국에 그만한 위치 받는게 된게 연의빨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면 할말 없습니다.
@구양공자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두명이 관우와, 악비입니다. 관우 사당은 송나라때 생겨났고, 악비는 송나라 사람이었구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신(武神), 그리고 충의가 있겠네요.
위에 GibsonJ45님이 써주셨듯이 연의의 관우는 민담 야사를 모아 묶어 표현한거에요.
엄청 길게 댓글을 썼는데.. 그냥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만하시니 할말이 없네요; 네 알겠습니다.
@Jesus Vallejo 글쎄요.. 님이 적어주신바대로 충의 상징으로 악비,관우인데 악비랑 관우랑 인기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신이 된 시점을 따지시는거라면 저는 죽은뒤부터라고 말씀드릴게요. 근데 지금과 같은 위상의 신이 됐는데 연의의 공이 없다구요? 이거에 대한 질문은 전혀 답이 없으시네요
@Jesus Vallejo 관우는 말씀하신대로 정치적 목적 + 연의인기가 더해져서 게임에도 등장할만큼 세계적 인기남이 됐는데 님은 전자만 계속 말씀하시네요. 혹시 제가 신이됐다는 말하나 때문에 후자를 못본척 하시는건가? 저도 관우가 왜 추앙받게 됐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여기 한국에서 저랑 논의하실만한 사람이 된거 연의빨이라고 확신합니다.
정사에서 만인지적이란 칭호를 받는 사람은 관우.장비 밖에 없는걸로 암. 여포는 그 보다 아래급이라고 봤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
정사로 보면 관우보다 아래급
출신이 비천하고 북방 출신이어서 정사에서 저평가 받는거 아닌가. 이렇다할 세력도 없이 일찍 죽어 그런것도 있고
관푸치노는 진짜 역대급 거품
공감. 평가가 좋으면 뭐함? 혼자 삽질해서 형주 말아먹었으니 쯧쯧
고순이 정말 아까움..... 능히 이름을 떨칠 수 있는 맹장이지만 주군을 잘못만나.... 아쉬움
곽가 사마의 하후돈 조운 마초 정도가 과대평가로 알고있는데
정사기준 최고 무장은 관우지만 연의빨로 지방정부의 실패한 무장이 신격화됐으니 혜택 보긴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