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의사를 밝힌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 감사원을 나서며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오늘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에서 사퇴하며 대선이라는 ‘황야’에 들어선지 꼭 한 달이 됐다. 두 자릿수에 조금 못미치는 지지율로 일단 야권 유력 대선 주자 반열엔 올라섰다. 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 여부 등 변수가 많아 불안한 지지율이라는 평가도 있다.
예상 밖 ‘직진 정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입당식에서 입당신청이 완료된 최 전 원장의 핸드폰을 보여주고 있다.뉴스1
감사원장 재임 시절 최 전 원장에겐 “점잖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있었다. 그런 평가 때문에 그가 정치를 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원장직 사퇴 뒤 최 전 원장의 행보는 이미지와 달리 과감하게 속전속결로 움직였다.
사퇴 9일 만에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다”(지난 7일)고 말하며 정치 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지난 15일엔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범생이인 줄 알았던 최 전 원장이 야권 대선판을 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야권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와 대비돼 더욱 주목을 끌었다. 검사 시절 윤 전 총장은 위기를 돌파하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오히려 정치를 시작한 뒤엔 장고(長考)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7일 “최 전 원장의 빠른 입당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확실하게 ‘내 편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윤 전 총장과 달리 확실한 입장을 보여준 것도 최근 지지율 상승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치신인 #평당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변인단과 간담회에 앞서 자켓을 벗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 전 원장은 26일 대선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뒤 페이스북에서 이 소식을 전하며 태그로 ‘#정치신인’을 달았다. 그 스스로 정치 분야에선 초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새내기 평당원’인 그가 정치권을 공략하는 방식은 몸을 낮춰 당내 인사들과 접촉점을 늘리는 것이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9일엔 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고, 다음날엔 당 대변인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도 인사를 했다. 22일엔 의원회관 9층을 돌며 당 소속 의원들에게 인사를 돌기도 했다. 공식 일정 외에는 전화로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의 전화 첫 마디는 “인사드립니다”라고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지난 22일 라디오 방송에서 최 전 원장을 “친화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최 전 원장의 전화를 받은 한 의원은 “굉장히 깍듯하게 인사를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재형계’로 부를 만한 현역 의원 수가 많지는 않다. 26일 최 전 원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비공개 회동을 했는데 조해진·박대출·김용판·김미애·정경희·조명희 의원 6명만 모였다. 같은 날 윤 전 총장 입당 촉구 성명에 40명이 이름을 올린 것과 대비됐다. 하지만 최재형 캠프 관계자는 “상황이 다르다. 세(勢) 대결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윤석열 입당 뒤엔?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 전 원장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당연히 와야 할 자리”라고 말했다. 조문객 제공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최 전 원장에겐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이 큰 변수다.
윤 전 총장이 입당할 경우 그동안 최 전 원장이 흡수한 보수 진영의 지지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전 총장의 입당이 최 전 원장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에 대한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가 거칠어질 경우엔 대안으로서 최 전 원장의 가치가 상승하는 반대의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