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수능일네요. 혹시 자녀가 수능을 치고 있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어쩌면 정작 시험을 치는 본인보다 부모가 더 마음조릴지도 모르겠군요.
문득 15년전 우리나이로 41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나름대로 고심하며 수능시험을 보던 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전공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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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괜찮은 회사 과장자리 내팽겨치고 인생 이모작을 하기로 생각한 것은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 장래에 대한 불안, 개인의 발전성 여부, 월급쟁이 생활의 한계, 원하지 않았던 부서로의 전보 등 수많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아내가 직장에 다닌다 해도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이 전혀 없는 학업에 매달린다는 것은 나의 처지로선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 학비 조달하기에도 여념이 없는 처지에 가장인 애비가 공부를 해야 하니 그 학비는 어떻게 감당하며 생활비 지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으로 결단을 내리기까지엔 수많은 고심의 날이 있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1994년 여름, 나는 고심끝에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새로운 인생 항로를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사직서를 내고온 다음날부터 두문불출하고 수능모의고사 문제지와 씨름하면서 수능준비를 시작하였다. 8월 초에 회사를 사직했기 때문에 그해 11월 23일에 있을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데는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 시간적으로도 무리였다. 그래서 그 짧은 기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외국어 영역과 수리탐구1 영역은 그런 대로 따라갈 수 있었고, 수리탐구 2는 암기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나이 든 사람에겐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언어영역이었다. 지문이 워낙 길어 한참 읽다보면 앞부분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모의고사를 보면 언제나 언어영역의 시간이 가장 모자랐고 점수도 낮았다. 그래서 언어영역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많은 모의고사 문제지를 구해서 시간을 맞춰놓고 실전과 똑같이 풀어 나갔다. 식구들이 출근을 하고나면 혼자 남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집중적으로 문제를 풀었다.
몇 주간 집에서 공부를 하여 워밍업을 한 뒤 8월 말경, 입시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집가까이 있는 입시학원을 두달 다녔고 남은 11월은 집에서 그 동안 한 공부를 정리하며 보냈다.
9월 중순에 수능 원서를 쓰기 위해 지방에 있는 모교를 다녀왔다. 모교에는 동기 2명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원서작성을 도와주었다. 예전에 우리 영어를 담당하셨던 김xx 선생님이 반백이 된 모습으로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1973년도였으니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 주었다. 수능 원서는 집이 있는 oo교육청에 접수했고(재수생은 교육청에 원서를 접수했음), 수능준비 기간이 3개월 간으로 짧았지만 모의고사 문제지를 집중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수능 시험장은 시내 공설운동장 부근에 있는 xx중학교였다. 수능시험일 당일 나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으로 출발했고 교사였던 아내는 수능 감독을 위해 또 다른 시험장으로 떠났다. 다행히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고 시험장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한 두 살을 보태면 자식들의 나이와 비슷한 학생들과 어울려 젊은 감독선생의 측은한 눈길을 애써 피해가며 열심히 시험을 치렀다.
매 시간마다 수험번호 2642265번 이름 등과 정답 번호를 낯선 OMR카드에 컴퓨터 펜으로 메워 나가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20여 년 만에 다시 치르는 시험이라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지만 젊은 학생들 사이에 끼어 무사히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시험이란 것은 나이와 무관하게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역시 두렵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날 저녁, TV방송에 나오는 정답풀이를 맞춰보고 대강의 점수는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한 수능성적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한달 간을 기다려야 했다. 일 개월 뒤 발표된 수능결과는 다행히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 나왔다.
ps) 입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만학도로 다시 시작한 대학생활... 그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많은 사연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풀어보지요^^*
첫댓글 용기가 정말 대단하셔구요.아내분이 더 존경 스럽습니다.
마누라 입장에서는 보험들어 놓은 거지요. 그 당시 회사는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모르는 힘들 때였으니까요. ^^*
도전은 늘 아름답지요...용기가 부럽습니다.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잖아요^^*
아...훌륭하십니다.다음 글도 기대를 합니다.
글쎄요. 언제 가능할지 예상할 수가 없네요... ^^*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대단하시네요..다시 시작한 대학생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겠어요..
교수로 오해받았던 일.., 어린 선배가 말깐다고 덤비던 일... 사연이 많아요... ^^*
3개월 짧은 기간....믿어지지가 않습니다....평소 기본 실력이 있으셨나봅니다.....암튼, 대단한 용기와 도전정신 그 귀추가 궁금합니다....
열심히 노력할 뿐이지요. 그 영향으로 지금은 철인3종에 푹 빠져있어요^^*
대단 하시네요^^멋지네요^^완주에 사는 68세의 차사순 할머니는 5년동안 950번의 도전끝에 운전면허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네요....해외토픽에도 나왔다네요^^ 두분다 멋지삼^^
몰라서 그렇지 조금만 관심가지면 주위에 멋진 사람들 많아요^^*
대단한용기와 추진력...짧은기간에 좋은결과를 내신것을 보니 기본기가 탄탄했던것 같습니다~~`
매사 열심히 살려하고 있습니다. ^^*
이사님의 성공기를 시리즈로 듣고싶군여...매진하는 이사님이 아름다움은 열정아닐까욤?
저도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빌어봅니다. ^^* 그렇지요. 중요한 건 노력하는 열정이지요. 6월 파주런마라톤 대회를 나가고 14시간을 뛰어 완주하는 아이언맨 코스를 생각해도 열정없이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좋은결과를 얻기를 바랄뿐이지요
노력한다는건 중요한 일이지요^^*
멋있게 용기있게 살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당신을 도와주는 가족들도 멋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