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1독서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묵상-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는 새로운 탄생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탄생의 의미를 깊이 느끼기에 세례일을 생일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갖는 결단의 무게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빛과 어둠의 대결에서 빛을, 생명과 죽음의 대결에서 생명을 택하려는 결단입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는 ‘어둠’이 권력을, ‘죽음’이 성공을 약속하기에 그리스도인조차 어둠과 죽음에 이르는 넓은 길을 택합니다.
12·3 내란 사태 앞에서 우리는 이런 신자들의 전형을 봅니다. 내란 우두머리인 신자는 독재와 민주주의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정권과 국가도 혼동합니다. 악령의 신탁(神託)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국가와 국민을 제물로 삼으려 합니다. 권력과 부귀영화를 영속하는 것이 목적이면서도 국민을 위한 결단이라 항변합니다. 더 한심한 일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의 무신앙, 무개념입니다. 이들은 거짓 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자신만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주교, 사제, 수도자도 적으로 삼습니다.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누구든 종북이고 빨갱이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그저 물신(物神)이고 무신(巫神)일 따름입니다. 심각한 영(靈)적 타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과 악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좁은 가시밭길도 기꺼이 선택합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포용합니다. 궁극에 하느님의 정의와 선이 승리할 것을 믿기에 기다릴 줄 압니다. 고귀한 가치일수록 오랜 인내와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알기에 빠른 성취를 약속하는 거짓 예언에 속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어두움에도 빛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길고 험난한 선의 길, 바른 영의 길을 걸어야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신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저희도 다시 한번 세례의 의미,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s://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