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順理)와 무리수(無理手)
인생살이를 두 가지 표현으로 함축하면 “무리수와 실수”라 표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이겠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표현입니다.
인터넷 사전에서 무리수를 검색하면 두 종류의 무리수가 나옵니다.
無理數(무리수)는 수학 용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無理手(무리수)는 바둑 용어이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무리수의 의미입니다.
무리수는 바둑의 이치에 어긋나는 수, 무리하여 둔 수(手)를 의미합니다.
흔히 바둑을 수 싸움이라 칭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 형식, 틀이 있나봅니다. 무리수란 승리에 급급하여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마저 벗어난 경우를 말한다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간혹 이렇듯 무리수를 두는 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무리수를 두는 개인이나 집단들의 공통점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며 내면 상태가 조급한 경우들임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선배분들이 잘못 지도한 대표적 조언이 “꿩 잡는게 매”라는 표현이라 여깁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이 표현 자체는 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꿩 잡는게 매라는 이 표현은 결과 지상주의를 부추기는데 한 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말임은 분명함을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한창 한국교회가 오르막길을 오르던 시절, 교회성장학자들 중 꿩 잡는게 매라는 말을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유 무능의 잣대를 외적 성장 여부로 한정하는 듯한 늬앙스를 풍겼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결국 목회자들로 하여금 과도한 경쟁을 부추김으로 목회자 상호간의 목회 윤리가 붕괴되는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니던 어린 시절만 해도 불가피하게 교회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현재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의 이명동의서를 첨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외적 성장이 전부인 것 처럼 분위기가 흐르며 질서가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맺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게 된 배경은 바로 창세기 20장에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브라함이 이방땅 그랄로 옮기며 그곳의 왕인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 자기 부인 사라를 자기 누이로 소개하는 무리수를 두는 대목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앞에서 사라를 누이라 말한 표현은 거짓말이 아니지만, 엄연히 현재의 신분은 자기 아내가 맞는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자기 신상에 해가 될까 두려운 나머지 결혼전의 관계인 누이로 소개하는 모습은 인간이 결정적 순간에 어디까지 비굴해 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비굴한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모든 일이 순리와 순적하게 이루어 가심을 창세기 21장은 보여줍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맹세하고 언약을 맺었던 장소인 브엘세바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21:33절을 보면 흥미로운 히브리어 세 단어가 나옵니다.
1. 브엘세바입니다.(맹세의 우물)2. 에셀입니다.직역하면 도움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21장에는 에셀나무로 등장합니다.
다음은 이지현 국민일보 논설위원의 에셀나무에 대한 설명 일부입니다.
<성경에서 ‘에셀나무’는 ‘최고의 안식’ ‘강인한 생명력’ 혹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메마른 광야에 꿋꿋하게 서 있는 에셀나무는 황량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에셀나무는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이다. 다른 식물이 모두 말라죽어도 에셀나무가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뿌리를 땅속 30m까지 뻗어 지하수를 흡수하는 능력에 있다.>(성경 속 식물 '에셀나무/이지현 기사 참조)
3. 영원이라는 히브리어 올람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영원으로 한글 개역은 영생으로 번역되어진 단어입니다.(영원, 영생, 긴 기간, 먼 미래 등)
브엘세바와 에셀나무가 인간편에서의 약속이라면 올람(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상호 약속은 하나님앞에서 행한 것임을 상기시키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무리수를 두는 실수를 범했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실수를 기회로 선용하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창세기21:33-34)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무리수....교회, 특히 목회자들의 무리수를 많이 보면서 자랐습니다
좋은 교회, 신실한 목회자 만나는 복이 큽니다.
이명동의서
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입니다
어릴 적 이사 가면서 이명 동의서 받아가던 모습을
보아왔는데 언젠가부터는 꿈 같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