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이상향은 진실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일까?
종교학자들은 ‘지구의 특정 장소를 에너지가 충만한 성스러운 땅’이라고 여기는데, 그러한 땅을 지상의 어느 한 곳에 묘사한 소설이 1933년 나타났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은 지상의 선경이자 유토피아인 ‘샹그릴라’를 배경으로 했다.
소설 속에서 샹그릴라는 티베트의 산맥속에 있는 라마교 사원 공동체로 신비스런 가공의 유토피아로 그려져 있다.
1931년 바스크 지역을 피난하던 영국인 휴 콘웨이 일행은 히말라야 오지에 불시착한 뒤, 평화와 중용을 지키며 오래 사는 이상향 샹그릴라에 도착한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다. 20세에 들어가면 20세로 60세에 들어가면 60세 그 나이로 몇 백년 아니, 몇천 년을 살수가 있다. 콘웨이는 그곳의 삶에 매료되지만, 최고승정의 조언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샹그릴라는 단순히 은둔하는 마을이 아니라, 외부 세계의 파괴로부터 인류의 지혜와 문화를 보존하는 최후의 보루로 그려지고, 특히 최고승정 페로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목격자로서, 콘웨이가 현실 세계의 책임과 이상향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도록 이끌어었다.
“만일 자네에게 나 정도의 경험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때가 가끔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여러 가지 일들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거야.“
소설 속에 나오는 글이다. 그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샹그릴라 호텔’ ‘샹그릴라 골프장’을 비롯 온갖 상품에 샹그릴라가 등장했다.
고비 사막 북쪽 톈산 지역에 있다고 알려진 샴발라(현대의 극락)에서 착안한 샹그리라를 티베트 사람들은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존하는 곳으로 믿었는데, 상그리라는 티베트어(語)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샹그릴라를 현실 속으로 불러낸 중국은 1997년 중국 원난성 디칭장족자치주에 있는 중덴(中旬)을 지상에서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 즉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한 뒤, 2001년 상그릴라로 개명하였다.
중국에 또 하나의 샹그릴라가 있는데, 스촨성의 야딩이 그곳이다. 하얀 설산 아래 해발 4,600m 4,700m에 위치한 우여해와 오색해가 있는 야딩은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지상의 선경, 낙원 중의 낙원 중의 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웠다.
중국만이 아니고, 파키스탄도 훈자라는 장수마을을 샹그릴라라고 홍보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는 것이며 그런 연휴로 나 역시 지난 오월에 그곳 훈자를 찾아가지 않았던가? 그런 이야기가 서린 곳이 이번에 찾아갔던 괴산 선유동의 기국암이었다.
조선 명종 때의 일이다. 한 나무꾼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구경을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여기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이니 돌아가시오.” 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옆에 세워둔 도끼를 찾았는데 도끼자루는 이미 썩어 없어진 뒤였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낯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구인가 물었더니 그의 5대 후손이었다. 그곳에 간 날을 헤아려보니 그가 바둑 구경을 한 세월이 어느 사이에 15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도끼 자루가 썩은 곳을 ‘난가대’라고 불렀고, 노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을 ‘기국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바둑 한 판 관전하는 사이에 백 오십년의 세월이 흘러가다니, 무상하지 않은가? 세월은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 괴산 선유동의 기국암에서 바둑을 두던 신선들이나 그 나무꾼은 지금쯤 우주의 어느 곳에서 어떻게 세상을 소요하고 있고,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꿈꾸며 살고 있는가?
2026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