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TQ8C2wIEj8?si=Vecu13B4WcsA9QI7
1847년 피츠버그에서 청년 클럽을 위해 작곡하였다. 1848년에 출판되어 100달러를 번 포스터는 이로 인해서 가곡작가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밴조를 메고 앨라배마에서 루이지애나의 애인을 만나러 간다는 내용의, 흑인적인 정서가 깃든 2박자의 명쾌한 노래로,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된 1849년경 서부로 몰려든 청년들에 의해 불리기 시작, 곧 미국 전역에 보급되었다. 지금도 많이 불리고 있다.
포스터 [Foster, Stephen Collins, 1826.7.4~1864.1.13]
펜실베이니아주 로렌스빌 출생. 소년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14세 때 처녀작 《티오가 왈츠》를 작곡하였다. 1841년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주일 만에 중퇴하고 음악교사 H.쿠퍼의 지도 아래 베토벤음악을 연구, 그때부터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844년 《창문을 열어다오, 사랑하는 이여 Open the Lattice, Love》를 출판하였으며, 그 무렵에는 친구들과 함께 합창단을 조직하여 많은 가곡을 제공하였다. 1848년 《오, 수재너 Oh! Susanna》가 100달러로 팔린 것에 자신을 얻어 가곡작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으며 그 후 《시골 경마(競馬)》《고향 사람들 Old Folks at Home》《벤조를 뜯어라》(1851) 《주인은 차디찬 흙속에 Massa’s in the Cold, Cold Ground》(1852) 《켄터키 옛집 My old Kentucky Home》《금발의 제니》《올드 블랙 조 Old Black Joe》 등의 작품이 E.P.크리스티악단 및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등에서 불리어 유행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미국 전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남북전쟁(1861∼1865)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가정생활의 파탄도 있어 혼자서 뉴욕으로 떠나 거기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빈곤과 괴로움 속에 죽었다. 그의 사후 2개월 만에 유작 《꿈꾸는 가인(佳人)》이 출판되었다. 출판된 그의 작품은 모두 188곡으로 이에는 풍부한 시정(詩情)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 속에 깊은 애정과 인간성이 표출되어 있으며, 유럽적인 감각과 함께 남부 흑인의 생활이나 민요의 영향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미국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작품은 현재 전세계에서 애창되고 있다. 1939년에 그의 전기적 영화 《그리운 스와니》가 제작되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9uzAPJ5Yik4?si=_VHTnAtdMRotg969
Oh! Suzanna(오! 수잔나) By Connie Franc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