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타난 ‘데메드리오’ 인물 연구
Ⅰ. 본문 연구
1. 사도행전 19:23-41
사도행전 19장의 시기적 배경은 바울 일행이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에베소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던 때이다.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에서 사역 대부분을 차지하던 장소가 바로 에베소 지역이다. 바울이 방문하고 사역했던 당시 에베소 지역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서 교통과 항구가 발달했으며, 상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또한, 로마 총독이 와서 제법 큰 사건을 재판할 정도의 도시였으며, 凡 오니아 경기 대회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모이게 되면서 많은 범법자도 증가했으며,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문화들로 인해 이방 미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에베소가 다른 어떤 도시보다 유명했고, 자랑할만한 랜드마크는 역시 거대한 아데미 신전이 이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둥 127개가 있는 거대한 신전으로서 당시 에베소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예로운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바로 이러한 지역에서 2년 동안이나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배경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이 시기는 대략 주후 52-55년 경이다. 3년을 사역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특별히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론을 이어갔다. 그 가운데 놀라운 능력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성령의 강력한 임재 결과로 바울이 덮거나 만졌던 물건을 통해서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는 일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이 믿었던 마술이 담긴 책을 태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 일행의 에베소 사역 하이라이트는 이 본문 내용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가’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었던 마지막 사건으로써 에배소 소요 사건을 기록한다. 이 사건을 내러티브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다. 특별히 이 내러티브 속에 짧은 두 개의 연설을 기술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연설은 은장색 ‘데메드리오’였고, 두 번째는 이 도시의 서기장이었다. 사건의 핵심은 에베소에서 거대한 소요 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그 중심에는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직업은 작은 아데미 신상의 모형을 은으로 만들어 파는 은장색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점차 바울 일행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했던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마술책들을 불태웠다. 이 소식은 은장색 ‘데메드리오’로 하여금 커다란 경제적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신상 만들던 사람들에게 에베소에서 거대한 소요를 일으키게 하는 연설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볼 것은 당시 ‘데메드리오’의 선동적인 연설만으로 그렇게 위협적이고 즉각적인 소요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데메드리오’의 의도가 당시 은장색들이던 군중들의 상태와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더욱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적 관심과 더불어 종교적 헌신이 일치될 때 유난히도 열렬하게 분노를 낳을 수가 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현재도 볼 수 있는 거대한 극장으로 바울의 일행이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끌고 갔다. 흥분에 사로잡힌 거대한 군중은 이 둘을 위협했으며, 분명 ‘데메드리오’와 ‘가이오’는 이곳에서 처음 서로를 보며 마주하게 됐을 것이다. “위대하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부르짖으며 광란에 휩싸인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단단히 사로잡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다행히 지혜롭고 대중을 능숙하게 통제하던 에베소 서기장의 연설을 통해서 흥분하던, 성난 군중들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연설에서 “법정은 열려 있다”고 외쳤는데, 이는 경제적 불만으로 소요를 일으킨 ‘데메드리오’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연설에서 그는 소요의 중심에 있던 ‘데메드리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본문 내러티브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에베소 소요 사건이 매우 급박하고 충동적으로 일어났지만, 한 개인의 반발로 그친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만한 거대하고 위험한 움직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들에게 처음 전해진 복음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데, 바울 일행의 복음 전파에 대한 불신 사회가 일으킨 반발이었고 저항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단순히 경제적 발단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혹은 지배계층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소요도 아니었다. 본질적으로는 철저히 복음 전파에 대한 핍박인 것이다.
2. 요한삼서 1:1-15
요한삼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서 그 시기는 아마도 1세기 후반 25년 동안에 썼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저자 요한이 이 편지를 썼던 지역은 당연히 에베소였다. 요한삼서는 그 분량이 짧고 내용적으로도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올 정도로 매우 순수한 편지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는데, 이 편지를 간단히 말해 ‘데메드리오’를 위해 쓴 “추천서”라고도 볼 수가 있다. 이에 더해 또 다른 확실한 견해는 이 편지의 전달자가 ‘데메드리오’라는 사실이다.
요한삼서의 본문 연구는 전체적 구조를 통해 볼 수 있지만, 인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편지에 등장하는 세 인물이 있는데, ‘가이오’와 ‘디오드레베’ 그리고 ‘데메드리오’이다. 세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가이오’는 편지의 수신자로서 편지는 그에 대해 기쁨과 칭찬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디오드레베’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마지막 ‘데메드리오’에 대한 선함의 인정과 보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특별히 ‘디오드레베’는 확실하게는 수신자 ‘가이오’와는 또 다른 교회의 지도자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디오드레베’의 행위는 교회의 하나 됨에 심각한 도전이었고, 사도 요한의 권위에 대해서도 불복종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심지어 그에 대해 말하길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내면에 야심이 가득 찬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행동은 물리적으로도 사도 요한 편의 사람들을 강압으로 몰아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교회의 지도자였던 ‘디오드레베’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대비시킨 인물이 편지의 전달자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다. 종합해보면, 시작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지도자까지 올랐었지만, 결국 야망과 욕심이 그를 그러한 모습으로 변질시켰다.
이에 반해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던 그의 악한 모습과 정반대로 현재는 선한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편지의 수신자는 그를 추천하는데, 앞서 ‘가이오’를 향해 선을 본받으라고 했던 사도 요한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에서 확인된다. 그렇게 요한삼서의 정점을 찍고서 급하게 마무리 인사 한 줄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이 편지는 결국 요한삼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하게 ‘가이오’에 대한 충고나 권면이 아니라, ‘데메드리오’에 대한 인물의 어떤 모습을 부각하고자 했던 목적의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Ⅱ. 인물 탐구
이제는 이 주제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 관한 연구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작업을 통해서 주제를 위한 본격적인 논증의 준비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각 인물에 대한 기본적 정보와 또 여러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인물 자료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결국 주제를 논증하기 위한 중요한 선행작업으로 보는 것이다.
1. 가이오
“기뻐하는”이라는 의미인 이름 ‘가이오’는 1세기 로마제국에서는 흔한 이름이었고, 신약성경 각기 다른 본문에 다섯 번에서 언급된다. 첫 번째는 로마서 16:23에 고린도의 ‘가이오’가 나타나고, 두 번째는 사도행전 19:29에서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가 나타난다. 세 번째는 고린도전서 1:14. 네 번째는 사도행전 20:4에 더베 사람 ‘가이오’가 언급된다. 마지막으로 요한삼서의 수신자 ‘가이오’가 등장하고 있다.
요한삼서의 ‘가이오’가 다른 네 가지 각기 다른 본문에서의 ‘가이오’ 중 누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성경 본문을 통해서는 정확하게 자료나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이오’라고 하는 인물끼리 여러 가지 추측 가능한 것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에베소 소요 때에 붙잡혔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가 사도바울을 기다리던 드로와의 ‘가이오’와 동일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은 있지만, 증거는 불충분하다. 또 다른 추측은 고린도전서 1:14에 등장하는 ‘가이오’가 완전히 다른 이름인 디도 유스도의 이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리겐은 전승을 언급하면서 로마서 16:23에 등장하는 고린도 사람 ‘가이오’가 데살로니가의 첫 번째 감독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사도행전 19장의 ‘가이오’와 요한삼서의 ‘가이오’에 대한 것이다. 두 곳에 등장하는 ‘가이오’가 동일 인물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채프만(J.Chapman)은 그의 연구에서 두 인물이 동일한 인물임을 규정한 적이 있다. 요한삼서의 저자인 요한은 더욱 자세히 ‘가이오’에 대해 설명하는데, 처음 두 절에서 “사랑하는 자”란 말을 두 번 사용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모두 ἄγαπητός를 사용했는데, 이는 요한이 ‘가이오’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편지 형식도 어느 서신서보다 훨씬 개인적인 편지 형식을 취하면서 수신자에 대한 발신자의 감정 표현을 보다 과감하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전체 15절로 된 짧은 편지에서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이야기와 표현은 1절부터 8절까지나 된다. 대표적으로 예로 요한삼서 1:1을 보면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중에서 “ὄν έγὠ ἄγαπῶ έν άληθεἷα”라는 표현은 단순 인사말 정도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가이오’는 요한에게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말이다. 또한, 전통적 형용사를 사용함으로써 매우 개인적이고 특별한 관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가이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지만, 본문을 통해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진리에도 정통했으며, 어떤 기독 공동체나 교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느 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나 지도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데메드리오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은 풍요와 곡물의 여신인 “데메터”(demeter)라는 그리스 신 이름과 관련 있는데, “데메터”에 속했다는 의미이다. 신약성경에는 단 두 번 언급되고 있는데, 사도행전 19장에 언급하고 있는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이 요한삼서에서 한 번 더 언급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그는 에베소에 사는 은장색이었으며, 바울 일행에 소동을 일으켰던 인물로 나타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데메드리오’는 상당히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다. 많은 은장색이 관심 가도록 명분 있는 총 세 가지 동기를 유발했던 연설을 했다. 직업에 대한 것과 아데미 신전에 대한 것 그리고 아데미 여신에 대한 것이었다. 즉,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들의 애국심을 이용했고, 심지어 종교적 열심으로까지도 활용된 연설이라는 점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매우 능숙한 선동가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은장색들의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요한삼서에서 말하고 있는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라는 구절을 통해서 그가 요한뿐만 아니라, 여러 그리스도인에게도 인정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를 소개하고 있는 12절 이전까지의 인물인 ‘디오드레베’의 여러 악행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의 사례로 ‘데메드리오’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요한삼서 한 절에서만 간략히 언급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실제로 ‘디오드레베’의 여러 악한 행동에 대비시키는 선하고 모범적인 인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삼서에서는 ‘데메드리오’를 인정하는 주체로서, ‘뭇 사람’과 ‘진리’와 ‘사도 요한’ 자신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데메드리오’가 요한삼서 전체의 핵심 결론이면서 동시에 저자 요한이 강조하고자 했던 매우 중요한 의미의 인물이다.
이 두 사건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의 인물 연구는 실제로 거의 없다시피 한다. 대부분 주석이나 연구에서는 성경에 연결할 근거 구절이 없다는 이유로 동일 인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가 대부분이거나 또 다른 주석들에서는 아예 언급하고 있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관한 연구도 분명히 있었는데, 특별히 바틀렛(J. V. Bartlet)은 두 사건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를 동일 인물로 추측했었다.
Ⅲ. ‘데메드리오’에 대한 기존 주장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사도행전과 요한삼서의 주석과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주석과 연구는 두 본문에 나타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 관계에 대해서 서로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동일 인물임을 나타내는 명확한 성경 구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당시에 이러한 이름이 특별하다거나, 소수가 쓴 이름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두 본문의 ‘데메드리오’가 동일한 인물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 역시 추측이다. 정확히 두 본문에 나타난 ‘데메드리오’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 성경 구절도 역시 없다. 또한, 두 본문에서는 다른 성경 본문에서 보통 사용하는 출신 지역 이름을 인물인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인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몇몇 중요 주석에서는 이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요한삼서에서 장로인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추천했던 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매력적인 추측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Ⅳ. 전제
사도행전 19장과 요한삼서에 나타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 관계에 관해 더욱 정확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주목할 점은 두 본문에서 등장하는 ‘데메드리오’와 함께 같은 본문에서 밀접하게 ‘가이오’라는 인물 역시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연구에 앞서 두 본문에 나타난 가이오라는 인물 관계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본 연구 주제인 ‘데메드리오’에 대한 연구를 위해 두 본문에서의 각 두 인물 관계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한다. 두 본문 모두에서 등장하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 각각 인물 관계에 대한 추측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는 아래와 같다.
<사도행전 19장 – 요한삼서, 두 본문 등장인물에 대한 동일 인물 가능성 여부>
위 표와 같이 총 네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두 본문에 나타나는 ‘가이오’는 동일 인물이지만, ‘데메드리오’는 비 동일 인물일 경우이다. 이 경우는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했던 바울 일행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요한삼서 수신인 ‘가이오’가 같은 인물로 보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통해 두 본문의 시간 간격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가 어느덧 교회 지도자 위치로 성장했음을 추청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 모두와 관계가 있던 ‘가이오’를 통해 초대교회 당시의 바울과 요한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고 있다. 하지만 ‘데메드리오’가 비 동일 인물이기 때문에 본 연구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두 번째는 두 본문에서 ‘가이오’도 동일 인물이고, ‘데메드리오’도 동일 인물로 보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본 연구에서 가설로 주장하고자 하는 최종 결론이며, 동시에 두 본문 ‘데메드리오’의 인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매개변수로써 ‘가이오’가 활용될 수가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데메드리오’ 역시 동일 인물이기 때문에 당시 초대교회에 대한 상황과 선교 역사에 대한 짐작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 필요한 전제를 제공함으로써 본 연구의 관심인 ‘데메드리오’에 대한 관계 연구를 더욱 깊이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세 번째는 ‘가이오’가 비 동일 인물이지만, ‘데메드리오’는 동일 인물이라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데메드리오’가 나타나는 두 본문에서 ‘가이오’가 서로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데메드리오’에 대한 추측을 두 본문을 가지고 연관시키기에는 상당이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데메드리오’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확실히 발견되어야만 가능한 주장이 된다.
마지막 네 번째는, ‘가이오’가 비 동일 인물이고, ‘데메드리오’도 비 동일 인물인 경우이다. 이 경우는 두 인물 모두가 비 동일 인물이기 때문에 두 본문에 나타난 인물 이름을 모두 동명이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두 본문 역시 크게 연관성 지을만한 이유도 없다. 결과적으로, 우 리가 당시 초대교회 상황과 선교 역사 과정에 대해서 더 이상 추측이나 생각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도행전 19장과 요한삼서에 나타난 ‘데메드리오’가 동일 인물임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위 두 본문에 등장하는 ‘가이오’라는 인물 역시 동일 인물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존 연구와 주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 두 본문에서 언급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 관계를 알 수 있는 직접적 성경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더 깊은 연구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두 본문의 ‘데메드리오’ 관계를 실질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매개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각 본문에서 ‘데메드리오’가 등장할 때마다 사건과 함께 언급되는 내용적 측면에서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신약성경 전체에서 단 두 번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 언급되는 두 사건에서 가장 밀접하게 등장하고, 또한 함께 언급된 사람이 ‘가이오’라는 성경을 근거로 ‘데메드리오’ 관계를 연구하기 위한 매개의 인물 역할로 그가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특별히 매개가 되기 위한 조건 한 가지가 필요했는데, 두 본문에서의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의 관계를 맺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한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두 인물의 관계를 판단하는데 동일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두 본문에 나타난 ‘가이오’가 두 본문에서 동일 인물이라고 전제되어야 했다.
실제로 요한삼서에 나타난 이 두 인물이 이전의 다른 성경 본문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어느 인물에서든 서로 일치한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시간적으로도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순서를 비교해 보면 요한삼서를 쓴 요한이 A.D. 80년 이후에야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공관복음을 포함하여 모든 서신서와 신약의 모든 성경이 이미 기록된 후이다. 그래서 이미 대부분 신약 문헌이 유럽과 아시아에 흩어진 여러 교회에 회람되고 있었고, 구전을 통해서도 상당히 많은 내용이 교회 전반에 전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서 인물 탐구 부분에서 ‘가이오’와 ‘데메드리오’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요한삼서에서 ‘데메드리오’가 단 한 절 짧은 언급으로도 충분한 이유는 결국, 성경 다른 어느 부분(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그 인물이 누구인가 하 는 자세한 설명을 본문에서는 생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요한삼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도 사도행전을 통해 알고 있는 두 인물의 관계인 수신자 ‘가이오’가 사도행전 19장의 가이오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데메드리오’도 동일한 인물이기에 때문에 이름만 언급해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 연구의 전제는 전적으로 이런 개인적 추측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가이오’를 매개로 사용하고자 하는 본 연구 전제는 채프만에 의해 연구된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본문에 등장하는 ‘가이오’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채프먼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요한삼서의 ‘가이오’를 사도행전 19장의 ‘가이오’와 동일 인물로 보는 것과 요한삼서의 ‘가이오’를 고린도전서 1:14에 등장하는 ‘가이오’, 즉 바울에게 침례 받았던 고린도 사람과 동일 인물 본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마도 요한삼서의 ‘가이오’를 언급된 네 가지의 ‘가이오’와 연결했을 때, 가장 가능성 있는 두 가지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가장 가능성 큰 연결 중 하나가 사도행전 19장의 ‘가이오’와 요한삼서의 ‘가이오’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반대로 추론한다면 요한삼서의 수신자 ‘가이오’라는 인물이 앞서 신약성경에 등장했던 가이오라는 인물과 동일 인물이라고 보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채프만의 연구보다, 본 연구가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그 연구에서 그가 ‘가이오’가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는 주장과 함께 ‘데메드리오’를 언급했는데, ‘데메드리오’를 ‘데마’와 같은 이름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즉,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의 짧게 끝나는 표현으로 쓴 다른 이름이 ‘데마’라는 주장이다. 결국, 성경에 세 번 등장하는 ‘데마’라는 사람과 요한삼서에 언급된 ‘데메드리오’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인데, 이 주장은 이름의 어휘적 표현으로 보면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데메드리오’와 ‘데마’가 동일 인물이라는 제안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또 다른 심각한 이유는, 그렇게 될 경우 ‘데메드리오’에 대한 정체성이 바울의 실패한 동료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본 연구는 채프만 연구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두 본문에 나타난 ‘가이오’를 동일 인물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매개로 사용하여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데메드리오’를 규정하고자 하는 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 연구의 주제는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에 맞추어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가이오’ 인물에 관한 연구와 논증은 따로 깊게 설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전제된 ‘가이오’라는 인물을 매개로 하여 두 본문의 ‘데메드리오’에 대한 인물 관계 연구를 실제로 진행할 것이다.
Ⅴ. 사도행전 19장과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동일 인물인 이유
1. 에베소 소요 사건 현장에 ‘가이오’가 있었다.
요한삼서를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이 서신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상당히 개인적인 편지이다. 특별히 ‘디오드레베’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가이오’에게 힘이 되어 주려는 목적에 썼을 수도 있다. 이러한 편지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언급이 요한삼서 1:12 “데 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며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이렇게 그를 인정 한다는 것은 전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강조하는 것이고 그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마치 사도행전 9장에서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회심한 바울에 대해 증언하고 알려준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삼서에 언급된 ‘데메드리오’가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은장색 ‘데메드리오’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큰 이유는, 요한삼서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과 그의 선함에 대한 강조가 ‘가이오’가 가졌던 어떤 좋지 않은 기억을 바꾸려고 했던 의도로 볼 수 있다. 그 기억은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바울 일행의 전도를 통해서 자기 직업에 경제적 위험을 느끼자 선동적인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대소동을 일으켜 바울 일행에 큰 위협을 주었던 인물이었는데, 이때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대소동으로 위협을 가했던 바울 일행 중에는 가이오라는 인물이 핵심적 사건에 있었다는 점이다.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행 19:29)
이 본문에 의하면 이 소동의 중심엔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다. 물론, 요한삼서와 사도행전 19장의 ‘데메드리오’가 같은 인물이었다라는 주장의 첫 번째 논증은 요한삼서의 ‘가이오’가 사도행전 19장의 ‘가이오’와도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이오’는 이전에 알던 ‘데메드리오’의 모습은 자신의 신변에 큰 위협을 가하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비록 요한삼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데메드리오’가 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이오’도 이미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다른 사람을 통해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최근의 회심 소식을 들었음을 사도 요한이 알았더라도 자기 입장에서 반복해서 그를 인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삼서의 수신자 ‘가이오’가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소요 사건에 있었다는 것은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요한삼서를 중심으로 보면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설명하고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전 둘의 관계를 두고서도 다양하게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데메드리오’가 또 다른 본문에 등장하는 유일한 본문인 사도행전 19장 에베소 소요 사건 중심에 ‘가이오’가 있었다는 사실은 ‘데메드리오’가 동일 인물임을 드러내 주는 가장 강력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스쳐가는 인물 정도의 관계가 아니라 한 명은 생계의 문제가 걸린 것이고, 또 한 명은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생명의 위기에서 그리고 일생일대에서 어쩌면 가장 큰 사건을 경험한 ‘가이오’에게 요한삼서에 언급된 ‘데메드리오’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언급한 ‘데메드리오’는 에베소 소요 사건의 주동자였기 때문이다.
2. 다른 두 본문에서 동일하게 언급되는 두 인물이 동명이인(同名異人)일 가능성은?
성경 전체에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 언급된 본문은 요한삼서를 포함해 총 두 군데이고, ‘가이오’는 다섯 군데이다. 그런데 ‘데메드리오’가 언급되는 성경 본문 두 부분 모두에서 가이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매우 밀접한 관계로 나온다는 점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당시 이러한 이름들이 특별한 이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인해 두 본문 사이의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둘의 이름뿐만 아니라 대부분 성경 인물 이름 역시 당시 시대에 흔히 사용되었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할 것은 성경에 다섯 번 나오는 이름과 두 번 나오는 이름이 두 군데의 본문에서 중요한 사건과 내용으로 함께 언급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데메드리오’가 언급되는 모든 성경 구절에서 동일하게 ‘가이오’라는 인물이 동시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것도 두 본문 모두에서 두 인물이 서로 밀접하고 중요하게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확률적으로도 두 본문의 ‘데메드리오’가 동일한 인물임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이와 다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의 경우를 단순 우연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일뿐이다.
사도행전과 요한삼서의 실제 많은 주석과 연구 자료를 살펴본 결과 비록 두 본문이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이름이 있지만, 이에 대한 자료나 역사적 문헌을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당시 이 두 가지 이름이 단순히 흔했던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 인물로 보지 않으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한삼서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데 있어, 그저 단 한 절로 그치는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이미 사도행전이 쓰여진 후에 여러 교회에 회람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원래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데메드리오’가 증거를 받은 선한 예로써만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사도 요한이 당시 요한삼서를 썼던 장소가 에베소였다는 점이다. 이 편지의 전달자가 ‘데메드리오’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에베소에 있던 사도 요한에게 위치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인물을 통해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에베소에 살고 있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19장 에베소에 살던 ‘데메드리오’와 같은 인물로 볼 확률은 위치적 상황을 볼 때도 더욱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 등장한 인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사실을 확인하기가 곤란한 점은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 본문에서 언급되는 ‘데메드리오’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점도 충분히 가능성으로 열어놓을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이러한 연구 없이 단순 동명이인으로 넘기기에는 여러 사안과 정황상 가능성이 큰 추측으로 볼 수 없다.
3. 요한삼서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강조는 ‘가이오’를 설득시키기 위함이다.
요한삼서는 다른 서신과는 달리 ‘가이오’라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한은 ‘데메드리오’에 대한 설명에서 그가 “뭇사람”, “진리”, “우리”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증거 받고 증언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비록 12절 하반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이 문장을 통해서 현재 ‘데메드리오’가 선한 인물이라는 것은 ‘가이오’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 확실히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수신자인 ‘가이오’에게 반복함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가이오’가 일전에 ‘데메드리오’의 사도행진 19장에 나타난 에베소에서의 위험을 통해서 그가 자신에게 위협을 주었던 위험인물이며, 복음 전파에 대단히 위험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데메드리오’에 대해서 짧은 한 절 안에서 보증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가이오’를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
특별히 살펴볼 것은 사도행전의 저작 시기를 주후 70년경으로 볼 수가 있는데, 이 시기와 요한삼서의 기록 시기인 주후 약 80년경으로 사이에서 사도행전이 이미 초대 교회, 특별히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에서 많이 회람되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회들 사이에선 이미 사도행전 19장에 있었던 에베소 소요 사건의 주동자인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본 연구에서는 ‘가이오’가 두 사건에 있었던 동일 인물로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에베소의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확실히 기억에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요한삼서에서 소개된 선한 인물이 아니라 사도행전 19장에 나타난 모습의 반복음적 행동의 악한 인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 역시 사도행전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상황에서 그에 대해 이처럼 선한 인물임을 확신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에베소 소요 사건의 주동자 ‘데메드리오’에 의해 연극장으로 끌려갔던 ‘가이오’ 입장에서는 그가 선한 인물로 회심했다는 것이 소식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를 직접 대면하여 편지를 전달받아야 했기 때문에 발신자인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를 배려하기 마음으로 ‘데메드리오’를 선한 인물로 그렇게 강조했던 것으로도 볼 수가 있다.
요한삼서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의도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강조했는데, 첫 번째가 대비이고, 두 번째가 반복이다. 대비를 통한 강조의 중심에는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가 있다. 이 둘의 대비는 요한삼서 전체에서 가장 중심(9-12절)에 있고, 분위기상 절정에 있다. 이것은 이 두 인물의 대비가 주는 효과이며, 동시에 저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저자가 이 두 인물에 대해 언급하면서 드러나는 어조를 통해 알 수가 있는데, ‘디오드레베’에 대한 묘사는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9-10절에서는 ‘디오드레베’에 대한 악한 내용을 매우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12절에서는 ‘데메드리오’의 선한 모습을 또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인물이 보여준 모습이 각각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으로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내용은 11절에서 그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11절에서는 아예 선과 악에 대한 대비를 통해 그러한 모습의 의미를 결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11절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바로 다음절인 12절에 선한 모습으로 묘사된 ‘데메드리오’는 선을 행하는 자이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이며, 이와는 반대로 악한 모습으로 묘사된 ‘디오드레베’는 악을 행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태도가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요한삼서에 나타난 어떤 내용에 대한 강조의 반복은 요한삼서 원문을 살펴봄으로써 이 편지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의도와 그 내용에 더욱 정확히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먼저 눈여겨볼 동사는 12절에서 쓰인 “μεμαρτὐρηται”이다. 이 단어의 뜻은 “증거를 받았다”는 의미인데, μαρτυρεω의 과거 완료형 수동태가 사용됐다. 이것은 ‘데메드리오’가 이미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이러한 증거를 받아 왔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증거의 효과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말해주고 있다. 즉, ‘가이오’가 알고 있던 에베소 사람 ‘데메드리오’는 비록 이전의 포악함과 군중들을 선동할 정도로 복음 전파에 걸림돌 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전과 같지 않은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데메드리오’에 관한 사도 요한의 진술은 지금 당장의 모습만 가지고 판단한 게 아니라 꽤 긴 시간을 두고 지켜보았으며, 심지어 이제는 많은 사람으로부터도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그래서 “증거를 받았다”라는 주체가 “뭇 사람”과 “진리에게서도” 받았다는 기술은 뭇 사람에게서 증거를 받았고,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다는 두 번 반복의 강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 바로 “뭇 사람”과 “진리”라는 단어의 의미인데, 어떤 개인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뭇 사람”은 당시 요한 공동체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단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나 진술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이 판단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신뢰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진리”라는 것도 그 의미를 단순하게도 볼 수 있겠지만, 좀 더 깊은 의미로 본다면 요한복음의 용례를 통해서 진리가 그리스도나 성령으로 동일시할 수도 있다.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라고 하는 이 말의 의미는 더 나아가서 진리가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데메드리오’의 삶이 진리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진리를 따르는 삶이다.
이어서 나오는 말은 “우리도 증언하노니”이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역시 “μαρτυροῦμεν” 이다. 이것은 현재 능동태인데, 주어 1인칭 복수인 “ἠμεῑς” 와 함께 쓰임으로 인해서 “우리”라고 하는 수신자 사도 요한이 장로들의 권위를 매우 직접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표현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표현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일서 1:1-4에 반복해서 사용한 1인칭 복수형에 대한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하는 사도 요한의 경향을 보면, 요한일서 서문에서 쓰인 “증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사도 요한 자신을 사도적 믿음 수호자들과 관련시키면서 쓰였다. 또한, 이 편지를 읽을 수신자와 발신자인 자신의 신앙 경험을 일치시킬 때 이러한 단어를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용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이 요한삼서에서 사용했던 의도가 결국 ‘데메드리오’에 대한 사도 요한 자신의 증거가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던 사도들의 권위와 관련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진술의 권위도 함께 높아지는 것이 된다. 즉, 그러한 ‘장로’라고 하는 단어는 ‘디오드레베’와 또 그와 같은 사람들에 대항해서 믿을 수 있게 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증언 모두를 사용하는 것은 ‘가이오’를 설득시키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요한삼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도 요한의 서술 방식이다. ‘데메드리오’에 대한 언급이 12절 한 절에 지나지 않지만, 한 절에 당시의 매우 효과적인 수사적 기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요한의 목적은 ‘가이오’가 가지고 있던 ‘데메드리오’에 대한 불신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확신과 신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한 작업이 바로 ‘설득’의 과정이다. 왜냐하면, 당시 수사학이 설득의 방법들을 아는 데 사용되었으며, 직접적으로는 설득을 위해서도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디오드레베’라는 인물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를 평가한 것도 아니다. ‘데메드리오’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을 언급했던 것뿐이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은 ‘데메드리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가진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어필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학적 기법에도 이러한 신뢰를 주기 위한 방법으로 ‘두려움’을 대립시켜서 활용한 방법이 소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뢰란 ‘두려움’의 대립 항이기 때문에 ‘안도하게 해주는 것’은 두렵게 하는 것의 대립 항이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데메드리오’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 다른 부정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어떤 두려운 존재를 대상으로 ‘디오드레베’를 대립시킨 것이다. 이런 대립의 효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다른 부정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을 통해서 반사적으로 ‘데메드리오’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임을 부각하기 위한 사도 요한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설득하기 위해 에토스(ethos)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한 세 가지 요소로 에토스(인격)와 로고스(논리) 그리고 파토스(감정)를 제시했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요한삼서 12절은 에토스를 이용한 수사법이다. ‘데메드리오’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 화자인 사도 요한 자신에 대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여기서 ‘데메드리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화자 자신의 성품을 전제로 신뢰를 주고 있다. “우리”라고 하는 표현을 두 번 강조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요한삼서 1절 시작을 “장로인 나는”이라는 표현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수사학에서 에토스가 설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 사도 요한도 알았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웅변가는 성격을 통해서 설득한다. 왜냐하면, 정직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고 더욱 신속한 신뢰감을 심어주고, 확실성이 없고 의심의 여지가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전적인 신뢰감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하게 사도 요한 자신이 인품 면에서나 여러 가지로 교회들 사이에서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표현을 자주 사용 가능했다. 즉, 자신이 수사학에서 말하는 ‘에토스’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가이오’를 설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요한삼서 12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법인 아케크노이(akechnoi)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수신자 ‘가이오’를 설득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이 ‘데메드리오’에 대한 긍정적이고 확신적 이야기를 자기만 아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과 같은 이야기로 전달했다. 그것은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 우리도”라는 표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데메드리오’에 대한 선한 이야기가 사도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고, 증거하고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가이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사도 요한 개인만의 증언보다 더 확실하고 믿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수사법이다. 사도 요한은 아케크노이 효과를 이 편지에서 ‘데메드리오’를 효과적으로 증거 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가이오’를 설득시키고자 이런 수사법을 사용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도 요한의 표현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진술의 궁극적 의도는 요한삼서에서 수신자 ‘가이오’를 설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의 핵심은 ‘데메드리오’에 대한 것이고, ‘데메드리오’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나 상태에 관한 내용 전달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대비와 반복이라고 하는 강조의 용법을 통해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인데, 이와 함께 표현의 깊은 의미를 더함에 따라 ‘데메드리오’에 대한 효과적이고 확실한 보증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도 요한의 의도와 그가 사용했던 표현과 방식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유추할 수가 있다. 즉, 요한삼서에 언급된 ‘데메드리오’는 사도행전 19장에 나타난 은장색 ‘데메드리오’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Ⅵ. 결론
1. 정리
위에 논증으로 제시된 세 가지 근거를 통해 내려진 결론은 사도행전 19장과 요한삼서의 인물 ‘데메드리오’는 서로 동일 인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본 연구를 토대로 종합하여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바울 일행이 에베소 지역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가르치고 전파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은 찬란했던 문화와 온갖 우상 속에 살던 수많은 사람을 돌이켜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는 자신들이 스스로 마술책들을 불태웠던 것처럼 그동안 섬기고 숭배했던 아데미 신을 거부하고 점차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생활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은장색들이 만들었던 작은 우상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많은 은장색은 생계에 직접적 지장을 받게 된다. 당시 에베소 지역에서는 바울 일행이 전도했던 다른 어떤 지역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 일행을 통한 사회 변화와 자신들의 생계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관리와 지배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장색들은 위험부담을 안고서 그런 거대한 소요를 일으켰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 로마는 로마 지배하의 여러 정복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유화정책을 썼지만, 정복지역에서 일어나는 반란이나 폭동, 혹은 소요 사내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게 진압하고 대응했다. 그것은 1세기 여러 반란을 일으켰던 유대 지역에 대해서 로마가 매우 무자비하고 강경하게 진압했던 것을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예로 로마에서 임명한 유대 지역 첫 총독이었던 코포니우스(Coponius)는 유대 절기 중 큰 절기 예루살렘에 거대한 무리의 순례자로 가득 찼을 때, 소요가 일어나기 쉽다고 판단하여 평상시 군대 보다 증강해서 배치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특별히 이 소요 사건의 주동 인물, 소요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거칠게 흥분시켰던 주동자 ‘데메드리오’는 바울을 뺀 나머지 두 명의 일행들과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중 한 명이 ‘가이오’라는 인물이었다. 이 둘은 단순히 스쳐 가는 사소한 만남이 아니었다. 둘 다 생전에 잊을 수 없을 만한 일이 벌어지는데, ‘데메드리오’는 ‘가이오’를 결박하고 나서, 성난 군중들 앞에서 극도로 오른 감정을 가지고 ‘가이오’ 신변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베소 서기장의 중재로 인해 ‘가이오’를 포함한 바울 일행은 무사히 풀려나 에베소에서 떠날 수 있게 된다. 바울 일행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3년이나 바울이 가르치고 전파했던 도시 에베소에는 점차 더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에베소 교회가 부흥하면서 그곳에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가 목회자로 세워진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 안으로 세속적 문화가 점차 침투하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으로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거짓 교리들과 가르침으로 인해 교회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디모데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 요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때부터 사도 요한은 중간에 잠시 밧모 섬으로 유배 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이곳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또 에베소에서 묻히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에베소 지역에서 전력으로 목회하던 사도 요한은 단순히 에베소 교회 내의 문제만이 아니라 에베소 지역의 복음 전파에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혹 디모데는 나이도 많지 않고,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 교회 문제와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회 밖 불신 에베소 사람들을 향한 복음 전파의 사역에도 더욱 힘썼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은장색이던 ‘데메드리오’는 다른 누구보다 사도 요한의 행적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으켰던 에베소 소요 사건의 대상이던 바울 일행과 같은 사람이 또다시 에베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의 사역은 바울 일행이 했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을 늘 주목하고 있었던 복음에도 자연스럽게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역사는 ‘데메드리오’를 오히려 사도 요한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다.
마치 핍박자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처럼 복음의 핍박자였던 ‘데메드리오’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평범한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하게 저항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 큰 반동으로 열정적 신앙인이 되는 모습이 ‘데메트리오’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신앙인을 넘어,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사도 요한의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을 따랐던 많은 제자 중에서도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과거 악행들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 더 충성스럽게 사도 요한을 따랐다. 시간이 흘러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다. 이 편지의 수신자가 될 ‘가이오’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데메드리오’가 일으켰던 에베소 소요에서 결박당하고 위험을 경험했던 그 사람이었다. 이 사람 ‘가이오’에게 사도 요한은 편지를 쓰고, 이 편지를 전달해 줄 사람으로 자신을 충성으로 따르고 있던 신실한 ‘데메드리오’를 지목한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의 기록처럼 수신자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는데, 그가 이제는 증거 받은 신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들려온 소문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알 수도 있었던 ‘데메드리오’에 대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데메드리오’에 대해 아직도 믿을 수 없던 ‘가이오’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그린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도행전 19장 에베소 소요 사건 속에서 거대한 성난 군중 앞에서 죽음의 두려움과 견딜 수 없는 공포심을 느꼈을 ‘가이오’ 입장에서는 ‘데메드리오’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쉽게 바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어쩌면 편지 전달자로서 ‘데메드리오’를 선택했던 사도 요한의 의도가 우리 생각 수준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요한삼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초대 이방 교회들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갖고 있던, 신앙의 불신과 불안감이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편지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위대함을 알림으로써 초대 교회 공동체들의 신앙을 더욱 고취 시킬 수가 있던 것이다. 그러한 편지 내용과 더불어서, 편지 전달자로 온 변화된 ‘데메드리오’의 모습을 직접 ‘가이오’와 교회가 보았을 때 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식의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도행전과 요한삼서 사이에서 그것도 180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성징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대 교회의 역사와 사건과 인물 주변의 정황을 따져봤을 때, 본 연구에서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두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2. 연구의 의미
사도행전 19장과 요한삼서에서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데메드리오’라는 인물 관계가 동일 인물임을 주장하는 본 연구는 기존의 한 연구에서도 같은 주장으로 언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연구는 단순한 추측으로만 주장을 이어갔으며, 어떠한 자료를 제시하거나 그렇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과는 다르게 본 연구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의 동일 인물 논증을 위해 결정적으로 ‘가이오’라는 인물을 연구의 전제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전제를 동시에 두 본문에 나타난 ‘데메트리오’의 동일 인물 관계를 규명하는 매개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곧 서로 다른 두 본문 사이에 언급된 ‘데메드리오’가 서로 동일 인물인지를 규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요한삼서의 ‘가이오’가 사도행전 19장에 있었던 에베소 사건 장소에 동일하게 있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가이오’가 동일 인물일 경우에 보다 정확한 근거로 사용하여 ‘데메드리오’에 대한 동일 인물 주장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서 다른 연구와는 다르게 본 연구에서는 ‘가이오’가 동일 인물이라고 하는 전제를 매개로 사용함으로써 단순 추측만 가진 주장을 넘어서 매개를 통한 두 본문의 ‘데메드로오’ 동일 인물 관계를 규명하고자 논증했었다.
본 연구의 결론인 요한삼서와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이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요한삼서에서 ‘데메드리오’와 대비되어 언급된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가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선한 형제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등의 이러한 행위들은 나름 그가 교회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랬던 그도 교회의 이러한 위치에 오르기 전에는 분명히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지만, 신앙생활을 지속하면서 점차 말씀에서 벗어나고 교만함으로 타락하고 변질된 신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데메드리오’가 사도행전 19장에서 비록 아데미 신상을 장식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은장색이었고, 전도하던 바울 일행에 생명의 위협을 가했던 인물이었지만,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를 받은 선한 사람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악인이 신자로의 변화된 사건은 교회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한때 기독교를 모질게 핍박했었지만, 이제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이 된 바울의 경우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교만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혹시 전에는 복음을 멀리했거나 더 나아가 복음의 핍박자처럼 살았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얼마든지 교회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도 있고, 선한 행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초대 교회 사람들과 역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동시에 이것은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확실한 사건이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이끌어 가신 하나님 구원의 역사처럼 바울 일행을 박해하고 위협했던 ‘데메드리오’가 오히려 복음에 굴복하고 순종했던 그의 변화된 삶이 수신자 ‘가이오’에게 초대 교회 공동체에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감동과 위대하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좋은 교훈이 된다.
3. 한계와 추후 연구과제
본 연구에서는 요한삼서에 언급된 ‘가이오’라는 인물이 사도행전 19장에서 이미 동일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제에 대한 자료와 증거는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도 이 전제에 대한 자료나 보충 자료 등이 매우 부족하고 대부분 연구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 뒷받침이 생각보다 부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 연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이오’라는 인물에 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본 연구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로 참고할 만한 믿을만한 역사적 자료나 관련 서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은 본 연구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주장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본 연구가 앞으로 계속해서 좋은 연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 관련된 자료 수집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이오’와 ‘데메드리오’라는 인물만이 아니라 당시 여러 인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더욱 정확한 인물의 관계 등을 조사하고, 시대적 상황과 역사 흐름을 고려해 막연히 알고 있던 인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더욱 광범위한 범위에서의 학문 자료를 수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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