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밝았는데도 여기는 여전하군요.
지난 주말 본 영화에 대해 주절주절 써봤는데, 같이 나눴으면 합니다.
과연 좋은 영화는 어떤 것일까요?
영화로 문화적 갈급함을 달래는 저로서는 꽤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자평입니다만....
작품에 대한 느낌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그릇이 크면 그 만큼 많은 느낌을 담아낼 것이고.
평론가들의 직업적 전문성이나 섬세함만큼 작품 곳곳에서 내비치는 상징의 언어들과 연출자의 의도를 짚어내어 올바른 영화읽기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지나친 기대고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인상적인 화면과 deep focus, 음악, 색조와 같은 영화적 요소들로서 이야기의 흐름과 결부시켜 막연히 유추를 하며 작가의 심오함에 겉핥기 정도로 읽어갈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이 작품에서 주로 나오는 이디오피아 음악은 우리의 트로트풍과 무척이나 흡사한데, 현대적 감각과 시류에 걸맞는 음악적 치장을 굳이 마다한 것이나, 스트라이프 색깔만 노랗고 빨갛게 혹은 초록색으로 바뀔 뿐 같은 디자인의 트레이닝복을 고집하는 주인공의 완고한 이미지도 전체적인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으리란 막연한 추측 같은 것 말이다.
미국 독립영화의 거장으로 알려진 짐 자무쉬 감독의 2004년 작품 <브로큰 풀라워>를 보면서 나는, 내내 알 듯 모를 듯, 역시나 나의 그릇은 이것 밖에 안 된다는 자조와 함께, 무언가 숙연한 느낌이 가슴 속에 남겨지리란 예감 등으로 이 작품을 재차 떠올리고 있다.
10 년 간격으로 <천국보다 낯선, 1984>과 <데드맨, 1995>을 보고서 모처럼 자무쉬 감독의 작품을 새롭게 접하게 되니 설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거기에 200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또한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을 갖는 여우들이 단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작품이 선뜻 끌리는 이유였을 것이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에 허리를 곧추 세운 정자세로 거실에서 TV의 화면을 가만이 응시하거나, 듣는 둥 마는 둥 음악에 귀기울이는 돈 (빌 머레이 분)은 하루하루 그야말로 무미건조하고 무감한 채 지내는 꽤나 특이한 존재로 비쳐진다.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의 표정은 연인인 쉐리 (줄리 델피 분)가 떠나도 큰 상처를 받지 않고 담담히 보내 준다. 너무 흔한 일상의 일인 것처럼.
그런 그에게 19 살 난 아들이 있다는 분홍색 편지가 도착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돈이 그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옛 여인을 찾아 길을 떠나는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길을 따라 나타나는, 이제는 현실 속의 삶으로 재현되는 옛 여인들의 면면이 잔잔히 들춰진다.
제목이 시사하듯, 돈의 희망과 기대는 무참히 짓이겨진다.
혼자 남겨진 텅 빈 교차로에서 카메라가 돈의 주위를 돌면서 곧 암전과 함께 엔드 크레딧이 오르고야 만다.
여전히 독신이고 컴퓨터 사업으로 재력을 일군 돈에게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텐데도, 이웃집 윈스톤 가족과의 유대 외에는 답답할 정도로 단순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다. 컴퓨터 사업을 한 사람의 집에 단 한 대의 컴퓨터도 없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컬하다.
윈스톤의 우격다짐으로 돈은 여행길에 오르고. 20 년이 지나서 다시 찾은 옛 여인들의 삶은 제각각이다.
찰나와도 같은 여행의 편린들이 조각난 필름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 온 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소파가 익숙한 듯하다.
다시 그에게는 지루한 일상의 하루가 찾아온 셈이다.
이 작품은 영화 예술의 보편적 흐름 이를 테면, 모색과 시도, 실험정신 혹은 영화적 감동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극적 반전, 세련된 영상이나 기법 등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돈의 얼굴처럼.
하지만 오랫동안 이 작품을 반추할수록 여러 상념이 교차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한 사람이 갖는 진실한 삶의 의미와 행복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진지한 질문을 유발한다.
세월의 흐름에 의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혹은 그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삶의 적나라한 정경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진정성, 혹은 무의미와 허무감 따위를 느끼게도 해준다.
어떤 계기로 인했든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게 된 옛 여인들의 현실의 모습은, 현재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이런 다의적 시각을 갖게 한다는 면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미국에서 확대개봉이 이뤄지고, 영국에서 박스오피스 1 위로 올려놓은 원동력이었지 싶다.
즉, 한 개인의 삶 속에 묻어나 있는 시대적 현실을 은유적 시선으로 고찰하는 작가 특유의 필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짐 자무쉬는 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5.1.8, Lian)
첫댓글 빌 머레이의 그 변화없는 생뚱맞은 표정이 정말 재밌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알 수 없다."
영화제목에 끌립니다만....짐 자무쉬.. 버거운 이름...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