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그리고 무기징역!
2009년 3월 31일.
이 날은 초등 4학년에서부터 중학 3학년까지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는 날, 바로 오늘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시험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알렸고 진보적 학부모단체들은 시험을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나기로 이미 결의해 두었었다.
엊그제 초등 5학년인 우리 둘째도 엄마의 설명을 듣고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는데 전교에서 유일했던 덕분에 아이 엄마도 전교 학부모들중 유일하게 교장선생님의 면담요청을 받았다. 가벼운 짜증까지 내면서 다녀온 아이 엄마의 말을 빌자면 조분조분 설득작업이 여의치 않았던지 교장선생님께서는 이윽고 "그럼 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해도 되겠느냐?"는 마지막 빅카드를 꺼냈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아이 아빠는 저보다 훨씬 더 과격할 텐데요..."라는 답변을 듣고는 씁스레 웃고 말더라는 얘기까지도 들었다.
저녁을 먹고 인터넷을 통해 체험학습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 있었더니 둘째 녀석이 흘낏 보고 뛰어나가며 소리 높여 외친다.
"엄마! 체험학습하면 무기징역이래!!!"
아이 엄마는 어리둥절해 한다. 일부 교육청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나면 무기정학을 시키겠다는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는데 어제 오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녀석이 그래도 자신의 일인지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는 보았으되 어깨너머였던 덕분에 '무기정학'을 '무기징역'으로 오독한 헤프닝이었다. '무기징역'이 무엇인지 '무기정학'이 무엇인지도 몰라 되물어보는 초딩 5학년의 녀석에게야 그저 명확하지 않은 흐릿한 위험 정도로 그치겠지만 부모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무기징역이든 무기정학이든 일단 그 낙인이 찍히는 순간 일생을 두고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의 고통을 안아야 하는 명확한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써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일제고사 반대 학부모선언에 동참하고 서명했으나 체험학습까지 신청한 숫자는 1500여 명에 불과한 것이 그 반증이다. 실제 체험학습에 참가한 사람은 아마 그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부모에게 아이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공포를 이겨내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념이다. 내가 하는 이 행동과 실천이 내 아이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는 상식 말이다. 일제고사의 폐해라던가 하는 것을 굳이 또 이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일제고사는 이미 10여 년 전에 중도 폐기된 바 있고 우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체험해 온 산 증인이며 경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신념이 아이를 앞에 두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대범한 척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으나 그 어느때 한번도 앞서간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치 않은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없었다. 오로지 선각자들의 피땀 위에 우리가 서 있을 뿐이다. 오늘, 체험학습과 관련된 범상치 않은 소동 속 피해자이며 당사자인 -선생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 그들 역시 참된 우리 교육을 위한 작지만 큰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첫댓글 무기징역에서 한 번 웃고, '아이 아빠는 저보다 훨씬 더 과격할 텐데요'에서 또 한 번 웃습니다. 교장쌤 어이없어 턱 빠졌겠는데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