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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ab6QCaKHATY?si=WRUepO0y8_wlrbz6
관대함을 보이라 9:38~41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죄에 저항하고서로 화목하라 9:42~50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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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요한이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주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기에 금했다고 하자,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며 금하지 말라 하십니다. 믿는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형벌이 있습니다. 손과 발과 눈이 죄짓게 한다면, 그것을 없애서라도 영생에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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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함을 보이라 9:38~41
편협한 배타주의와 독점 의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내쫓는 일을 하자 이를 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39절).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 귀신을 쫓아낸 사람은 예수님을 대적하지 않고 지지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그와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친절을 베풀고 동조하는 이는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이 약속하십니다(41절).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목표가 동일하다면, 관용과 협력으로 ‘우리’의 울타리를 넓힐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배타적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나요?
나 중심적 독선과 배타성을 버리고 마음을 넓혀 함께해야 할 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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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저항하고서로 화목하라 9:42~50
주님의 제자를 대접하면 상을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작은 자 한 명이라도 실족시키면 벌을 받습니다(41~42절). 예수님은 그러한 죄가 우리 목숨을 대가로 내놓아야 할 만큼 큰 죄임을 강조하시며, 어떤 죄에 대해서든 강하게 저항하라고 하십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손이든 발이든 없애겠다고 할 만큼 단호한 결의로 죄와 맞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끔찍한 지옥의 고통이 기다립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녹아서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며 순전함과 진실함을 상징하는 소금의 교훈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만하거나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신체의 일부라도 잘라 내라고 하실 만큼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제거할 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 자기중심성의 늪에 빠져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죄가 주는 기쁨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의 가치를 알게 하시고, 작은 죄라도 경계하고 멀리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42 너 시험을 당해)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셔서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여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억지를 부르면서 진리를 외면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믿게 하여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분을 온 맘으로 예배하자
항상 겸손히 그분께 나아가고, 그분께서 깨닫게 하여 주시고, 밝히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그분의 제자로 성실히 살아가자
1월26일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전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함께 있습니다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욥3:19)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함께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계19:5)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주를 안다고 인정됩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히8:11)
그러므로 자기를 크게 여겨 작은 자라고 멸시하여 실족하게 하면 큰 화가 있습니다(막9:42)
우리가 다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롬14:3)
그러므로 큰 자에게만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도 곧 주께 한 것이 됩니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왜냐하면 우리는 큰 자나 작은 자나 살아도 죽어도 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그러므로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20)
여기서 사신은 헬라어로 "πρεσβεύω"(프레스뷰오)로
"대사가 되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주로 인해 이 세상에 보내심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옥에 갇혔을 때에도 쇠사슬에 매인 대사로 여겼습니다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6:20)
참으로 우리는 매였으면 매인 대사요, 자유하면 자유 대사요, 찬양하면 찬양 대사요, 걸으면 걷는 대사요, 달리면 달음질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자나 작은 자나 주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대사로 여기고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그리스도의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9:41)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자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자 제자들이 이를 금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위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남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에 매여
던져지는 것이 낫고, 지옥에 가느니 죄짓게 하는 수족을 잘라 버리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요한은 같은 무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배타성을 금하십니다. 주님은 다른 이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목숨과 바꿀 만큼
큰 죄라는 것도 일깨워 주십니다. 또한 죄짓는 것의 심각성을 반복해서 철저히 경계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다른 이도 죄짓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복음을 위해
개방되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다른 이들과 화합하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수난의 시간을 앞두시고, 제자도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겸손과 섬김(35-37절),
종교적 관용(38-40절),
약자에 대한 배려(37,42절),
죄를 멀리하기 위한 투쟁과 배교에 대한 경고(43-50절)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읽고 경청하는 말씀은 주로 어떤 내용입니까?
복과 은혜를 약속하는 달콤한 말씀만이 아니라, 힘써 지켜야 할 쓰고 아픈 말씀도 귀담아들어야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제자의 길을 방해하는 옛 소욕을 버리게 하시고, 합당한 성품으로 빚어가소서
주님, 자기중심성의 늪에 빠져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 자신들에 대한 기준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높이고
오히려 율법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철저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이들을 용납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이 땅을 살아가셨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조건 없는 믿음으로 가능했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그 성화에 이르는 것은 높은 산꼭대기에서 마지막으로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것과 같이 험하고 때론 위험한 일이 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손, 발, 눈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다른 이들이 죄짓게 하는 도구가 되지 않게 철저히 죄로부터 멀어져야 함을 경고하십니다.
또한 그 죄가 해결되지 않는 이가 처하는 지옥은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지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참된 화목은
다른 이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납하고
자기 자신은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온전한 헌신으로만
이 땅 가운데 이뤄질 수 있습니다.
날마다 거룩함으로 옷 입어 여호와께 기쁨을 올려드리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며
맡겨주신 이들을 정성으로 섬기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방식의 삶❞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제자입니다.
✔ 진정한 제자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 화목을 위하여 희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38~50절).
요한은 예수님께 자기들과 함께 다니지 않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는 자의 행동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속한 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상 받을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41절).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각자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시키는 자는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42절).
그러한 자들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던져지지 않으려면 죄를 범하게 한 신체 부위를 잘라 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만큼 실족하게 하는 일이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소금 같은 구실을 하여 화목하게 지내도록 말씀(49~50절)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짐을 통해 맛을 내게 하며 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나 역시도 내 자신이 녹아 없어짐으로 짠맛을 내는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나의 것, 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공동체의 화목과 화평을 위해 힘쓰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입장에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결코 공동체에 화목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뿐만 아니라 겸손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것들을 떠올려 본다면 나는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 어떤 섬김과 희생이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화목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제자의 삶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바르게 이해하여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어느 공동체이든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섬김과 희생의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9:30~50절)...
1.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다면(38-40절)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은 사람에 대하여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들은 내심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제지하여 줄 것을 바랐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자신들의 담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대하여 마실 물 한잔을 건네주는 사소한 호의를 보낸 사람에 대하여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실 정도로 예수님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호의적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생각은 아군과 적군을 정확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지적하시고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종종 같은 하나님을 전하는 교회간에 보이지 않게 경쟁하고 서로에 대하여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하고 함께 갈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포용력이 큰 편인가?
2.영원한 생명의 가치(41-50절)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왜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 만큼 영원한 생명의 가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손이나 발이 죄를 지으면 죄 지은 손이나 발 하나를 버리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더 낫다 말씀하십니다. 또한 눈이 죄를 지으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가는 것보다 죄지은 눈을 빼버리고 장애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죄지은 육체를 포기하고라도 꼭 가야 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천국을 선물로 받은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천국을 이미 보장받은 은혜 받은 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육체로 죄를 짓는 일에 내 몸을 내어 놓지 않도록 늘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성도로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행하는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가 주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쫒기에 요한이 금했다고 하자,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며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믿는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형벌이 있다고 하시며, 주님은 손과 발과 눈이 죄를 짓게 한다면 그런 것들을 없애서라도 영생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다른 제자들의 활동, 물 한 그릇의 상, 실족하게 하는 자의 경고,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죄 등입니다.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요한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을 금했다고 보고하자 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면에는 자신들은 하지 못하였는데 12제자도 아닌 사람이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요한이 그런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를 금하지 말라고 하시니, 주님께서 추구하시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편협한 사고와 갇힌 사고로 복음을 한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요한 역시 책망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 연약한 사람을 죄짓게 하여 그 영혼을 파멸케 하는 자는 차라리 그 육체를 죽이는 편이 낫다는 뜻입니다. ‘실족’이란 말은 ‘실수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라는 뜻이고, ‘연자 맷돌’이란 나귀 같은 가축을 이용하여 곡식을 가는 데 사용된 무겁고 큰 맷돌을 말합니다. ‘연자 맷돌 형벌’은 파렴치한을 처형하는 로마 형벌의 하나로서, 어린아이 같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그만큼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소나 당나귀에게 매어 돌리는 연자 맷돌은 곡식을 빻는데 사용되는 거대한 회전용 맷돌로, 특별히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윗부분을 말합니다. 이 돌을 목에 매여 바다에 던진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로마나 그리스 등에서는 극악무도한 범법자를 이 맷돌을 매게 하여 바다에 빠트려 죽이는 형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곧 연자 맷돌로 수장 형을 집행하는 것이지요. 이 말씀의 저의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라는 뜻으로 지옥의 뜨거운 형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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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나으니라’ -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만일 그럴 경우 실족하게 하는 원인을 과감히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손이나 발이라면 잘라 버리고, 눈이라면 빼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멀쩡한 손과 발과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으로, 죄를 범케 하는 원인을 제거하라는 강렬한 강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비유는 과장법으로, 죄짓게 하는 것들을 사전 차단하라는 것이지 실제로 잘라 버리라는 것은 아닌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문자 그대로 실제로 자른(?)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작은 자들을 업신여겨선 안 된다는 엄한 경고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18:10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 수호천사라기 보다는, 신적인 방법으로 작은 자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의미로, 궁극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는 그 대가가 있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문맥적으로 보면 작은 자들을 실수케 하는 자에 대한 엄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마태복음 5장에서는‘ 간음하지 말라’의 비유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곧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가 그 말씀입니다.
이는 죄를 짓게 하는 모든 행위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생을 결단코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유들은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범위를 벗어나, 어떠한 죄도 제거하기를 촉구하는 한층 발전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는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잠시 자는 안식이 아닌, 영원한 형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죄에 대한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용서받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으니, 만약 같은 죄를 반복한다면 그는 그 용서를 거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연약한 몸을 가졌다고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여인들, 어린아이들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 그 모진 고문과 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그런 몸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할 일이 있으니,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몸부림 쳐야하고, 사막에 있는 사람이 물을 찾듯이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으로, 우리는 어렵지만 성령님은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써 찾으며 기도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한, 죄에서 해방된 것을 아는 어느 날은 올 것입니다. 그 시기는 모릅니다. 사람마다 사모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옵니다. 한 눈을, 한 손을, 한 발을 제하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의도를 우리는 정녕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9:38~50 복음은 뺄셈이 아닌 덧셈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어가시면서 십자가만 생각하시고
인자가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오늘은 또 다른 한가지 문제가 보인다.
요한이 예수님게 묻는다.(38)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38)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이다.
요한복음과 요한1,2,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이다.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요13:2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발 밑에 남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호해 달라는 주님의 부탁을 받으며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제자이다.(요19)
예수님의 빈 무덤도 직접 확인한 제자이다.(요20:2~10)
이런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가 문제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독점했다고 생각하는 특권의식이 문제이기도 하고
제자들만 아니면 자기 그룹에 속한 자들만이 예수님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전매특허를 낸 것 처럼 사용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예수의 이름이 이렇게 편협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은 제자 몇 명이 독점하는 이름이 아니다.
온 나라와 온 민족과 열방이 함께 불러야 할 이름이요 찬양해야 할 이름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할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으며 최후의 심판을 믿으며 영생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같다면 모든 종파와 단체를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 교단이나 종파와 단체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말씀하신다.
금하지 말라.(39)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39)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만이 선택을 받았고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 권세도 자신들만이 독점을 했다고 생각하는 지 몰라도
예수님은 이런 편협한 배타주의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모든 사람은
환영받아 마당하고 격려받아 마땅하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 처럼 무슨 방식으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이면
그것으로 내가 기뻐한다고 하신 것 처럼 너그럽게 포용하는 마음을 갖자.
더 많은 사람이 성도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사역자로 세워진다면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사역과 신앙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예수님에게 소중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40)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41)
지극히 적은 봉사인 한 그릇의 물이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자이므로 대접한다면 상당한 보상이
하늘에서 있을 것이란 말씀이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용서받을 수 없었던 인생을 향해 죄 사함을 베푸시고
허락될 수 없는 이들을 제자로 부르신
그 놀라운 인자와 긍휼로 말미암아 오늘도 담대히 일어섭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본을 따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주님의 군사 되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신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주님의 손길을 뻗어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모든 분열과 악독을 버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