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급성 골수성 백혈병) 투병 일천쉰네(1054) 번째 날 편지,2(음식,건강)-2023년 7월 27일 목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7월 27일 목요일이란다.
오래전에 법적 성년의 나이를 넘겼지만,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는 언제부터 어른인가?
하지만, 인간은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에, 언제까지 아이이고, 언제부터 어른인지 나누는 경계가 다소 모호할 수밖에 없으나 아이와 어른은 분명히 다르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라면, 아이에게는 생식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아이가 자라 2차 성징이 드러나고, 성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해지면, 성인으로 대우하는 경우가 많아 이몽룡과 성춘향은 이팔청춘 열여섯에 눈이 맞아 만리장성을 쌓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같은 사랑은 줄리엣의 14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일어났다네.
화랑 관창이 황산벌에서 목숨을 걸고 내달리던 때의 나이는 겨우 15살이었고, 16살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전장에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섭정을 맡아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는데, 아직 앳된 구석은 남아 있어도, 이 정도 나이면 충분히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지키고,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는 나이라 여겼다네.
근대 이후, 재생산 여부에 더해 법적 기준이 제시돼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는 이보다 조금 올라가고, 법적으로 성인이란 혼인, 음주, 흡연, 각종 계약, 운전면허, 선거 등의 행위를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 없이 행사하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나이라는 생각이라네.
그래서 이들을 행할 수 있을 만큼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으로 여겨지는 나이가 기준이 됐는데, 현재 가장 많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성인 기준은 18살 전후고, 우리나라는 19살 이후를 법적 성인으로 규정한다네.
아이 특성이 성장이라면, 성장이 모두 완료된 시점 이후를 성인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이유에서 최근 이 법적 기준을 더 늦추는 게 좋다는데, 인체 성장에서 모든 부분이 반드시 동일한 시기에 완료되지는 않은데, 개인차는 있지만 16~18살이 지나면 뼈의 성장판이 닫혀 키가 더는 자라지 않고, 키 성장이 멈춘 뒤에도 신체의 다른 부분은 더 자라고 성숙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뇌라네.
어른은 언제부터 노인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10대 청소년의 뇌는 확실히 무모하고, 저돌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감정 기복이 심해 불안정한 행태를 보여 10대의 두뇌 발달을 연구한 신경학자들은 인간의 뇌는 20대 중반까지 계속 새롭게 재편되기에 인간의 청소년기를 틴에이저(13~19살)를 넘어선 24살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그럼 성인의 연령은 25살이 되겠고, 또한 이들은 조현병이 처음 발현되는 시기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것도, 이 시기까지는 뇌 발달이 아직 안정화되지 못해 작은 충격과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네.
연속적인 인간의 삶은 성인이 되는 지점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노인이 되는 시기도 확실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아이는 성장하고, 어른은 안정을 유지하고, 아이는 지원받고, 어른은 생산을 맡는데, 그렇다면 노인은 어떨까?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은 생산 영역에서 물러나 은퇴한 이들을 대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하듯 성인의 권리는 그대로지만, 성인에게 부여된 의무에서 상당 부분 면제해주는데, 조선시대에도 건장한 성인 남성은 16살부터 60살까지 군역의 의무를 졌기에, 1년에 두 달씩 군대에 복무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베, 즉 군포를 납부해야 했지만, 60살이 넘어가면 이 군역이 면제됐다네.
기준이 다를 뿐, 현대에도 노인을 규정하는 기준은 비슷해 성인의 권리를 가지되 책임과 의무에서 면제되는데, 대한민국 헌법 제24조에 의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투표권을 가지는데, 2023년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만 18살 이상의 국민이라면 선거권이 부여된다네.
1년 이상 형을 받고, 집행 중인 사람 등 몇몇 예외는 있지만, 선거권 결격 사유에 나이는 없으니 별다른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18살 이후 사망할 때까지 선거권은 유지되고, 또한 성인이 응당 해야 할 일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제활동과 건강유지로, 무릇 성인이라면, 제 밥벌이는 할 수 있고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어야 한다네.
하지만 법적 노인이 되면 이런 것도 의무가 되지 않는데, 근대 복지국가에선 노인이라 인정되는 나이가 되면 경제활동에서 은퇴했음을 상정해 연금 지급을 개시하고, 각종 세금과 요금에서 감면 혜택 혹은 무료 혜택을 준다네.
여기에 장기요양보험이나 국가의료지원도 제공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법적 노인 기준은 65살로, 이는 공무원의 퇴직연령으로,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며, 노인복지법에서 명시한 기초연금이나 장기요양보험, 도시철도 무임승차가 제공되는 나이라네
성인과 어른,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
노인의 법적 기준 나이가 왜 65살이 됐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19세기 말~20세기 초 실시된 유럽 각국의 연금제도에서 65살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 기준이 65살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네.
딱히 생물학적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의 혈장 단백질 분석 결과에 인간은 34살, 60살, 78살 이렇게 세 시기에 갑작스러운 노화를 경험한다는데, 연속적인 삶에서도 분기점이 존재하듯, 노화에서도 세 번의 주요 변곡점이 있다는 것으로, 65살이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지점이라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네.
현행법상 성인과 노인의 기준은 그저 살아온 날수로 정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다보면, 성인이 되고, 자연스럽게 노년기로 이동하지만, 같은 나이대를 의미하는 단어라도 ‘성인’과 ‘어른’, ‘노인’과 ‘어르신’은 다르다네.
전자가 그저 물리적 숫자만을 잣대로 판별한다면, 후자는 숫자에 더해 그 시기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 권리와 의무의 조화, 다음 세대를 대하는 태도 등 복합적인 의미가 부여되지만, 성인은 됐으나 어른은 되지 못하고, 노인이지만, 어르신으로 변모하지 못한 이가 드물지 않게 눈에 뛴다네.
‘어르신 되기’, 인생 후반부의 숙제
성인이 된 뒤에도 한참 지나 어른이 됐던 경험이 있으니, 노인이 된 뒤 진짜 어르신이 될 때까지는 좀더 많은 일을 겪어야겠는데, 인생 후반부의 숙제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I`ll Feel a Whole Lot Better-The By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