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1230년경) 교회의 두 거목이 있었으니 성 토머스 아퀴노와 성 보나벤투라, 성 도메니코 수도회 소속 성 토머스와 성 프란체스코회의 성 보나벤투라는 두 분이 양 수도회의 제2의 창설자라는 명칭을 받을 만큼 수도회를 쇄신하는 데에도 공헌하셨고 깊은 영성을 살아 모든 이에게 모범이 되셨든 분들입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본래의 이름은 요한 디 피단짜 인데 어려서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에게 데려가 기도해 주기를 청하여 쾌유되면 부모님들이 수도원에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기도하고 강복하니 즉시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성인도 기뻐하며 “오 보나벤투라”(오 기쁜 일이여, 행운아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이름이 보나벤투라가 되었고 17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20세에 사제가 됩니다.
사제가 된 다음 토머스 성인과 함께 파리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게 됩니다. 두 분은 친구로서 신학자로서 거로 격려하며 쌍벽을 이루는 대 신학자로 명성이 높아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토머스 성인이 보나벤투라에게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은 책이 어떤 책이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십자가를 가리키며 “내가 제일 많이 배웠고 배우고 있는 책이 이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1260년 프란체스코회의 총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273년에(53세) 알바노의 대주교 및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로마로 가는 도중에 무제로라고 하는 작은 마을 수도회 분원에서 하루를 묵고 있는데 교황 특사가 임명장을 가지고 수도회에 도착했을 때 보나벤투라는 점심 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총장신부이며 총대주교, 추기경으로 임명되신 분이 평수사와 꼭 같이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는 겸손함을 지니셨습니다.
또 이런 에피소드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교황 울바노4세께서 성체 찬미가를 두 분에게 지어 오도록 분부하셨는데, 성하의 명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찬미가를 지어 교황님께 가서 먼저 토마스 성인이 먼저 읽었을 때 “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라고 감탄하며 자기의 것은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시간 때 성토마스의 성체 찬가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