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5. 빨간 망토야 미안해
윤주는 그 날 새벽에 죽었다.
어설픈 애송이의 칼이 윤주의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한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이미 윤주의 심장은 멈춰져 있었다.
윤주를 찌른 남자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마 우리가 병원으로 달려간 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둘은 깡패도 조직폭력배도 아니었다.
평범한 음식점 배달원이었다. 둘은 형제였고 부모는 없었다.
윤주를 찌른 줄무늬 티가 나와 같은 열아홉 살로 형이었고
꽃무늬 남방은 열일곱 살이었다. 둘 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소년원에 감호되었던 경력이 각각 3번, 2번씩 있었다.
밤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형사들은 내게 그 날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난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란 말만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다음날 아침,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에서 나서자 아빠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를 살폈지만,
지수 오빠와 사각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하고 아빠는 묻지 않았다.
말없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집에 가자”
‘집?’이라는 흔해빠진 단어가 너무나도 새롭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 * *
‘집’에 돌아 왔다.
집안에 들어서자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아빠에게 “나 좀 쉴게”라고 말하고 내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들어 누웠다.
얼마 안 있으면 죽기라도 할 사람처럼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너가 가서 좀 말려봐.”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철저하게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잘못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잘못을 한 것은 나였고 도망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난 그동안 뭐든 내 편한대로, 내 멋대로 해왔다.
가기 싫으면 학교도 나가지 않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아빠를 졸라서 사고…….
이제 책임이라는 것을 질 나이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몇 시간이고 멍청하게 앉아서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한지연! 혼자 뭐하냐? 재수100단!”
윤주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신문엔 응급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지수오빠와 내 사진이 크게 실렸다.
전 날의 사고를 다룬 기사와 함께.
난 오빠의 숨겨 두었던 여자친구로 세상에 알려졌다.
덕분에 난 집 앞에 나갈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기자들이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그 날 사고를 크게 다루었다.
그럴 수밖에……. 새벽에 대로변에서 살해당한 여고생,
그리고 그 여고생과 같이 있던 조직 폭력배와 유명 남자 연예인,
그리고 그 연예인의 알려지지 않은 여자친구.
이렇게 큰 뉴스거리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후, 한 달 동안 텔레비전에선 고맙게도
우리의 일을 두고 토론까지 벌여 주었고
늙은 교수니 사회 평론가니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요즘 세태가 어떻다는 둥, 사회가 이런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는 둥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우리 일을 두고 이리 저리 떠들었다.
이번 스캔들로 오빠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성실하고 깨끗했던 오빠의 이미지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난 가슴 깊이 죄책감을 느꼈다.
오빠가 응급실까지 따라 오지만 않았다면…….
나를 놔두고 먼저 자리를 피하기만 했더라면…….
매스컴이 오빠를 알아채는 일은 없었을 텐데…….
오빠가 그렇게 비난을 받을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나 때문이었다. 나를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는 오빠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사고가 일어 난지 삼일이 지난 날 저녁.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야. 지수”
오빠가 조용하게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만나자.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
잠시 내 대답을 기다리던 오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꼭 할 얘기가 있어 만나고 싶어”
“다 내 잘못이야. 윤주를 죽인 것도, 오빠를 곤란하게 만든 것도”
“나 곤란하지 않아. 그 날 일. 어쩔 수 없었어. 누구 잘 못도 아니었어”
“미안한데 오빠. 나 오빠 만날 수가 없어.
윤준 나 때문에 죽었는데, 난 오빠 만나서 웃고 떠들고 그럴 수가 없어.
바보 같은 소리 같지만, 그렇게는 못 하겠어”
내 가슴마저 허전하게 만드는 긴 한숨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놀이터 기억나?”
“…….”
“거기서 기다릴게”
전화가 끊어졌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아무것도 판단 할 수 없었지만,
그 곳에 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설사 내 앞에 죽은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그 순간 오빠와 마주 하는 일만은 할 수 없었다.
뚜--
뚜--
뚜--
하는 통화 단절음만이 불규칙하게 들려 왔다.
그 날 이 후,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다.
나 역시 오빠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 * *
윤주의 장례식을 하루 앞둔 토요일.
윤주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빠에게 윤주네 집이 팔렸고
며칠 후 이사를 들어 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윤주의 옷가지들을 정리해서
아파트 앞 재활용 컨테이너에 모두 넣었다.
하지만, 고가의 핸드백과 구두, 그리고 옷들은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자주 다니던 로데오거리의 중고 명품샾에 전화를 걸었다.
주인 언니는 처음에는 그냥 가져가도 좋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 아니에요. 오늘 내로만 와서 가져가주세요”
그제 서야 언니는 내 말을 믿는 듯 했다.
힘겹게 들고 일어 설 수 있을 정도 크기의 박스 두개를 꺼냈다.
나머지 유품들을 이 곳에 담을 생각이었다.
앨범, 다이어리, 노트, 소설책…….
이 모두를 첫 번째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두 번째 상자엔 영화 디브이디 디스크를 담았다.
내 방 깊숙한 곳에 두 상자를 두리라 결심했다.
아끼고 아껴 두었다가 정말 윤주가 보고 싶을 때,
상자를 꺼내 볼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정리를 대충 끝낸 난 기운이 다 빠져서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서 텅빈 윤주의 집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서글퍼져서 울었다.
한참 동안을…….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눈이 따끔거리고
목이 따가워져 견딜 수 없게 될 때가지 울었다.
한 참을 울고 있는데,
소파의 한 쪽 편에 놓인 빨간 니트가 보였다.
구석에 있어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가만히 빨간 니트를 바라보았다.
윤주가 이 빨간 니트를 숄처럼 어깨에 걸친 모습이
너무 너무 예쁘고 잘 어울렸다는 걸 떠올렸다.
인터넷에서 윤주가 산 니트였다.
작아서 입을 순 없었는데,
윤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
숄처럼 어께에 걸치고 다닐 거라고 말했었다.
‘이거 봐 어께에 걸치니까 너무 이쁘잖아.
가을되면 입어야지. 너무 잘 어울리지?’
‘잘 어울리긴 무슨 망토 같다 야. 빨간 망토’
윤주가 이 니트를 어깨에 걸치고서는
거울을 보며 나에게 만족한 듯이
그 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윤주의 그 미소는 언제까지나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사람처럼 힘겹게
몸을 움직여 빨간 니트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첫 번째 상자를 열어 가지런히 넣었다.
지수오빠에게 안겨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윤주처럼
주인을 잃은 빨간 니트도 힘없이 상자 속에 축 늘어져 있었다.
빨간 니트 위로 내 눈물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빨간 니트가 날 노려보며 원망하는 듯 했다.
“윤주를 왜 죽였어?”하고…….
난 가슴속으로 속삭였다.
‘빨간 망토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