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말할 것이다
김 상 립
봄이 왔다. 사람들은 오는 봄을 두고 갖가지 멋진 표현을 다 쓰지만, 나는 그냥 ‘꽃이 온다. 꽃 세상이 돌아 오는 구나’라고 노트에 적는다.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온갖 꽃이 건강하게 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즈음은 소문난 꽃 축제를 찾아가봐도 활짝 핀 꽃 잔치를 만나기 어렵다. 막상 가보면 아직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거나 반쯤 져버린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또 어느 지역의 관광지에 꽃이 만발하리라 예상하고 멀리라도 찾아가보면 실망하기 쉽다. 그만큼 꽃 피는 시기를 제대로 맞추기가 힘든 세상이다.
봄이오면 산수유, 매화, 개나리나 진달래, 살구와 복사, 유채꽃이 피고, 벚꽃과 철쭉이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로 피던 세월이 언제인가 싶게 이제는 앞 뒤 없이 마구 섞여 핀다. 내가 즐겨 오르던 산기슭에도 겨울에는 개나리가, 늦은 봄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하늘거리는 모습이 흔해져 버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급속한 도시의 발달이나 인구의 증가, 대량 소비생활의 확대가 식물이 살아갈 환경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산업화의 결과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꽃에 더 나쁜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사람이나 꽃, 짐승을 가릴 것 없이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자연에 속해있으므로 서로 교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상에서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소규모의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나고, 종교나 이념의 대립으로 숱한 목숨이 죽어간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싸우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을 저들 마음대로 끌고 들어와 국민의 삶을 위해서라고 핑계를 댄다. 또 부자들 중에는 돈의 힘으로 사람을 함부로 부리거나 무시하기 일쑤고, 사사건건 보통사람들과의 차별화를 획책한다. 심지어 일상의 기본이 되는 집이나 먹는 것, 타는 것에 이르기까지 차이를 두어 위세를 부리려 기회만 노린다. 이런 잘못된 기운은 단 한번의 작용으로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여 끝내는 이 지구를 덮어 자연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연약한 꽃에게는 더 큰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하다.
그것뿐이랴! 언제 보아도 화사한 모습과 황홀한 향기마저 내뿜는 꽃의 장점을 인간들은 남을 속이거나 이용하는데 교묘하게 써먹고 있다. 눈부신 장미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입으로는 상대방의 환심을 사면서 뒤로는 비열하고 엉뚱한 계획을 추진하기도 한다. 어떤 행사든 축하화환을 죽 늘어놓고 그 숫자를 헤아려 성공여부를 가늠하려 드니 애먼 꽃만 죽어난다. 심지어 출판기념회를 여는 정치인들에게 지인들은 얼마짜리 난 화분을 보내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꽃을 꽃으로 보지 않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세태이고 보면, 보내는 꽃바구니에 제 마음을 싣지 않고 크기나 가격을 얹기 예사다.
모든 생명에는 자유를 향한 의지나 갈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꽃을 아무리 예쁘게 키운다고 해도, 산중에나 들녘에 피었다가 때 되면 미련 없이 지는 야생화와는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산이나 들로 나가서 아무 거리낌없이 마음에 드는 꽃을 함부로 꺾는다. 사무실 화병에 꼽힌 꽃이 암만 예쁘게 보인다 해도, 그런 꽃에는 이미 영혼은 떠나가고 빈 껍데기만 남았을 게다. 더구나 발이 잘려 여러 곳에 치장된 꽃들은 밖으로 나타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꽃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핀다는 턱없는 주장은 아예 접어두는 게 좋겠다. 만약 거듭되는 인간들의 오만함이나 탐욕에 꽃들이 저항하여 일제히 합동 자살이라도 한다면, 꽃 없는 삭막한 세상을 우리는 과연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진짜 좋아할 줄을 모른다. 꽃이건, 사람이건, 돈이건 간에 자기 중심으로만 좋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제가 가지면 좋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자기가 있어 상대가 향기롭든지, 아름다워진다든지, 더 훌륭한 쓰임새를 찾아가게 되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다. 이런 경향은 지배계층에서 더 확연하니 나라의 앞 날이 걱정이다. 꽃만 생각하고 싶은 봄이 왔는데 사방에서 아우성 소리만 들리니 올해의 봄도 봄 같지 않겠다. 정말 선한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상층부에 많이 포진하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 전에, 당신은 죽어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냐는 공개 질문에 "나는 호젓한 산길에 피어나는 한 송이 야생화였으면 좋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요즈음 꽃이 사는 일생을 보면 당장 그 대답을 취소하고 싶다. 대신 ‘고향바닷가 구석진 바위아래 붙어있는 작은 따개비가 되어도 상관 없다’고 고쳐 말할 것이다. (2025.3)